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부산에서 지역도시까지…한국의 ‘고령친화도시’는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나

WHO 네트워크 참여 지자체 살펴보니…보행·주거·건강·돌봄·사회참여까지 생활환경 개선

노인복지 넘어 교통·주거·일자리까지…‘살던 곳에서 나이 들기’ 위한 도시정책 확대

WHO 가입은 ‘인증’ 아닌 개선 과정…2026년 국내 고령친화도시 지정제도와는 별개

노인이 안전하게 집 밖으로 나와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필요한 건강·돌봄 서비스를 받으면서 일과 여가, 사회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지역은 어떤 모습일까. 국내에서는 서울이 2013년 세계보건기구(WHO) 고령친화도시 및 지역사회 글로벌 네트워크에 처음 가입한 이후 부산과 인천, 수원을 비롯한 여러 지방자치단체가 참여해 왔다. 다만 WHO 네트워크 가입은 해당 도시의 고령친화성이 완성됐다는 ‘인증’이 아니라 지속적인 개선을 약속하고 실행하는 참여 체계라는 점에서, 가입 명칭보다 실제 정책과 주민 참여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고령친화도시의 일상을 표현한 이미지 (AI 제작)

 

고령친화도시는 ‘노인복지시설이 많은 도시’와 다르다

고령친화도시를 노인복지관이나 요양시설이 많은 도시로만 이해하면 개념의 상당 부분을 놓치게 된다. WHO의 고령친화도시 접근은 노인이 지역에서 일상을 이어가는 데 영향을 미치는 물리적 환경과 사회적 환경을 함께 살펴보는 데 초점을 둔다.

 

집에서 나와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지, 자동차를 운전하지 않아도 이동할 수 있는지, 나이가 들어도 살기 편한 주거환경인지가 중요하다. 여기에 사람들과 만나고 지역 활동에 참여할 기회가 있는지, 일할 기회와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지, 건강·돌봄 서비스를 이용하기 쉬운지도 연결된다.

 

따라서 국내 사례 역시 단순히 ‘노인을 위한 사업이 몇 개 있는가’를 비교하기보다 각 지방자치단체가 이동·주거·사회참여·건강·돌봄 등을 어떻게 지역정책으로 연결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고령친화도시의 취지에 가깝다.

 

서울, 국내 첫 WHO 네트워크 가입…시니어가 정책을 살피다

서울은 국내 고령친화도시 정책의 초기 사례로 꼽을 수 있다. WHO 공식 자료에 따르면 서울은 2011년 고령친화도시 조성을 뒷받침할 조례와 위원회 등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고, 2012년 첫 3개년 실행계획을 발표했다.

 

이러한 준비를 거쳐 2013년 6월 국내 도시 가운데 처음으로 WHO 고령친화도시 및 지역사회 글로벌 네트워크에 가입했다. WHO에는 서울의 가입 연도도 2013년으로 등록돼 있다.

 

서울 사례에서 특히 눈여겨볼 부분은 노인을 정책의 대상에만 두지 않고 정책 과정에 참여시키려 했다는 점이다.

서울시는 2012년부터 ‘어르신정책모니터링단’을 운영했다. WHO가 별도의 고령친화 실천사례로 소개한 자료에 따르면 시니어들이 일정한 주제를 살펴본 뒤 의견을 시 관계자와 공유하는 방식으로 운영됐으며, 고령자의 정책 결정 참여 기회를 확대하려는 목적을 두고 있었다.

 

고령친화도시에서 당사자 참여가 왜 중요한지도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행정기관이 노인에게 필요한 것을 일방적으로 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불편한 점과 필요한 변화를 직접 제안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부산, 일자리·복지와 교통·주거·안전을 함께 보다

부산은 2016년 WHO 글로벌 네트워크에 가입했다. WHO 공식 프로필에서도 가입 연도를 2016년으로 확인할 수 있다.

