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강릉으로 향하는 길은 언제나 바다에 대한 기대를 품게 한다. 산을 넘어 동해가 가까워질수록 여행자의 마음도 조금씩 가벼워진다. 강릉 하면 경포대와 정동진, 안목해변과 커피거리를 먼저 떠올리지만 이번 여행의 목적지는 조금 달랐다. 자연과 예술, 그리고 동해의 풍경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하슬라아트월드’를 찾아 나섰다.
‘하슬라’는 강릉의 옛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오랜 시간 이 지역을 지켜온 이름이 오늘날에는 예술과 자연이 어우러진 문화공간의 이름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부터 특별하게 다가온다. 하슬라아트월드는 강릉시 강동면 동해를 바라보는 언덕에 자리하고 있다. 산비탈을 따라 조성된 공간에 들어서면 일반적인 미술관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역시 바다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동해는 시야를 가로막는 것 없이 멀리 수평선까지 펼쳐진다. 실내 전시장을 걷다가 창밖을 바라보면 푸른 바다가 한 폭의 그림처럼 들어오고, 야외로 나서면 실제 자연이 거대한 작품이 된다. 어디까지가 미술관이고 어디서부터가 자연인지 경계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다.

하슬라아트월드의 매력은 작품을 단순히 벽에 걸어놓고 감상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있다는 데 있다. 공간 곳곳을 이동하며 작품을 만나고, 때로는 작품 사이를 지나가며 직접 공간의 일부가 된다. 다양한 조각과 설치미술, 독특한 구조의 전시공간이 이어지면서 다음 공간에서는 무엇을 만나게 될지 자연스럽게 궁금해진다.
특히 야외 조각공원에서는 예술과 자연의 조화가 더욱 선명하게 느껴진다. 산의 지형을 따라 이어지는 길을 걷다 보면 나무와 풀 사이로 조각 작품이 모습을 드러낸다. 작품 뒤편으로 펼쳐진 동해와 하늘까지 하나의 배경이 되면서 실내 미술관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특별한 장면을 만들어낸다.
아이들과 함께 방문한 가족에게도 이곳은 색다른 문화 체험 공간이 된다. 작품을 어렵게 해석하기보다는 보고, 걷고, 만날 수 있는 공간 자체를 즐기면 된다. 어른들에게는 예술을 감상하는 시간이 되고 아이들에게는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놀이터가 된다. 세대가 달라도 각자의 방식으로 예술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 하슬라가 가진 또 하나의 매력이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공간 곳곳에서 만나는 ‘쉼’이다. 여행이라고 하면 짧은 시간에 많은 장소를 둘러봐야 한다는 생각에 오히려 일상보다 바빠질 때가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발걸음을 조금 늦추게 된다. 마음에 드는 작품 앞에서 한참을 머물기도 하고, 창문 너머 바다를 바라보며 잠시 생각을 내려놓기도 한다.
바다는 같은 자리에서도 순간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햇빛이 강하면 은빛으로 반짝이고, 구름이 지나가면 짙은 푸른색으로 변한다. 바람과 파도, 구름과 빛이 만들어내는 변화는 어떤 예술작품보다 역동적이다. 그래서 하슬라에서 가장 거대한 작품은 어쩌면 미술관 밖으로 펼쳐진 동해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오늘날 여행의 목적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유명 관광지를 찾아 인증사진을 남기는 여행에서 벗어나 한 장소에 오래 머물며 자신만의 경험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자연 속에서 걷고 예술을 감상하며 마음을 쉬게 하는 여행이 주목받는 것도 같은 이유다.
그런 의미에서 하슬라아트월드는 강릉 여행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 강릉의 관광자원이 바다와 해변에만 머무르지 않고 문화와 예술을 만나 새로운 콘텐츠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자연이라는 지역의 자산에 예술과 이야기를 더하면 관광객이 머무는 시간과 경험의 깊이도 달라진다.

하슬라를 둘러보고 다시 바다를 바라본다. 수평선은 여전히 멀리 펼쳐져 있지만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 바라봤던 바다와는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몇 시간 동안 작품과 자연을 천천히 바라본 덕분인지 마음에도 작은 여백이 생긴 듯하다.
좋은 여행은 많은 곳을 다녀오는 여행이 아니라 오래 기억되는 장면 하나를 마음속에 남기는 여행인지도 모른다. 강릉 하슬라에서 만난 푸른 동해와 예술작품, 그리고 산길을 따라 불어오던 바람은 그렇게 한 장의 그림처럼 기억 속에 남는다.
강릉에는 바다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바다를 바라보며 예술을 만나고, 자연 속을 걸으며 잠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공간도 있다. 동해를 품은 예술정원 하슬라. 강릉을 다시 찾는다면 조금 천천히 걸으며 만나보고 싶은 또 하나의 강릉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