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핀란드·일본 사례서 보이는 공통점…시설 확충보다 서비스 전달체계 재편
- 국토부·국토연구원 첫 OECD 지역개발정책 세미나…한국형 지역격차 해법 모색
지방의 인구감소와 고령화가 이어지면서 병원·돌봄 등 생활서비스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가 지역격차의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국토교통부와 국토연구원은 9월 10일 제1회 OECD 지역개발정책 세미나를 열고 지역회복·지역혁신·인구변화·디지털 전환 등 OECD 지역정책 동향과 국내 정책의 연계 방안을 논의했다.
OECD가 인구감소 지역에 제시하는 방향은 단순한 인구 유입을 넘어 줄어드는 인구에 맞춰 의료·돌봄 등 서비스망과 공간, 재정, 지역 간 협력체계를 다시 설계하는 것이다.

인구가 줄면 의료·돌봄 유지도 어려워진다
인구감소가 곧바로 병원 폐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인구가 줄고 고령화가 진행되면 의료·돌봄 서비스를 제공할 인력과 재원을 확보하기 어려워지고, 서비스 이용 규모가 작아지면서 시설과 인프라를 유지하는 비용 부담도 커질 수 있다.
OECD는 인구감소 지역에서 노동력과 숙련인력이 부족해지고 지방의 세입 기반이 약해지는 동시에 서비스 제공의 규모의 경제가 떨어질 수 있다고 분석한다.
특히 고령화와 인구감소가 겹치는 지역에서는 의료와 사회서비스 수요를 유지하면서 서비스 전달체계를 효율화해야 하는 과제가 커진다.
OECD가 우려하는 것은 이런 변화가 인구감소→인프라·서비스 이용 감소→투자와 서비스 약화→지역 매력 저하→추가 인구 유출의 악순환으로 이어지는 경우다.
따라서 지역격차를 판단할 때는 병원이나 복지시설의 숫자만 볼 것이 아니라 주민이 실제 필요한 서비스에 얼마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지를 함께 봐야 한다.
OECD가 말하는 ‘스마트한 축소’
OECD가 2025년 제시한 ‘Shrinking Smartly and Sustainably’는 인구감소 자체를 무조건 되돌리려 하기보다, 인구 변화가 장기간 이어지는 지역의 현실을 정책에 반영하자는 접근이다.
OECD는 인구 전망과 지역별 데이터를 전략계획과 공공투자에 반영하고, 지역별 인구 변화에 맞춰 서비스·인프라·재정정책을 조정할 것을 권고한다.
지역마다 인구 감소의 원인과 속도가 다른 만큼 장소 기반(place-based) 정책도 강조한다.
핵심은 지방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주민의 삶의 질과 서비스 접근성을 유지하도록 정책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병원 하나보다 ‘서비스망’ 다시 짜야
의료·돌봄 분야에서 OECD가 제시하는 대표적인 방향은 지역 서비스 거점이다.
OECD는 인구가 적은 지역에서 의료·교육·디지털 접근 등 필수서비스를 접근성이 좋은 곳에 결합한 거점으로 운영하고, 거점 위치는 인구 분포와 이동시간 등 지리적 조건을 반영해 정할 것을 제안한다.
2024년 OECD의 ‘Getting to Services in Towns and Villages’도 인구가 적은 지역에서 서비스 접근성을 유지하려면 서비스 배치와 교통, 디지털 접근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제시한다.
따라서 모든 읍·면에 같은 규모의 병원과 복지시설을 새로 설치하는 방식보다 생활권 안에서 이용해야 하는 기초서비스는 가깝게 유지하고, 전문서비스는 지역 거점과 연결하는 구조가 대안이 될 수 있다.
해외 사례도 ‘시설 수’보다 전달체계에 초점
OECD가 소개한 핀란드 사례에서는 인구감소와 고령화에 대응해 의료·사회서비스의 책임과 전달체계를 재편하는 한편, 디지털 서비스와 예방적 건강관리 등을 활용하고 있다.
다만 고령층의 디지털 접근성 차이를 고려해 대면서비스와 병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도 지적된다.
일본의 산간지역 등에서는 인구가 적은 지역에 시설을 추가로 배치하기보다 이동형·방문형 서비스로 의료와 돌봄 접근성을 보완하는 방식이 활용돼 왔다.
이런 사례가 한국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서비스가 부족한 지역에 시설을 계속 추가하는 것만이 해법은 아니라는 점은 참고할 만하다.
OECD가 본 한국도 ‘적응형 지역정책’ 필요
OECD는 한국의 인구감소와 고령화가 수도권에서 멀어질수록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는 공간적 특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2025년 한국 관련 보고서는 인구감소에도 토지 소비와 인프라 비용이 계속 증가할 수 있다고 지적하며, 성장 중심의 공간계획에서 적응적이고 장소 기반인 정책으로 전환할 필요성을 제시했다.
OECD의 2025년 종합보고서에서는 2060년 한국의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약 44%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인구감소와 고령화를 지역정책뿐 아니라 의료·사회서비스·재정의 문제로 함께 다뤄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즉 한국에서도 지역마다 같은 정책을 적용하기보다 인구구조와 교통, 생활권, 산업 기반에 따라 서비스 공급 방식을 달리하는 지역 맞춤형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지역격차 해법은 ‘더 짓기’보다 ‘더 연결하기’
이번 제1회 OECD 지역개발정책 세미나는 OECD 지역정책 논의를 국내에 공유하고 국내 정책과의 연계를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다만 공개된 세미나 안내 내용에는 OECD 지역개발정책위원회의 주요 논의 분야와 정책협력 방향이 담겨 있을 뿐, 의료·돌봄 분야에서 어떤 구체적인 결론이 도출됐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번 세미나를 계기로 살펴볼 수 있는 OECD의 핵심 메시지는 인구가 줄어드는 지역에서 과거와 같은 규모의 시설을 유지하는 데만 집중하기보다, 남아 있는 주민이 필요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전달체계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생활권별 서비스 거점을 만들고, 인접 지자체가 시설과 인력을 공동 활용하며, 필요에 따라 이동형·방문형 서비스와 디지털 기술을 결합하는 방식이다.
OECD는 이런 접근을 통해 인구감소가 서비스 약화와 추가 인구 유출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완화할 수 있다고 본다.
결국 지역격차 정책의 질문은 “지방에 병원이 몇 개 남을 것인가”에서 끝나지 않는다.
인구가 줄어든 뒤에도 주민이 병원과 돌봄에 접근할 수 있도록 지역의 공간과 서비스망을 어떻게 다시 설계할 것인가.
인구 유입과 일자리 정책이 장기적인 지역 회복을 위한 해법이라면, 현재 지방에 거주하는 주민이 의료·돌봄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이용하도록 하는 정책은 지금 당장 필요한 대응이다.
OECD의 ‘스마트한 축소’가 한국의 지역정책에 던지는 시사점도 여기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