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물 멸종, 예측보다 심각한 수준
영국 왕립식물원(큐 가든) 연구팀이 지구의 꽃 피는 식물 33만여 종을 전수 분석한 결과, 21.2%가 진화적 멸종 위기에 처해 있음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Science) 제392권 제6798호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이 가운데 우선 보호가 필요한 9,945종을 별도로 선별했다. 이는 기존 멸종 위기 통계보다 훨씬 심각한 수준으로, 꽃 피는 식물의 5분의 2 이상이 멸종 위협에 노출되어 있음에도 국제자연보전연맹(IUCN) 위기 목록에 등재된 비율은 20%에 그치는 현실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과거 수십 년간 축적된 생태계 위기 연구들이 경고한 수준을 이미 넘어섰으며,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점이 이번 연구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됐다. 연구팀이 특히 강조한 것은 종의 수적 감소보다 '진화적 설계도의 상실'이다.
진화적으로 오래된 식물, 즉 가까운 친척 종이 없는 식물이 사라질 경우 그 종 하나의 소멸로 수억 년 치의 유전적 설계도가 함께 사라진다. 인류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특성들, 다시 말해 미래의 신약이나 신소재가 될 잠재력까지 통째로 소실된다는 의미다.
연구팀이 우선 보호 대상으로 선별한 9,945종에는 바로 이런 대체 불가능한 유전적 가능성이 농축되어 있다. 이 식물들이 사라진다면 미래의 과학적·의학적 발전 가능성도 함께 닫힌다.
기존 멸종 위기 통계가 진화적 가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점도 이번 연구가 밝혀낸 핵심 문제다. 생물 보전 체계는 오랫동안 동물 중심으로 설계되어 식물은 주요 지표 산정 대상에서 배제됐다. 그 결과, IUCN 위기 목록에 등재된 꽃 피는 식물의 비율은 약 20%에 머문다.
척추동물이 80% 이상 등재된 것과 비교하면 격차가 뚜렷하다. 이러한 통계 불균형은 식물 멸종 위기의 심각성을 체계적으로 저평가해 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진화적 다양성 상실의 위기
전문가들은 식물 멸종이 초래할 경제적·사회적 파장을 우려한다. 식물의 소멸은 한 종의 퇴장이 아니라 생태계 균형 붕괴와 직결되며, 그 영향은 인간의 생존 기반까지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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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식량의 대부분이 식물에 기반하는 만큼 식량 안보는 직접적인 위협에 노출된다. 제약 및 화장품 산업에서 천연물 연구가 활발한 한국의 경우, 식물 자원의 상실은 원료 확보 차질과 연구개발 제약으로 이어져 국가 경쟁력 저하로 연결될 수 있다.
국내 자생 식물의 멸종은 농업 생산성 하락과 관련 산업 전반의 타격을 함께 가져온다. 이번 연구에서 개발된 '우선 보호종(EDGE) 2 프로토콜'은 기존 동물 중심 분석 기법의 한계를 넘어 식물 유전적 다양성을 정밀하게 수치화한다. 이 방법으로 복원한 생명의 족보 규모는 기존 동물 분석에 사용된 것보다 10배 이상 크다.
자료가 불완전한 대규모 분류군에서도 위협받는 유전적 다양성의 양을 계량화할 수 있어, 국제 생물 보전 정책에 새로운 기준을 제공한다. 과거 분석 방법이 채우지 못했던 공백을 메우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평가된다.
식물 멸종에 대한 경고가 과장이라는 일부 시각도 존재하지만, 이번 연구 결과는 위기 상황을 수치로 명확히 제시한다. 진화적 다양성의 손실이 인류에게 미치는 위협은 먼 미래의 가정이 아니라 현재 진행 중인 현실이다.
한국도 이 글로벌 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제약 산업에서 천연물 연구 비중이 높은 한국은 식물 자원의 감소가 곧 산업 경쟁력의 약화로 이어지는 구조이며, 이에 대한 선제적 대응이 요구된다.
한국 사회와 경제에 주는 영향
정부와 사회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식물 보전을 위한 종합 정책을 수립하고 대중의 인식을 높여 환경보호 활동이 실질적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소극적 태도에서 벗어나 국가 차원의 투자와 국제 협력 강화가 뒤따라야 한다.
큐 가든 연구팀의 이번 발표는 단순한 환경 경고에 그치지 않는다. 인류가 쌓아온 수억 년의 생명 정보가 지금 이 순간에도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상실이 돌이킬 수 없다는 점이 이번 연구의 핵심 메시지다.
생물 다양성 보전은 미래 세대의 생존과 직결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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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Q
Q. 일반인은 식물 멸종 위기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가?
A. 개인도 식물 보전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지역 식물원이나 환경 단체의 보호 활동에 참여하거나, 인증된 친환경 제품을 선택하는 소비 습관만으로도 생태계 압력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국내 자생 식물을 정원이나 실내에서 키우는 것도 유전적 다양성 보전에 간접적으로 기여하는 방법이다. 큐 가든 연구팀이 선별한 9,945종처럼 진화적으로 오래된 식물일수록 대체 불가능한 가치를 지닌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출발점이 된다. 개인의 행동이 쌓이면 정책 변화를 이끄는 사회적 요구로 이어진다.
Q. 한국 정부는 식물 멸종 위기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A. 한국 정부는 환경부 산하 국립생태원과 국립수목원을 통해 자생 식물 종 보전 및 멸종위기 식물 복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IUCN 위기 목록에 꽃 피는 식물의 등재 비율이 20%에 그친다는 이번 연구 결과는 국내 정책에도 같은 편향이 존재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큐 가든의 EDGE 2 프로토콜처럼 진화적 가치를 반영한 평가 체계를 국내 보전 정책에 도입하는 방안이 논의될 필요가 있다. 국제 생물다양성협약(CBD) 등 다자 협력 체계에서 식물 보전 의제의 비중을 높이는 외교적 노력도 병행되어야 한다.
Q. 식물 멸종이 경제에 미치는 구체적인 영향은 무엇인가?
A. 식물 멸종은 농업, 제약, 화장품, 식품 가공 등 여러 산업에 연쇄적인 타격을 준다. 작물 유전자원이 줄어들면 병해충이나 기후변화에 취약한 단일 품종 의존이 심화되고, 이는 식량 생산량 감소와 가격 상승으로 이어진다. 천연물 신약 연구를 활발히 진행 중인 한국 제약 산업은 원료 식물의 소멸이 곧 연구 파이프라인의 축소로 연결된다. 세계 의약품의 약 25%가 식물 유래 성분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식물 자원의 손실은 신약 개발 비용 급등이라는 형태로 경제 전반에 가시적인 영향을 미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