WHO에 등록된 부산의 정책 설명을 보면 일자리와 복지시설, 취약노인 돌봄, 건강관리, 평생학습 등 여러 영역을 고령친화도시 조성과 연결해 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복지서비스만이 아니다. 부산은 모든 세대가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교통·주거·안전·건강 환경을 만드는 것이 고령친화도시 조성과 밀접하게 연결된다고 설명하고 있으며, 정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노인의 의견을 반영하겠다는 방향도 제시하고 있다.

 

다만 WHO 부산 프로필에는 과거 특정 시점의 일자리 수와 시설 수 등도 함께 소개돼 있다. 이러한 숫자를 2026년 현재의 부산시 사업 규모로 사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아 이번 기사에서는 제외했다.

 

가입 당시 정책을 현재 사업 실적처럼 소개하기보다 부산이 고령친화정책을 복지·건강뿐 아니라 교통과 주거, 안전 등 생활환경까지 넓혀 접근해 왔다는 구조를 살펴보는 편이 정확하다.

 

인천은 2025~2029년 계획으로 정책을 다시 구성

인천은 비교적 최근 정책까지 WHO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례다.

WHO 공식 자료에 따르면 인천광역시는 2022년 글로벌 네트워크에 가입했으며, 현재 2025~2029년을 대상으로 하는 두 번째 고령친화도시 5개년 기본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계획은 돌봄·건강, 일자리·참여, 생활환경, 사회참여, 존중·사회통합 등 5개 분야로 구성된다. 세부적으로는 13개 과제, 77개 사업이 포함돼 있으며 WHO가 제시하는 고령친화도시의 8개 영역을 포괄하도록 구성했다고 인천시는 WHO에 제출한 자료에서 설명하고 있다.

 

분야별로 보면 돌봄·건강 26개, 일자리·참여 12개, 생활환경 14개, 사회참여 17개, 존중·사회통합 8개 세부사업으로 구성돼 있다.

 

인천 사례는 고령친화도시가 하나의 ‘노인복지사업’이 아니라 여러 부서와 정책을 하나의 생활 관점에서 묶는 방식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돌봄이 필요한 시니어에게는 건강·복지서비스가 중요하지만, 비교적 건강한 시니어에게는 일자리와 사회참여가 중요할 수 있다. 집 밖으로 나가려면 보행과 교통환경이 뒷받침돼야 하고, 지역사회에서 세대 간 관계를 유지할 환경도 필요하다.

즉 사람의 상태가 달라지더라도 가능한 한 같은 지역에서 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여러 생활조건을 함께 살펴보는 것이다.

 

대도시만의 정책 아니다…기초지자체도 참여

고령친화도시 정책은 서울·부산·인천 같은 광역도시에서만 추진되는 것은 아니다.

WHO의 현재 네트워크 자료에는 국내 여러 기초지방자치단체도 참여지역으로 등록돼 있다. 수원은 2016년, 부여군은 2022년, 진주시는 2023년, 부산 동구는 2024년 가입한 것으로 확인된다.

 

지역 규모와 여건이 다르면 고령친화정책의 우선순위도 달라질 수 있다. 대중교통망이 촘촘한 대도시와 인구가 분산된 농어촌에서 시니어의 이동 문제를 같은 방식으로 해결하기 어렵고, 의료기관이나 생활편의시설의 접근성도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부산 동구의 사례를 보면 WHO의 8개 영역을 지역 실정에 맞춰 야외공간·건물, 교통환경, 주거환경, 여가·사회참여, 존중·사회통합, 시민참여·고용, 의사소통·정보, 지역복지·건강으로 구성해 실행계획을 마련했다.

 

결국 ‘한국형 고령친화도시’라는 하나의 고정된 모형이 있다기보다 WHO의 기본 틀을 토대로 지역의 인구구조와 생활환경에 맞는 정책을 구성하는 방식에 가깝다.

 

고령친화도시가 바꾸려는 것은 결국 ‘하루의 생활’

고령친화도시라는 용어는 거창하지만 실제 정책이 다루는 것은 일상적인 문제다.

집 밖으로 나왔을 때 보행로를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고, 자동차를 운전하지 않더라도 시장이나 병원에 갈 수 있어야 한다. 걷다가 쉴 공간이 필요하고, 몸이 불편해지면 건강·돌봄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건강한 시니어에게는 일과 자원봉사, 평생교육이나 문화활동에 참여할 기회도 필요하다. 정책이나 복지서비스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는지도 중요하다.

