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역이나 대형마트, 병원에서 매일 이용하는 에스컬레이터와 승강기. 평소에는 별다른 위험을 느끼지 못하지만 균형을 잃기 쉬운 사람에게는 순간적인 발 디딤 실수가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고령자는 낙상 자체뿐 아니라 넘어졌을 때 발생하는 골절과 머리 손상 등에 주의해야 한다.
최근 국내 연구에서도 75세 이상은 낙상 후 의료 부담이 특히 큰 것으로 나타났다.
2026년 대한예방의학회 학술지에 발표된 국내 연구에서는 제14차 국가손상종합통계(2022)를 분석한 결과, 75세 이상 낙상 환자의 응급실 방문 후 입원 비율이 42.9%로 나타났다. 또 75세 이상은 전체 낙상 관련 사망자의 45.4%를 차지해, 고령층에서는 낙상이 입원과 사망으로 이어지는 부담이 상대적으로 큰 것으로 분석됐다.
이런 가운데 정부도 에스컬레이터 안전대책 마련에 나섰다.

행정안전부는 29일 서울 연세대학교에서 국민 200여 명과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모두의 토론회’를 열어 에스컬레이터 사고 원인과 이용 행태, 제도·설비·유지관리 개선 방안 등을 논의한다. 단순한 이용방식 논쟁을 넘어 근본적인 안전대책을 찾는 것이 이번 토론회의 취지다.
행안부는 토론회에서 나온 의견을 토대로 에스컬레이터의 안전한 이용환경과 안전문화 개선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에스컬레이터 사고, 고령층은 ‘넘어짐’에 특히 주의
고령자의 에스컬레이터 사고에서는 기계 끼임뿐 아니라 균형을 잃고 넘어지는 낙상에 특히 주의해야 한다.
미국 소비자제품안전위원회(CPSC)는 고령자의 소비자제품 관련 낙상을 분석하면서 승강기·에스컬레이터에서 발생하는 낙상을 별도 위험범주로 관리하고 있다. 다만 최신 자료에서는 에스컬레이터만 분리한 고령자 사고 비율을 제시하지 않는다.
과거 에스컬레이터 특화 연구에서는 낙상 위험이 보다 뚜렷하게 나타났다. 미국의 65세 이상을 대상으로 1991~2005년 자료를 분석한 연구에서는 에스컬레이터 관련 부상의 84.9%가 미끄러지거나 걸려 넘어지는 사고와 관련됐다.
중국 광저우 지하철의 2013~2015년 사고 분석에서도 낙상이 가장 흔한 사고 유형으로 나타났다.
다만 이들 연구는 오래된 특정 국가·지역 자료인 만큼 현재 국내 사고율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최근 중국의 2019~2022년 국가손상감시 자료에서는 60세 초과 고령자의 낙상 시 골절 비율이 36.84%였고, 연령이 높아질수록 머리 손상과 중증 손상이 증가하는 경향이 확인됐다.
결국 국내외 자료가 시사하는 핵심은 ‘고령자가 에스컬레이터 사고를 더 많이 당한다’는 단정이 아니라, 균형을 잃어 넘어질 경우 골절이나 머리 손상 등 심각한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에스컬레이터에서는 타고 내릴 때 서두르지 않고 손잡이를 잡아 몸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보행이 불안하거나 균형 유지가 어려운 경우에는 이용 가능한 환경이라면 승강기를 선택하는 것도 방법이다.
타고 내리는 ‘첫발과 마지막 발’에 집중해야
에스컬레이터에서는 움직이는 발판에 올라타고 내려서는 순간 몸의 균형이 흔들릴 수 있다.
따라서 서둘러 타고 내리지 말고 발판의 움직임을 확인하면서 이동하는 것이 좋다. 탑승한 뒤에는 손잡이를 잡고 안정적으로 서 있는 것이 안전하다.
양손에 짐을 들고 있으면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었을 때 손잡이를 잡기 어렵다는 점도 생각해야 한다. 보행보조기구를 사용하거나 균형 유지가 어렵다면 이동시설 선택 자체를 신중하게 하는 것이 좋다.
