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HO도 약물적 임신중지 방법 제시…해외 기준과 국내 허가조건은 구분해야
- 약국에서 바로 사는 약 아니다…처방기관·건강보험 등 세부사항 추가 확인 필요
정부가 임신중지 약물을 국가 의료체계 안으로 정식 도입하는 절차에 나섰다.
현재 임신 63일(9주) 이내 사용을 목적으로 신청된 수입의약품의 품목허가 심사가 진행 중이다.
허가 이후 초기 2년간은 의료기관에서 의사가 직접 처방·조제하는 방식으로 관리할 계획이다.
다만 9주가 국내 최종 사용기준으로 확정된 것은 아니며 실제 사용 시점과 세부적인 처방·관리 기준도 허가심사와 후속 제도 정비를 거쳐야 한다.

흔히 말하는 ‘미프진’…두 성분은 작용 방식 달라
흔히 ‘먹는 낙태약’으로 알려진 임신중지 약물에는 미페프리스톤과 미소프로스톨이 사용된다.
‘미프진’은 임신중지 약물 전체를 가리키는 일반 명칭이 아니라 미페프리스톤 성분 의약품의 상품명이다.
미페프리스톤은 임신 유지에 필요한 프로게스테론의 작용을 차단하고, 미소프로스톨은 자궁 수축을 일으켜 임신 조직의 배출을 돕는다.
두 성분은 작용 방식이 달라 약물적 임신중지 과정에서 함께 사용될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약물적 임신중지를 임신중지 의료의 한 방법으로 다루고 있다.
WHO가 2025년 발간한 ‘임신중지 진료지침’ 제2판은 임신중지와 관련한 임상·서비스 제공 등에 관한 권고와 모범사례를 담고 있다.
다만 WHO는 국가별 법률과 규제, 정책, 의료서비스 환경이 다를 수 있다는 점도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WHO 지침이나 다른 국가의 허가조건을 국내 처방기준으로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임신 9주’는 확정된 국내 사용기준 아니다
이번 발표에서 눈에 띄는 숫자는 임신 63일, 즉 9주다.
그러나 이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이미 국내 사용기준으로 확정한 기간이 아니다.
현재 수입품목 허가·심사가 진행 중인 임신중지 약물이 임상시험 자료 등을 근거로 임신 63일 이내 사용하는 것으로 신청된 상태다.
식약처는 안전성과 효과, 품질, 위해성 관리계획 등 제출자료를 심사해 허가 여부와 조건을 결정할 계획이다.
따라서 현 단계에서는 ‘임신 9주까지 허용됐다’기보다 ‘임신 63일 이내 사용으로 허가가 신청됐다’고 설명하는 것이 정확하다.
미국은 사용기간도 다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미페프리스톤을 미소프로스톨과 사용하는 요법을 마지막 월경 시작일을 기준으로 임신 70일까지의 자궁 내 임신 중지에 승인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허가조건으로, 국내에서 심사 중인 제품의 사용기준과는 별개다.
약만 먹으면 끝난다?…후속 의료체계도 필요
약물적 임신중지는 단순히 약을 복용하는 것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사용 전 임신 상태와 금기사항을 확인하고, 복용 이후에도 필요한 경우 의료적 조치를 받을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
미국 FDA는 자궁외임신이 확인되거나 의심되는 경우 미페프리스톤과 미소프로스톨을 이용한 임신중지 요법을 사용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만성 부신기능부전, 장기간의 코르티코스테로이드 치료, 출혈성 질환 또는 항응고제 사용 등도 금기사항에 포함된다.
FDA의 안전관리 체계에서는 필요한 외과적 처치를 제공할 수 있거나 다른 의료진이 이를 제공하도록 조치할 수 있어야 하며, 응급의료시설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요구한다.
국내에서 어떤 검사와 진료 절차를 거치게 될지는 아직 구체적인 기준을 확인해야 한다.
WHO나 미국의 진료 방식을 국내에서 그대로 적용한다고 단정해서도 안 된다.