 

서울의 정책 모니터링은 당사자 참여, 부산은 복지와 생활환경을 함께 보는 접근, 인천의 2025~2029년 기본계획은 돌봄·건강에서 일자리·생활환경·사회참여까지 연결하는 구조를 보여주는 사례로 볼 수 있다.

 

도시마다 강조점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노인의 삶을 복지 한 분야에 한정하지 않고 지역에서 보내는 하루 전체의 관점에서 살펴본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WHO 가입은 ‘인증마크’가 아니다

다만 WHO 글로벌 네트워크 가입의 의미는 정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WHO의 서울·부산·인천 공식 프로필에는 모두 해당 지역을 고령친화성을 더욱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지역이라는 의미의 ‘Committed To Becoming More Age-Friendly’로 표시하고 있다.

 

따라서 WHO 네트워크에 가입했다는 사실을 근거로 ‘WHO가 고령친화성을 인증한 도시’, ‘WHO가 인정한 완성형 고령친화도시’라고 표현하는 것은 피하는 것이 정확하다.

 

네트워크 참여 여부만으로 정책의 성과를 판단해서도 안 된다. 계획한 사업이 실제로 시행됐는지, 노인이 정책 과정에 얼마나 참여했는지, 보행·교통·주거·건강·돌봄·사회참여 환경에서 주민이 어떤 변화를 경험했는지는 별도의 평가가 필요하다.

 

2026년부터 국내 ‘고령친화도시 지정’도 별도로 봐야

올해부터는 WHO 글로벌 네트워크 참여와 국내 고령친화도시 지정제도를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WHO 고령친화도시 및 지역사회 글로벌 네트워크와 별개로 우리나라에서는 노인복지법을 근거로 한 국내 고령친화도시 지정제도가 2026년부터 시행됐다.

 

따라서 서울이 2013년 WHO 네트워크에 가입했다는 사실과 2026년 국내 법률에 따라 정부가 지방자치단체를 고령친화도시로 지정하는 것은 서로 다른 제도다.

 

서울·부산·인천 사례는 WHO 글로벌 네트워크 참여와 WHO가 공개한 각 지역의 정책자료를 토대로 살펴볼 수 있다. 이들 지역을 국내 법률에 따른 정부 지정 도시라고 표현하지 않는다.

WHO 글로벌 네트워크 참여와 국내 법률에 따른 정부 지정은 서로 다른 체계인 만큼, 특정 지역의 고령친화도시 지위를 설명할 때는 어느 제도에 해당하는지 구분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명칭보다 ‘이 동네에서 계속 살 수 있는가’

고령친화도시의 성과는 결국 노인의 생활에서 확인돼야 한다.

나이가 들어 운전을 중단해도 이동할 수 있는지, 몸이 불편해져도 집에서 생활할 수 있는지, 필요한 의료·돌봄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는지, 혼자 살더라도 사람들과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건강할 때는 일하고 배우고 지역사회에 참여할 기회가 있는지도 중요하다. 시니어의 의견이 지역정책을 만드는 과정에 반영되는지도 고령친화성을 판단하는 한 요소가 될 수 있다.

 

서울·부산·인천 등 국내 지방자치단체의 WHO 네트워크 참여 사례는 이러한 요소를 지역정책으로 연결하려는 여러 접근을 보여준다. 다만 가입 명칭이나 계획만으로 성과를 판단할 수는 없으며, 실제 사업의 이행과 주민이 체감하는 생활환경의 변화를 함께 살펴봐야 한다.

 

결국 고령친화도시를 판단하는 질문은 ‘나이가 들어 생활방식이 달라져도 내가 살아온 지역에서 일상을 계속 이어갈 수 있는가’로 모인다. WHO 네트워크 참여 역시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한 과정으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작성 2026.08.25 14:03 수정 2026.08.25 14:03

RSS피드 기사제공처 : 웰라이프타임즈 / 등록기자: 이장연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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