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교관의 첫마디는 늘 계산된 문장이다. 그래서 더 무겁다. 2026년 9월 15일 앙카라에서 영국의 새 대사가 꺼낸 문장은 군더더기가 없었다.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진 일 앞에 영국은 더 이상 침묵하지 않겠다는 것. 선언 일주일 전, 런던은 이스라엘의 점령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정착촌 생산품 수입을 막았다. 영국 팔레스타인 정책 전환, 서안지구 정착촌 제재, 두 국가 해법, 영국-튀르키예 관계 — 이 네 축이 한 사람의 부임 인사안에서 만났다. 말은 앙카라에서 나왔지만, 겨냥한 곳은 텔아비브였다.
영국의 대(對)팔레스타인 노선이 여름을 지나며 방향을 틀었다. 7월 앤디 버넘 총리 체제가 출범했고, 에드 밀리밴드 외무장관은 하원에서 서안지구 정책의 전면 재설정을 예고했다. 그 예고는 9월 8일 현실이 됐다. 영국 정부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불법 정착촌 생산품의 수입 금지와 정착촌을 돕거나 그로 이익을 얻는 개인·기업에 대한 제재를 발표했다. 이스라엘은 영국 영사관 폐쇄와 영국 의원 입국 금지 등으로 맞대응했다.
바로 그날, 제니퍼 앤더슨 신임 주튀르키예 영국 대사가 앙카라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신임장을 제정했다. 앤더슨은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주앙카라 영국대사관 차석으로 일했고, 보츠와나 고등판무관과 외무부 영사·위기관리 국장을 지낸 직업 외교관이다. 질 모리스 전 대사의 후임으로 8월에 부임했다. 우연이라기에는 시점이 절묘하다. 런던의 정책 전환과 앙카라의 새 얼굴이 같은 날 맞물린 셈이다.
9월 15일 앙카라에서 나온 그의 첫 공개 발언은 짧고 분명했다.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에서 벌어진 고통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으며, 영국은 침묵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는 두 국가 해법이 영국의 기본 정책임을 못 박았고, 서안지구 정착촌 확대를 막는 조치를 거론하며 이스라엘 정부를 말이 아닌 행동으로 평가하겠다고 밝혔다. 양국 관계 대목에서는 숫자를 꺼냈다. 교역 규모 286억 파운드, 4월의 전략적 동반자 협정, 7월 앙카라 나토 정상회의에서 서명된 안보·국방 파트너십이다. 튀르키예어 연수를 마치고 부임한 그는 이스탄불보다 앙카라가 좋다고 말하며, 가장 좋아하는 음식으로 카랄라하나 사르마스를 꼽았다.
외교는 문장으로 시작해 제도로 굳는다. 침묵하지 않겠다는 선언은 이미 수입 금지와 제재라는 형태로 번역됐다. 남은 질문은 두 가지다. 영국의 전환이 두 국가 해법을 되살릴 실효를 낼 것인가, 그리고 이 흐름에서 튀르키예는 어떤 몫을 맡을 것인가. 앙카라의 새 대사가 내놓을 다음 문장이, 그 답의 첫 단서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