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약과 생약 성분을 이용한 의약품의 허가 기준이 제품 특성에 맞게 정비된다. 기존 의약품과 제형 차이가 크지 않은 일부 일반의약품은 허가 과정에서 제출해야 하는 자료가 줄어들고, 천연물의 특성상 일률적으로 적용하기 어려웠던 품질기준도 합리적으로 조정된다.
이번 변화의 핵심은 한약·생약제제의 허가 기준 자체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제품의 특성과 실제 품질관리에 필요한 수준에 맞춰 규제를 세분화하는 것이다. 불필요하거나 중복되는 자료 제출은 줄이는 대신 품질과 안전성 관리에 필요한 기준은 보다 명확하게 한다는 방향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한약(생약)제제 등의 품목허가·신고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행정예고하고 오는 9월 15일까지 의견을 받는다. 주요 내용은 일반의약품 동등성 자료 면제 제형 명확화, 한약·생약제제 표준품 순도기준 예외 인정, 제제학적 시험항목 현행화, 희귀의약품 주성분 복수규격 인정 범위 확대 등이다.
엑스제·유동엑스제도 동등성 자료 면제 대상에
제약업계에서 주목할 변화 가운데 하나는 일반의약품 허가 때 요구되는 동등성 자료다.
일반의약품을 허가받으려 할 때 이미 허가·신고된 제품과 제형 차이가 경미한 경우 별도의 동등성 자료 없이 허가할 수 있는데, 이번 개정안은 어떤 제형이 이에 해당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정한다.
특히 한약·생약제제에 사용되는 ‘엑스제’와 ‘유동엑스제’를 대상에 추가했다. 경구용액제와 시럽제뿐 아니라 엑스제와 유동엑스제까지 제형 차이가 경미한 범위로 구체화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이미 허가된 일반의약품과 큰 차이가 없는데도 제형이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자료를 다시 준비해야 했던 일부 부담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제품 허가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자료의 범위를 보다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게 된다. 자료 준비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을 줄이는 동시에 허가제도의 예측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다만 모든 한약·생약제제의 동등성 자료 제출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개정안은 기존 허가·신고 품목과 제형 차이가 경미한 일반의약품을 대상으로 면제되는 제형을 명확하게 규정하는 내용이다.
천연물에 일률적인 ‘99% 순도’ 적용 어려워
한약·생약제제의 특성을 보다 현실적으로 반영하는 품질기준도 마련된다.
한약·생약제제는 식물 등 천연물에서 유래하는 원료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합성된 단일 성분과 동일한 방식으로 품질을 평가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식약처는 표준생약처럼 함량 99%를 충족하기 어려운 특성을 고려해 타당한 자료를 제출하면 별도의 기준을 설정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이는 품질기준을 낮추겠다는 의미와는 차이가 있다. 일률적인 수치만 적용하기보다 원료의 특성을 고려하면서 그에 대한 과학적 근거자료를 제출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전통적으로 사용돼 온 생약 원료를 현대적인 의약품 품질관리 체계에서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에 대한 규제 방식이 보다 세분화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자료는 줄여도 품질관리는 유지
허가자료를 합리화하는 것과 별개로 필요한 품질관리 기준은 명확하게 한다.
개정안은 내용고형제에 대해 ‘대한민국약전’에 따른 미생물한도시험 자료 제출 대상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결국 이번 규제 변화는 단순한 ‘허가 완화’로 해석하기보다 제품의 안전성과 품질을 확인하는 데 필요한 자료와 그렇지 않은 행정적 자료를 구분하는 방향에 가깝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중요한 부분이다. 허가 과정의 일부 자료가 간소화된다고 해서 의약품의 품질이나 안전성 확인 절차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시험법 이름만 바뀌면 변경허가 대신 연차보고
의약품을 허가받은 이후 발생하는 행정절차도 일부 간소화된다.
현재 허가받은 제품의 기준이나 시험방법에 변경이 발생하면 이에 따른 허가관리 절차가 필요하다.
앞으로는 기준과 시험방법 자체에는 변화가 없고 공정서 일반시험법의 명칭만 변경되는 경우 별도의 변경허가 없이 연차보고만 할 수 있도록 개선한다.
실제 제품의 품질관리 방식에는 변화가 없는데 시험법 명칭이 달라졌다는 이유만으로 변경허가 절차를 밟아야 하는 행정 부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제약산업에서는 제품 개발뿐 아니라 허가 이후의 변경관리에도 상당한 행정업무가 발생한다. 안전성이나 품질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변경사항을 별도로 구분하면 기업의 규제 대응 부담을 줄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희귀의약품은 원료 규격 선택 범위 확대
희귀의약품과 관련된 규제도 개선된다.
기존에는 희귀의약품이 원료의약품 등록(DMF) 대상에서 제외돼 주성분 복수규격 인정 대상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개정안에서는 희귀의약품도 DMF 등록에 준하는 품질자료 등을 제출하면 주성분의 복수규격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범위를 확대한다.
제약사 입장에서는 일정한 품질기준을 충족하는 범위에서 원료 규격을 관리할 수 있는 선택지가 확대되는 셈이다.
다만 이번 자료에는 제도 변화가 실제 희귀의약품의 생산비용이나 공급 안정성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은 담겨 있지 않다. 따라서 산업 현장에서의 효과는 제도 시행 이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전통의약품도 ‘특성에 맞는 규제’로
이번 개정안에서 주목할 점은 한약·생약제제를 단순히 전통적인 의약품 영역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현대적인 의약품 허가·품질관리 체계 안에서 제품 특성에 맞게 규제를 정비하려는 움직임이다.
제형 차이가 경미한 제품의 불필요한 자료 제출은 줄이고, 천연물 특성상 일률적으로 적용하기 어려운 기준에는 합리적인 예외를 허용한다. 반면 미생물 관리처럼 품질과 직접 연결되는 기준은 보다 명확하게 한다.
제약업계에는 규제의 ‘강도’ 못지않게 ‘예측 가능성’도 중요하다. 어떤 자료가 필요하고 어떤 기준을 충족해야 하는지 명확해야 연구개발 단계부터 시험과 허가 전략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식약처도 이번 개정을 통해 한약·생약제제의 특성을 반영해 허가·심사 기준을 정비하고 제출자료 범위를 합리적으로 개선함으로써 허가·심사의 일관성과 업계의 예측 가능성을 높인다는 방침이다.
결국 이번 규제 변화는 ‘한약·생약제제의 허가를 쉽게 한다’기보다 ‘제품 특성에 맞지 않는 규제는 걷어내고 필요한 품질관리는 분명하게 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이러한 변화가 기업의 허가 부담을 실질적으로 줄이고 새로운 한약·생약제제 개발과 제품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향후 개정안 확정과 시행 과정에서 지켜볼 부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