허가되더라도 처음 2년은 의료기관에서 처방·조제
품목허가를 받는다고 곧바로 약국에서 자유롭게 구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정부는 도입 초기 2년간 의료기관 안에서 의사가 직접 처방·조제하는 것을 원칙으로 관리할 계획이다.
이후 부작용과 안전성 등을 검토해 점진적인 확대 방안을 검토한다.
여기서 ‘점진적 확대’를 2년 뒤 일반 약국 판매로 단정할 수는 없다.
정부가 현재 밝힌 범위는 초기 2년간의 관리 결과를 토대로 이후 방안을 검토한다는 데까지다.
어떤 의료기관에서 처방할 수 있는지, 처방·조제 과정에서 어떤 검사와 상담을 거칠지 등 구체적인 운영기준도 추가로 마련돼야 한다.
건강보험 적용 여부 역시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낙태죄 효력 잃은 뒤에도 약물 도입은 지연
임신중지 약물 도입 문제는 2019년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이어진 법·제도 정비 문제와도 맞물려 있다.
헌법재판소는 당시 형법상 자기낙태죄와 의사의 낙태죄 조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고 2020년 말까지 법을 개정하도록 했다.
하지만 시한까지 대체입법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해당 조항은 2021년부터 효력을 잃었다.
이후에도 약물을 이용한 임신중지와 관련한 법적·의료적 기준을 둘러싼 문제가 이어졌다.
법제처는 지난 8월 19일 식약처가 요청한 법령해석에서 이 문제를 다뤘다.
당시 쟁점은 모자보건법이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규정하고 약물을 이용한 방법을 포함하지 않는 상황에서 임신중지 약물의 수입품목허가가 모자보건법에 위반되는지 여부였다.
법제처는 의약품 수입품목허가에 필요한 안전성·유효성 등의 요건을 갖췄다는 전제에서 약물을 이용한다는 이유만으로 수입품목허가가 모자보건법에 위반된다고 볼 수 없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다만 이 법령해석은 임신중지와 관련한 모든 법적·의료적 쟁점이 해결됐다는 의미가 아니라 의약품 수입품목허가 가능성에 관한 판단으로 봐야 한다.
온라인에서 판매되는 제품과 정식 허가약 구분해야
정식 허가 이전에 온라인이나 SNS 등을 통해 판매되는 이른바 ‘미프진’과 향후 식약처 심사를 거쳐 정식으로 공급되는 의약품도 구분해야 한다.
정부는 그동안 임신중지 약물의 정식 도입이 지연되면서 제도권 밖에서 약물이 유통돼 여성의 건강과 안전을 저해하는 문제가 있었다고 보고, 국가 의료체계 안에서 관리할 필요성을 제시했다.
정식 허가를 받지 않고 유통되는 제품은 소비자가 성분과 함량, 제조·유통 과정과 보관 상태 등을 확인하기 어렵다.
향후 품목허가를 받은 제품이 공급되더라도 온라인에서 출처가 확인되지 않는 제품까지 정식 허가 의약품으로 볼 수는 없다.
실제 사용 시점보다 먼저 확인해야 할 것들
정부가 정식 도입 방침을 발표하면서 임신중지 약물의 국내 사용을 위한 절차는 한 단계 진행됐다.
그러나 품목허가만으로 임신중지 의료체계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임신 주수와 건강 상태를 어떤 절차로 확인할지, 금기사항을 어떻게 판단할지, 복용 이후 후속 진료와 응급상황에 어떻게 대응할지 등 실제 의료현장에서 적용할 기준이 필요하다.
처방 가능한 의료기관과 건강보험 적용 여부, 환자 부담 비용 등도 향후 확인해야 할 사안이다.
식약처는 허가 신청자료를 토대로 안전성과 효과, 품질 등을 심사하고 있다.
정부는 관련 절차가 진행되는 것을 전제로 2027년 1분기 도입을 목표로 제시하고 있지만, 이는 실제 처방 시작일이 확정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현재 단계에서 분명한 것은 임신중지 약물이 이미 국내에서 정식 판매되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 국가 의료체계 안으로 도입하기 위한 허가와 제도 정비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