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복되는 루틴 속에서 무기력이 커지는 이유는, 어쩌면 당신 잘못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인지도 모른다
“회사-집-회사-집만 반복하다 보니 내가 점점 고여가는 것 같아요.”
연차가 쌓인 직장인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안정적인 대기업에 다니든, 정신없이 돌아가는 스타트업에 있든 크게 다르지 않다. 어느 순간부터는 분명 열심히 살고 있는데도 성장하고 있다는 감각이 사라진다. 하루는 바쁘게 지나가는데 마음 한쪽에서는 영혼이 점점 메말라가는 느낌이 든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무기력이 게으름 때문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조직이 요구하는 역할을 너무 성실하게 반복해왔기 때문에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물리학에서는 외부와 에너지를 교환하지 않는 구조를 ‘닫힌 시스템(Closed System)’이라고 부르고, 끊임없이 에너지를 교환하는 구조를 ‘열린 시스템(Open System)’이라고 부른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혹시 지금 우리의 커리어 역시 스스로를 외부와 단절시킨 채 서서히 엔트로피를 쌓아가는 닫힌 시스템처럼 움직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당신의 커리어는 왜 서서히 무기력을 축적하는가
열역학 제2법칙에 따르면 외부와 에너지를 교환하지 않는 닫힌 시스템은 시간이 흐를수록 무질서도, 즉 엔트로피가 증가한다. 결국 내부 에너지는 소진되고 구조는 점점 붕괴 방향으로 향하게 된다. 커리어 역시 비슷하다. 매일 똑같은 사람들과, 똑같은 업무 프로세스 안에서만 움직이고, 새로운 기술이나 다른 산업의 변화에는 관심을 끊은 채 “내 일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순간 커리어는 닫힌 시스템이 된다. 안정은 유지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조금씩 활력을 잃어간다. 새로운 질문도 사라지고, 호기심도 줄어들고, 어느 순간부터는 예전처럼 배우고 싶다는 감각 자체가 무뎌진다. 연차는 쌓이는데 성장의 감각은 희미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고인 물은 처음에는 안정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흐름이 멈춘 물은 결국 썩기 시작한다.
안락함은 왜 사람을 더 취약하게 만드는가
우리는 흔히 안정적인 직장을 좋은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안정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안정이 ‘폐쇄성’으로 이어질 때다. 외부의 충격과 변화로부터 완벽히 보호받는 것처럼 보이는 환경 안에서는 오히려 변화에 적응하는 힘이 점점 약해질 수 있다. 새로운 기술이나 시장 변화에 대한 감각이 둔해지고, 익숙한 방식만 반복하다 보면 결국 변화 자체를 두려워하게 된다.
불교의 연기설(緣起說)은 세상의 모든 존재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인간 역시 끊임없이 외부와 관계를 맺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변화하는 존재다. 커리어도 마찬가지다. 나라는 작은 프랙탈 조각은 외부 세계라는 거대한 구조와 계속 연결되어 있어야만 살아 움직일 수 있다. 외부의 자극과 피드백을 차단한 채 완벽한 안정만 추구하는 순간, 커리어는 조금씩 생명력을 잃어가기 시작한다. 안락함은 때로 휴식이 아니라 아주 천천히 진행되는 정체의 시작일 수도 있다.
열린 시스템은 왜 스스로 진화하는가
반대로 오래 살아남는 사람들은 자신의 커리어를 의도적으로 열린 시스템으로 만든다. 이들은 외부의 낯선 자극을 계속 받아들인다. 다른 분야 사람들과 연결되고, 본업과 직접 관련이 없어 보이는 책을 읽고, 작은 사이드 프로젝트를 통해 새로운 시장 반응을 경험한다. 이 과정은 피곤하고 불안할 수 있다. 새로운 자극이 들어오면 기존 질서는 흔들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열린 시스템은 바로 그 혼돈 속에서 스스로를 재구조화하며 성장한다.
프랙탈커리어 역시 결국 같은 방향을 이야기한다. 자기 안의 핵심 패턴은 유지하되, 그것을 외부 세계와 계속 연결하며 확장하는 것. 익숙한 루틴 속에만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흐름과 호흡하는 것.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자기 안의 씨앗 문법을 유지한 채, 그것을 다양한 환경 속에서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일이다.
당신의 커리어에는 지금 바람이 통하고 있는가
우리는 흔히 완벽한 질서를 원한다. 예측 가능한 업무, 안정적인 구조, 익숙한 인간관계. 하지만 완전히 닫힌 질서는 결국 사람을 숨 막히게 만든다. 반대로 완전한 혼돈 속으로 들어가는 것도 위험하다. 중요한 것은 그 사이의 균형이다. 질서와 혼돈 사이에서 외부와 연결된 채 살아 움직이는 상태. 어쩌면 프랙탈커리어의 핵심도 여기에 있는지 모른다.
당신의 일상은 지금 어떤 에너지를 외부와 주고받고 있는가. 당신의 이력서와 하루는 여전히 새로운 바람이 드나드는 열린 구조인가, 아니면 이미 너무 익숙한 공기만 반복되는 닫힌 방이 되어버렸는가. 경계를 조금씩 열어야 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익숙하지 않은 세계와 연결될 때 비로소 커리어는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한다.
[프랙탈 리플렉션 | 독자의 생각 정리]
Q1. 지난 한 달 동안 당신의 루틴 밖에서 새롭게 유입된 지식이나 자극은 무엇이었는가.
(만약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면, 지금 당신의 커리어는 꽤 닫힌 구조일 수도 있다.)
Q2. 당신의 일상 속에서 외부 피드백과 새로운 실험이 가능한 ‘열린 창문’ 같은 영역은 어디인가.
(예: 글쓰기, 사이드 프로젝트, 이종 업계 모임, 새로운 공부)
Q3. 이번 주 당신의 커리어 시스템에 새로운 공기를 들여오기 위해 만나볼 사람이나 읽어볼 책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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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선택은 왜 미래의 무늬가 되는가. 이전 글에서는 니체의 ‘영원회귀’를 통해 반복되는 선택의 의미를 이야기했다.
→ 영원회귀: 오늘 당신의 선택이 무한히 반복된다면 무엇을 택하겠는가?
박소영|커리어온뉴스 편집장 · ‘프랙탈커리어’ 기획연재
[프랙탈커리어] 부분이 전체를 닮듯, 오늘의 태도는 미래의 커리어를 닮아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