무엇보다 뒤에서 사람이 기다린다는 이유로 급하게 올라타거나 내리는 행동은 피해야 한다.
승강기도 안심할 수 없다…문보다 ‘발밑’ 먼저 확인
평평한 바닥에서 타고 내리는 승강기는 에스컬레이터보다 안전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고령자의 낙상 위험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고령자 승강기 관련 부상 연구에서는 부상의 51.4%가 미끄러짐·걸림·낙상으로 발생했다. 부상자 가운데 14.5%가 입원했고, 입원한 사람의 40% 이상에서 고관절 골절이 확인됐다. 연구진은 특히 승강기를 타고 내릴 때 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생활에서는 문이 열렸다고 바로 움직이기보다 승강기가 층에 제대로 정지했는지와 발을 디딜 곳을 먼저 확인한 뒤 이동하는 습관이 중요하다.
문이 닫히려고 할 때 급하게 몸을 넣거나 뛰어 들어가는 것도 피하는 것이 좋다.
계단에서는 난간이 중요한 ‘안전장치’
계단은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에스컬레이터보다 안전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한 번 발을 헛디디면 연속해서 굴러 떨어질 수 있다는 위험이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고령자 낙상 예방을 위해 계단 양쪽에 난간을 설치하고 충분한 조명을 확보할 것을 권고한다. 난간은 균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줄 뿐 아니라 넘어지는 순간 몸을 지지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특히 계단을 내려갈 때는 발밑을 확인할 수 있도록 시야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큰 짐 때문에 계단이 보이지 않거나 한 손으로 휴대전화를 보면서 이동하는 행동은 피하는 것이 안전하다.
평소 사용하는 안경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CDC는 다초점이나 누진렌즈가 상황에 따라 사물의 거리감을 다르게 느끼게 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어 계단을 이용할 때는 더욱 주의할 필요가 있다.
‘조심하세요’만으로 부족…몸의 낙상 위험도 확인해야
고령자의 낙상 예방을 시설 이용수칙만으로 해결하기는 어렵다.
시력 저하뿐 아니라 어지럼이나 졸림을 일으킬 수 있는 일부 약물, 다리 근력과 균형 능력 등 개인의 신체 상태도 낙상 위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CDC는 낙상 예방을 위해 복용 약물을 의료진과 점검하고, 시력 검사와 다리 근력·균형을 향상시키는 운동을 권고한다.
최근 넘어졌거나 걸을 때 자주 휘청거리고 계단 이용이 이전보다 불안해졌다면 단순히 ‘나이가 들어서’라고 넘기기보다 자신의 낙상 위험을 점검해 보는 것이 좋다.
에스컬레이터·계단·승강기, 이것만은 기억해야
일상에서 실천할 안전수칙은 복잡하지 않다. 에스컬레이터에서는 손잡이를 잡고 타고 내릴 때 서두르지 않기, 계단에서는 난간을 잡고 발밑을 확인하기, 승강기에서는 문이 열리면 바닥과 정지 상태를 확인한 뒤 이동하기가 기본이다.
여기에 양손을 짐으로 가득 채우지 않고, 휴대전화를 보면서 계단이나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지 않는 습관도 필요하다. 평소 어지럼증이나 균형 저하가 있거나 보행이 불안정하다면 이동시간을 조금 더 여유 있게 잡는 것이 안전하다.
정부가 에스컬레이터 안전대책 마련에 나선 것도 의미가 있지만 사고 예방을 이용자 개인의 주의에만 맡겨서는 한계가 있다. 행안부 역시 이번 논의에서 사고 원인과 이용 행태뿐 아니라 제도·설비·유지관리 개선을 함께 다루기로 했다.
초고령사회에서 에스컬레이터와 계단, 승강기는 단순한 편의시설을 넘어 일상적인 이동권과 연결된 시설이다.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당부와 함께 넘어질 가능성을 낮추는 시설과 이용환경을 만드는 것, 고령사회에서 필요한 낙상 예방정책의 또 다른 과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