
한 문장이 국경을 건너면 무게가 달라진다. 2026년 9월 15일 바쿠에서 나온 튀르키예 외무장관의 발언이 그랬다. 하루 만에 아테네가 반박 성명을 냈고, 다음 날 그리스 신문의 1면이 바뀌었다. 에게해 섬 비무장 논쟁, 그리스 이스라엘 방산 협력, 그리고 유엔 총회가 한 화면에 모였다. 백 년 묵은 조약 해석이 다시 꺼내졌지만, 이번 지도 위에는 새로 그려진 선들이 겹쳐 있다.
에게해의 섬들은 조약 위에 떠 있다. 1923년 로잔 조약과 1947년 파리 강화조약은 동에게해와 도데카니사 일부 섬에 비무장 조항을 달았다. 앙카라는 이 조항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본다. 아테네의 해석은 다르다. 유엔 헌장이 보장하는 자위권이 우선하며, 파리 조약의 당사국도 아닌 튀르키예가 이행을 요구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앙카라가 그리스의 영해 확장을 전쟁 사유로 규정해 둔 사정이 겹친다. 그리스는 그 위협이 남아 있는 한 무장 해제는 논의 대상이 아니라고 맞선다. 1960년대부터 이어진 공방이다.
9월 15일 아제르바이잔 바쿠를 찾은 하칸 피단 튀르키예 외무장관이 다시 이 문제를 꺼냈다. 비무장 지위의 섬을 무장시키는 것은 튀르키예에 대한 위협이며, 그리스가 조약상 의무를 저버리고 있다는 취지였다. 그는 그리스가 역내를 혼란에 빠뜨리려는 세력의 도구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아테네의 반응은 하루 만에 나왔다. 그리스 외무부 대변인은 자국의 외교 정책은 주권적이고 독립적으로 결정된다고 못 박았고, 도구가 되었다는 주장은 사실과 무관하다고 반박했다. 국가가 영토 전체의 방위를 책임지는 것은 당연하다는 말도 이어졌다.
그리스 언론은 이 공방을 1면에 올렸다. 카티메리니는 앙카라가 섬들을 방패 없는 상태로 두기를 원한다는 제목을 달았다. 그리스 측 분석은 앙카라의 진짜 표적을 따로 짚는다. 그리스가 이스라엘산 방공 체계를 섬에 배치하려는 흐름, 그리고 몇 달 안에 착공이 예상되는 그리스와 키프로스 사이의 전력 연결 사업이다. 시선은 이제 뉴욕으로 옮겨 간다. 유엔 총회 기간 에르도안 대통령과 미초타키스 그리스 총리의 양자 회담이 가능하다는 관측이 나오지만, 현재까지 일정은 잡히지 않았다. 지난해에도 같은 자리에서 회담이 추진됐다가 막판에 무산됐다. 그리스 총리실이 신중한 이유다.
에게해의 분쟁은 새 사건이 아니라 오래된 문장의 재낭독에 가깝다. 다만 이번에는 배경이 달라졌다. 이스라엘과의 방산 협력, 동지중해의 전력망, 중동 전쟁이 같은 지도 위에 겹쳐 있다. 조약의 해석은 백 년째 평행선이다. 그 평행선을 잠시라도 교차시키는 일은, 결국 두 사람이 뉴욕에서 마주 앉느냐에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