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기 있어도 죽고, 가도 죽는다. 차라리 우리 땅에서 죽겠다."
메켈레의 70㎡ 수용소에 사는 ‘메하리 아바디’가 2025년 6월 티그라이 임시 행정부 청사 앞에서 내뱉은 말이다. 그는 서부 티그라이 월카이트의 코라리트 출신이다. 고향을 떠난 지 그때 이미 다섯 해째였다. 같은 달 메켈레 로마나트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든 플래카드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다섯 번째 우기를 천막에서 보낼 수는 없다.” 우기는 에티오피아 북부에 해마다 어김없이 찾아온다. 천막은 어김없이 젖는다. 문제는 그 천막이 임시가 아니라 주소가 되어 버렸다는 데 있다.
2020년 11월, 아비 아흐메드 연방정부와 티그라이인민해방전선 사이의 권력 다툼이 전면전으로 번졌다. 에리트레아군과 인접 암하라주 민병대가 밀려들었고, 통신과 전력과 은행이 끊겼다. 서부 티그라이를 둘러싼, 오래된 영유권 분쟁은 인종을 표지 삼은 대규모 추방으로 이어졌다. 종전 무렵 고향을 잃은 티그라이 주민은 약 210만 명으로 추산된다. 2022년 11월 남아프리카공화국 프레토리아에서 적대행위 영구 중단 협정이 서명됐다. 총소리는 잦아들었다. 포성이 멎은 날 세계는 안도했고, 뉴스는 다음 전쟁으로 옮겨 갔다. 그러나 천막은 걷히지 않았다.
숫자는 그 정체를 드러낸다
본지는 최근 그 현장을 방문한 앤드류 김 박사(Dr. Andrew Kim) 의 인터뷰를 통해 에티오피아 북부 티그라이(Tigray) 지역의 국내실향민(IDP)의 상황을 정리해 본다.
2025년 1월 기준 절반가량이 귀환했고 약 87만 명이 남았다. 유엔난민기구 집계로 2026년 3월 티그라이의 국내 실향민은 761,284명, 귀환민은 1,123,137명이다. 2026년 7월 셸터·토지·거점조정 클러스터가 5개 존 21개 워레다의 78개 거점을 조사했다. 그중 67곳, 84퍼센트가 학교와 관공서를 개조한 집단 수용시설이었다. 영양 서비스가 모자란다고 보고된 곳이 74퍼센트였다. 어떤 거점은 인구가 줄었고 어떤 거점은 늘었다. 돌아간 사람이 있는가 하면 두 번째로 쫓겨난 사람이 있다는 뜻이다.

재정은 더 참혹하다
티그라이 재난 위험 관리위원회가 2026년 우기를 앞두고 세운 다중 위험 대응 계획은 6억 2,680만 달러를 필요로 한다. 확보된 금액은 고작 338만 달러였다. 필요 예산의 99퍼센트가 비어 있다. 유니세프의 에티오피아 인도적 지원 호소액 4억 150만 달러 가운데 확보분은 8,870만 달러, 22퍼센트에 그쳤다. 2025년 1월부터 11월 사이 티그라이의 식량 지원 수혜자는 166만 명에서 72만 6천 명으로 반 토막 났다. 미국 국제개발처 사업 중단과 국제사회의 전반적인 후퇴가 겹친 결과다.
설상가상으로 하늘도 등을 돌렸다. 에티오피아 기상청과 티그라이 기상 센터는 2026년 우기에 중간에서 강한 강도의 엘니뇨가 나타날 것으로 내다봤다. 비는 늦게 오고 일찍 그치며, 그 사이 마른 날이 길게 이어지고 기온은 계절을 벗어나 치솟는다는 예보다. 티그라이 50개 농촌 군이 사정권에 들었고, 위기 대응 대상 인구는 370만 명을 넘어섰다. 그 안에 90만 명 넘는 실향민이 포함된다.
수치가 사람의 몸에 닿으면 이런 모습이 된다. 힛삿츠 수용소에서 2025년 5월부터 2026년 초까지 최소 333명이 숨졌다. 1,700명 이상이 위중한 상태로 남았다. 주민들은 불규칙하게 나오는 배급의 절반가량을 팔아야 했다고 증언했다. 곡물을 빻는 제분 비용과 물값을 치르기 위해서다. 받은 식량을 팔아 그 식량을 먹을 수 있게 만드는 일, 이것이 지금 티그라이 수용소의 산수다.
의료는 더 낮은 바닥에 있다. 보건시설의 90퍼센트 이상이 파손됐고 3분의 2는 작동하지 않는다. 2026년 3월 5일 티그라이 보건국은 의료 체계의 전면 붕괴가 임박했다고 경고했다. 굶주림은 모든 연령대에서 가장 큰 사망 원인으로 꼽힌다.
천막 안에는 또 다른 위험이 산다. 수용 공간이 모자라 월세방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더 빽빽한 수용소로 흘러드는 2차 실향이 되풀이된다. 칸막이 없는 거처에서 여성은 착취에 노출되고, 아이들은 보호의 공백에 방치된다. 등록이 늦어졌다는 이유만으로 구호 명단에서 빠지는 사람도 있다. 재난은 늘 가장 약한 자리부터 파고든다.

그렇다면 왜 돌아가지 못하는가
인권 감시기구는 2026년 4월 보고서에서 서부 티그라이를 통제하는 당국과 보안군이 티그라이인을 자의적으로 구금하고, 이동과 취업과 공공서비스 접근을 차별적으로 제한하는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 제도가 추가 실향을 낳는다고도 했다. 티그라이 당국은 연방정부의 귀환 계획을 여러 차례 거부했다. 먼저 돌려보낸 사람들이 서부 접경에서 괴롭힘과 살해와 재실향을 겪었다는 이유다. 돌아갈 땅이 있으나 그 땅에 법이 서 있지 않다. 협정문은 국경을 봉합하지 못했고, 국경은 사람을 놓아주지 않는다.
실향민 수가 줄었다는 통계를 성과로 읽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러나 귀환민 112만이라는 숫자 곁에는 언제나 새로 밀려난 사람들의 줄이 붙어 있다. 티그라이의 실향은 끝나 가는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움직이는 사건이다. 조사팀이 '역동적'이라고 적은 단어의 실제 뜻은 그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걷는다. 2025년 1월 13일부터 사흘간 메켈레, 아드와, 악숨, 시레, 아디그라트를 비롯한 열세 곳 이상의 도시에서 행진이 벌어졌다. 6월 11일에는 임시 행정부 청사 마당까지 들어갔고, 18일부터 20일까지는 메켈레와 스위스 제네바에서 동시에 목소리를 냈다. 수단의 난민촌에 있는 동족까지 대변하겠다며 60명의 위원회를 꾸린 이들이다. 이 행렬을 이끈 것은 국제기구가 아니라 실향민 자신들이 만든 시민단체였다.
세상의 관심은 유가와 해협과 미사일을 따라 움직인다. 티그라이의 천막은 그 어느 항로에도 걸려 있지 않다. 그래서 조용하다. 조용한 재난은 통계로만 남고, 통계는 쉽게 넘겨진다. 그러나 76만이라는 숫자는 76만 개의 이름이며, 그중 다수가 여성과 아이다. 그들은 다섯 번째 우기를 천막에서 났고, 여섯 번째를 바라보고 있다.
평화는 총이 멈춘 자리가 아니다. 사람이 자기 집 문턱을 다시 넘는 자리다. 협정에 서명한 손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언제부터 조용한 죽음을 평화라고 부르기 시작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