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침묵의 장기' 간(肝)을 위협하는 바이러스 간염 관리 체계에 역대급 대전환이 일어났다. 기존 간수치(ALT) 중심의 제한적 치료 기준에서 벗어나, 혈중 바이러스 DNA 농도만으로 즉시 항바이러스제 치료를 개시하는 혁신적인 진료 가이드라인이 제시됐다.
질병관리청과 대한간학회는 28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오늘의 간염, 내일의 간암'을 메인 테마로 「2026년 세계 간염의 날 기념행사」를 공동 개최하고, 국가 간염 퇴치 사업 성과와 최신 간암 예방 전략을 전격 공개했다.
세계간염의 날(7월 28일)은 국제사회가 바이러스 간염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퇴치 촉진을 도모하기 위해 2010년 세계보건총회에서 공식 제정한 날이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최신 통계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적으로 약 2억 8,000만 명이 B형 및 C형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으며, 연간 180만 명의 신규 환자와 130만 명에 달하는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다.
국내 상황 역시 심각하다. 간암은 대한민국 전체 암 사망 원인 중 2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특히 국가 경제의 중추인 40~50대 중장년층에서는 암 사망 원인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더욱 유의해야 할 팩트는 전체 간암 발병의 70% 이상이 B형 및 C형 바이러스 간염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이는 바이러스 간염에 대한 선제적 차단과 조기 치료가 간암 예방의 핵심 열쇠임을 명확히 시사한다.
이날 발표된 1부 세션에서는 의학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2026 대한간학회 만성 B형간염 진료 가이드라인’이 상세히 소개됐다. 가장 획기적인 변화는 만성 B형간염을 바라보는 기본 관점이 기존 '염증성 간질환'에서 근본적인 '바이러스 감염 질환'으로 완전 전환됐다는 점이다.
과거 2022년 가이드라인까지는 간세포 손상 지표인 ALT(간수치)가 상승해야만 보험 급여 및 적극적 치료가 권장됐다. 하지만 이 방식은 환자의 약 30%가 치료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이른바 '회색지대(Gray Zone)'에 방치되는 결정적 한계를 안고 있었다. 실제로 ALT가 정상 범위인 환자를 대상으로 간생검을 진행했을 때, 무려 37%에서 유의미한 간손상과 염증이 확인되는 등 기존 분류법의 허점이 입증됐다.
개정된 2026년 지침은 이러한 치료 사각지대를 완전히 해소하기 위해 ‘HBV DNA 역가(바이러스 농도)’를 핵심 축으로 한 새로운 알고리즘을 도입했다. 이제는 간경변증이 없는 환자라도 혈중 바이러스 농도가 2,000~10^7 IU/mL 구간인 '중등도 바이러스 혈증'에 해당하면, ALT 수치와 무관하게 즉시 항바이러스 치료를 시작할 수 있게 됐다.
임상 연구(ATTENTION Study 등) 결과에 따르면, 중등도 바이러스 혈증 구간에서 항바이러스 치료를 시행할 경우 간암 및 주요 합병증 발생 위험을 79%까지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다. 반면 이 구간의 환자를 치료하지 않고 방치할 경우, 고 바이러스 혈증 환자 대비 간암 발생 위험이 최대 6~8배까지 치솟는 것으로 확인됐다. 간경변증이 이미 동반된 환자라면 바이러스 DNA가 극미량이라도 검출되는 즉시 치료에 돌입하도록 지침이 강화됐다.
이와 함께 국가 차원의 C형간염 관리 체계도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만 56세 국민을 대상으로 국가건강검진에 C형간염 검사를 공식 도입했다. C형간염은 예방 백신이 존재하지 않지만, 현재 의학 기술로는 직접작용 항바이러스제(DAA)를 복용할 경우 98~99%라는驚異(경이)적인 완치율을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국가검진을 통한 무증상 감염자의 조기 발견과 즉각적인 치료 연계 체계 구축은 간경변증 및 간암 진행을 막는 결정적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다.
행사 2부에서는 지역사회 거점의 간염 퇴치 사업 운영 성과와 함께 바이러스 감염 예방부터 진단, 치료에 이르는 전주기적 간암 예방 전략이 심도 있게 다뤄졌다. 참석한 전문가들은 정부와 의료계의 긴밀한 공조를 통해 간암 발생률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는 비전을 공유했다.
임영석 대한간학회 이사장은 “간염은 조기에 진단하여 적극적으로 관리하면 충분히 통제 가능한 질환”이라고 강조하며, “이번에 개정된 진료지침과 국가건강검진 시스템을 바탕으로 국민건강 증진과 국가적 간염 퇴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학회 차원의 협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임승관 질병관리청장 역시 “대한민국은 신생아 국가예방접종 사업 등을 통해 B형간염 발생률을 대폭 감소시킨 경험과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고 평가하며, “C형간염 국가검진 도입과 이번 지침 개정을 계기로 국내 간염 관리 체계가 한 단계 더 고도화되기를 기대한다”고 역설했다.
간암의 70% 이상은 침묵의 살인자라 불리는 B형 및 C형 바이러스 간염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2026년 의학계는 진단과 치료 패러다임의 거대한 혁신을 이루어냈다. 백신과 강력한 항바이러스제, 그리고 국가적 검진 체계라는 최첨단 무기가 갖춰진 만큼, 이제 바이러스 간염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조기 관리로 완벽히 극복 가능한 질환'이 되었다. 간암 예방의 첫걸음은 자신의 간염 감염 여부를 확인하고, 개정된 지침에 따라 전문의와 상담하여 적기에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다. '오늘의 간염 관리'가 '내일의 간암 없는 건강한 삶'을 보장하는 유일하고도 가장 확실한 해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