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시노인사이트] 방탄소년단(BTS)이 2027년 제69회 그래미 어워즈에 새 앨범과 수록곡을 출품하지 않기로 했다. 오랫동안 그래미 수상을 목표로 밝혀왔던 BTS가 스스로 후보가 될 기회를 내려놓은 것은 단순한 시상식 불참이 아니다. 미국 중심의 음악산업이 아시아 음악을 대하는 방식에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상징적인 결정이다.
BTS 멤버 7명은 지난 7월 29일 각자의 소셜미디어에 “올해 그래미에 출품하지 않기로 했다”며 “음악이 지역이나 언어로 구분되기보다 음악 그 자체로 들리고 사랑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짧은 문장이지만 메시지는 분명하다. BTS가 거부한 것은 음악적 경쟁이 아니라, 아시아 음악을 별도의 울타리에 넣으려는 그래미의 분류 방식이다.
미국 팝에는 지역명을 붙이지 않는다
레코딩 아카데미는 2027년부터 ‘최우수 아시안 팝 음악 퍼포먼스’ 부문을 신설한다. K팝·J팝·C팝 등 아시아 시장에서 탄생했거나 널리 인정받는 음악을 대상으로 하며, 출품작에는 하나 이상의 아시아 언어가 의미 있게 사용돼야 한다.
표면적으로는 아시아 음악의 성장과 다양성을 인정하는 조치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명칭에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그래미는 미국 가수의 대중음악을 ‘아메리칸 팝’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영국이나 유럽 가수의 음악도 ‘유러피언 팝’이라는 별도 부문에 가두지 않는다. 이들의 음악은 특별한 지역 표시 없이 자연스럽게 ‘팝’으로 인정받는다.
반면 한국과 중국,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음악에는 ‘아시안’이라는 지역 이름을 붙인다. 서구 음악은 보편적인 음악으로 취급하면서 아시아 음악은 특정 지역의 음악으로 분류하는 것이다.
이는 다양성의 확대라기보다 누가 세계 음악의 중심이고 누가 주변부인지를 다시 확인하는 방식에 가깝다.
서로 다른 아시아 음악을 하나로 묶었다
K팝과 J팝, C팝은 언어와 제작 방식, 시장 구조, 음악적 전통이 서로 다르다. 동남아시아와 인도, 중앙아시아, 중동 일부까지 포함하면 ‘아시아 음악’이라는 범위는 더욱 넓어진다.
그런데도 그래미는 이처럼 다양한 음악을 하나의 ‘아시안 팝’ 부문으로 묶었다. 음악적 특징보다 지리적 출신을 우선한 분류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록·재즈·힙합·R&B처럼 음악의 형식과 전통에 따라 장르를 나누는 것과, 서로 다른 음악을 ‘아시아에서 나왔다’는 이유로 한데 묶는 것은 성격이 다르다.
더욱이 해당 부문에는 아시아 언어가 의미 있게 사용돼야 한다는 조건까지 붙었다. 이는 음악의 완성도를 평가하기 전에 언어와 지역을 기준으로 경계를 설정한 것이다.
별도 부문이 본상 진출을 막는 우회로 될 수도
그래미 측은 아시안 팝 부문에 출품한 음악도 올해의 앨범과 올해의 레코드 등 본상에 도전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규정상으로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문제는 규정이 아니라 실제 투표 과정이다. 별도 부문이 만들어지면 투표자들은 아시아 가수의 음악을 일반 팝이나 본상보다 아시안 팝 부문에 더 적합한 작품으로 판단할 가능성이 커진다.
결과적으로 아시아 음악에 상을 하나 더 주는 대신, 주요 부문 진입을 막는 새로운 ‘유리천장’이 형성될 수 있다. “아시아 음악도 인정했으니 아시안 팝 부문에서 경쟁하라”는 논리가 작동할 위험이 있는 것이다.
진정한 다양성은 아시아 음악을 별도의 방에 넣는 것이 아니다. BTS와 다른 아시아 음악가들이 미국·유럽 가수들과 동일한 팝 부문에서 작품만으로 평가받도록 만드는 것이다.
세계적 성과에도 반복된 외면
BTS는 미국 빌보드 차트와 세계 음원시장, 공연산업에서 이미 최정상급 성과를 거뒀다. 영어권 가수들과 동일한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며 K팝이 특정 지역에 한정된 음악이 아니라는 사실도 입증했다.
하지만 그래미는 BTS를 여러 차례 후보에 올리고도 끝내 그룹 명의의 트로피를 주지 않았다. 상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차별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세계적인 흥행과 영향력을 가진 비영어권 가수들이 그래미의 주요 부문에서는 좀처럼 인정받지 못한 현실은 분명히 짚어볼 필요가 있다.
그래미는 BTS를 시상식 무대와 홍보 콘텐츠에는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BTS의 출연은 세계 시청자와 팬덤의 관심을 끌어올렸다. 정작 수상 결과에서는 보수적인 선택을 반복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이유다.
출품 거부 직후 사라진 공연 영상
논란은 BTS의 출품 거부 발표 이후 더욱 커졌다. 그래미 공식 웹사이트에서 BTS의 ‘다이너마이트’와 ‘버터’ 공연 영상이 더 이상 제공되지 않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두 영상은 단순한 공연 기록이 아니다. 비영어권 그룹이 세계 최대 음악 시상식의 중심 무대에 오른 역사적 장면이었다. BTS의 선언 직후 영상이 사라지자 팬들은 그래미 측의 보복성 삭제가 아니냐고 반발했다.
레코딩 아카데미는 영상이 내려간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이용 계약이나 게시 기간이 종료됐을 가능성도 있어 보복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논란이 커졌는데도 아무런 설명을 내놓지 않는 태도는 불신을 키우고 있다.
그래미가 아시아 음악에 대한 존중을 강조하려면 먼저 BTS의 공연 영상이 사라진 이유부터 투명하게 설명해야 한다.
그래미의 권위보다 음악의 존엄을 선택
BTS의 이번 결정은 수상 가능성을 포기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래미의 권위를 인정받기 위해 필요한 절차를 따르기보다, 음악을 지역과 언어로 구분하는 방식에 반대하는 쪽을 택했다.
BTS는 더 이상 그래미의 인정을 받아야만 세계적인 가수로 증명되는 그룹이 아니다. 세계 음반시장과 공연장, 팬덤이 이미 그 위상을 확인했다. 오히려 이번에는 BTS가 그래미에 질문을 던지는 위치에 섰다.
그래미가 진정으로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려면 아시아 음악에 별도의 상을 마련했다는 사실을 자랑할 것이 아니라, 왜 아시아 음악이 기존 주요 부문에서 충분히 평가받지 못했는지를 먼저 돌아봐야 한다.
아시아 음악에 필요한 것은 격리된 좌석이 아니다. 모든 음악과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무대다. BTS가 거부한 것은 그래미 트로피가 아니라, 아시아 음악을 주변부에 머물게 하는 오래된 질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