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필수·희귀·긴급도입 의약품은 무엇이 다를까
- 11월 개정 약사법 시행…공급 불안 의약품 긴급도입·주문제조 근거 마련
치료제가 있어도 국내에서 구할 수 없다면 환자에게는 없는 약과 다르지 않다.
해외에는 있지만 국내 허가가 없거나 제약사가 품목을 취하하고 공급을 중단·축소하면 치료 현장에 공백이 생길 수 있다.
정부는 이런 상황에 대응해 환자가 해외에서 직접 구하던 의약품 10종을 공적 공급체계로 전환하고, 의료현장에서 공급이 어려워진 4종도 긴급도입 대상에 추가했다.
환자가 해외서 구하던 약, 정부 공급으로 전환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의약품 긴급도입을 확대했다.
긴급도입은 국내에서 허가되지 않은 해외 의약품 가운데 의료현장의 필수성과 다른 의약품으로 대체할 수 있는지 등을 고려해 정부가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를 통해 공급하는 제도다.
이번에는 그동안 환자가 자가치료 목적으로 해외에서 구매·반입하던 의약품 가운데 현장에서 반드시 필요하거나 국내 반입량이 많아 정부가 직접 공급할 필요가 있는 10종을 긴급도입으로 전환했다.
경구 투여가 어려운 중증 결핵 환자에게 사용하는 리팜피신 주사제, 시스틴뇨증 환자의 시스틴 결석 형성을 예방하는 티오프로닌 정제, 시안화물 중독 환자 치료에 사용하는 히드록소코발라민 주사제 등이 포함됐다.
조혈모세포 이식 전 전처치에 사용하는 트레오설판 주사제, 점액수종혼수 치료제인 레보티록신 주사제, 녹농균에 감염된 낭포성 섬유증 환자를 위한 토브라마이신 흡입제 등도 긴급도입으로 전환됐다.
환자가 필요할 때마다 해외 의약품을 개별적으로 구하던 방식에서 정부가 공급 필요성을 판단해 공적 공급망으로 관리하는 방식으로 바뀌는 것이다.

제약사 공급 중단·감소에도 긴급도입
국내에서 사용하던 의약품도 제약사의 품목 취하나 공급 중단·감소로 의료현장에서 구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식약처는 의료·약업 현장과 전문학회·단체의 공급 요청 등을 토대로 4종을 긴급도입 대상에 추가했다.
시스아트라쿠륨 주사제는 전신마취나 중환자 진정 과정에서 골격근을 이완하고 기관 내 삽관과 기계적 환기를 돕는 데 사용한다.
악사틸리맙 주사제는 조혈모세포 이식 후 발생할 수 있는 만성 이식편대숙주질환 치료에 사용한다.
에포프로스테놀 주사제는 폐동맥고혈압 환자의 신체적 운동능력 개선을 위한 치료제다.
다만 에포프로스테놀은 9월 14일 기준 공급을 위한 실무협의가 진행 중이다.
히드로코르티손 주사제는 부신피질 기능부전 등 내분비질환의 급성 상태를 치료하는 데 쓰인다.
이번에는 제약사의 공급량 감소에 대응해 긴급도입 공급 대상에 포함됐다.
이들 품목을 보면 의약품 공급 불안은 희귀질환 환자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중증 결핵 환자와 조혈모세포 이식 환자, 폐동맥고혈압 환자는 물론 전신마취나 기계적 환기가 필요한 환자도 공급 상황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국가필수·희귀·긴급도입 의약품, 무엇이 다를까
의약품 공급 정책에서 자주 등장하는 국가필수의약품, 희귀의약품, 긴급도입 의약품은 서로 같은 개념이 아니다.
국가필수의약품은 질병 관리와 방사능 방재 등 보건의료상 필수적이지만 시장 기능만으로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어려워 국가가 지정하는 의약품이다.
현행 약사법은 보건복지부장관과 식약처장이 관계 중앙행정기관과 협의해 지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희귀의약품은 희귀질환을 진단·치료하는 의약품이나 적용 대상이 드물고 대체 가능한 의약품이 없는 경우 등 법령에서 정한 요건에 따라 식약처장이 지정하는 의약품이다.
공급 방식보다는 질환과 치료 필요성 등을 기준으로 한 분류다.
반면 긴급도입 의약품은 국내에서 허가되지 않은 해외 의약품을 의료현장의 필요성과 대체 가능성 등을 고려해 정부가 직접 공급하는 제도다.
따라서 희귀질환에 쓰인다고 모두 긴급도입 의약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긴급도입 역시 희귀질환 치료제로만 한정되지 않는다.
이번에 중환자의 진정이나 전신마취 과정에서 사용하는 의약품이 포함된 것도 이런 차이를 보여준다.
약이 부족하다고 모두 해외서 들여오는 것은 아니다
제약사의 공급이 중단됐다고 정부가 모든 의약품을 곧바로 해외에서 들여오는 것도 아니다.
긴급도입은 의료현장에서 반드시 필요한지와 다른 의약품으로 대체할 수 있는지 등을 고려해 결정한다.
이번에 4종을 추가하는 과정에서도 의료·약업 현장과 전문학회·단체의 공급 요청이 반영됐다.
긴급도입이 결정되면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가 공적 공급을 담당한다.
개별 환자가 치료 목적으로 해외 의약품을 구매·반입하는 자가치료용 방식과 달리 정부가 공급 필요성을 판단하고 관리하는 구조다.
이번에 자가치료용 의약품 10종을 긴급도입으로 전환한 것도 반복적으로 필요한 일부 해외 의약품의 조달을 환자 개인에게만 맡기지 않고 공적 공급체계로 옮긴다는 데 의미가 있다.
환자 수 적어도 치료에 필요한 약은 공급돼야
필수의약품의 공급 문제는 일반적인 시장 논리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사용하는 환자가 적거나 시장 규모가 작더라도 특정 질환이나 응급상황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의약품이 있을 수 있다.
대체할 수 있는 약이 제한적이라면 공급 중단의 영향은 더욱 커진다.
이번 긴급도입 대상에는 시스틴뇨증과 낭포성 섬유증 같은 질환뿐 아니라 시안화물 중독, 점액수종혼수, 부신피질 기능부전의 급성 상태 등에 사용하는 의약품도 들어 있다.
국가필수의약품을 별도로 지정해 관리하는 것도 시장 기능만으로 안정적인 공급이 어려운 의약품의 공백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결국 의약품의 공공성은 얼마나 많이 팔리는지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환자 수가 적더라도 치료 과정에서 대체하기 어려운 의약품이라면 필요한 시점에 공급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11월부터 긴급도입·주문제조 법적 근거 마련
공적 공급을 위한 법적 기반도 강화된다.
지난 5월 26일 개정된 약사법은 오는 11월 12일 시행된다.
개정법에는 국가필수의약품 등의 주문제조와 긴급도입에 관한 조항이 신설됐다.
공급이 불안정한 의약품에 정부가 개입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해외에서 의약품을 확보하는 긴급도입뿐 아니라 필요한 의약품을 주문제조하는 방식까지 공적 공급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의약품 접근성은 치료제가 개발됐는지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국내에 허가되지 않았거나 생산·수입이 중단돼 환자가 필요한 시점에 약을 구할 수 없다면 치료 현장에서는 공급 공백이 발생한다.
이번 조치는 환자가 해외에서 직접 구하던 일부 의약품과 민간 공급이 어려워진 품목을 공적 공급망으로 옮기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치료에 필요한 약을 필요한 시점에 환자에게 공급할 수 있느냐가 의약품 정책의 또 다른 과제가 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