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멩이를 옮기는 사람 12
12. 의사 선생님의 하루
사흘째 아침이었다.
엄마는 처음으로 혼자 몸을 일으켰다. 완전히 일어선 것은 아니었다. 침대에 등을 기대고, 반쯤 앉은 자세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영수에게는 충분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눈을 뜨는 것도 힘들어 보였는데.
엄마는 영수를 보더니 말했다.
"배고프다."
그 말이 이상하게 반가웠다. 배고프다는 말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영수는 웃을 뻔했다가 참았다. 웃으면 이상할 것 같았다. 하지만 참으면서도 눈이 조금 뜨거워졌다.
"뭐 가져올까?"
"그냥 물이면 돼."
영수는 물을 가져왔다. 엄마는 천천히 마셨다. 어제와 달리 그릇을 혼자 들었다. 그 작은 변화 하나가, 이 병원에 들어온 이후 영수가 본 것 중 가장 좋은 것이었다.
그날 낮, 영수는 복도에서 남자를 보았다.
남자는 복도 끝 창문 앞에 서 있었다. 하얀 가운 차림이었다.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뭔가 달랐다. 걸음이 없었다. 항상 어딘가로 향하던 그 걸음이, 지금은 멈춰 있었다.
남자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손은 창틀 위에 가볍게 얹혀 있었다. 어깨가 조금 내려가 있었다. 영수는 그 뒷모습을 보았다. 이 사람이 이런 자세를 하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영수는 그 자리에서 멈추었다. 다가가야 할지, 지나쳐야 할지 몰랐다.
결국 지나쳤다.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발끝으로 걸었다. 그 사람의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무슨 이유인지는 몰랐지만, 지금 이 사람은 혼자 있어야 할 것 같았다.
병실로 돌아오면서 영수는 생각했다.
이 사람도 피곤할 때가 있구나.
당연한 말이었다. 사람이니까. 하지만 지금까지 영수에게 이 사람은 항상 움직이고, 항상 말하고, 항상 준비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피곤하다거나, 힘들다거나, 멈추고 싶다거나. 그런 감정을 가진 사람으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본 것은, 분명히 그런 순간이었다.
그날 밤이었다.
영수는 엄마 곁에서 눈을 붙이다가 깼다. 병실 안은 조용했다. 창문 밖은 어두웠다. 시간이 얼마나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깊은 밤인 것 같기도 하고, 이른 새벽인 것 같기도 했다.
목이 말랐다. 그는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복도로 나왔다.
복도는 낮보다 훨씬 조용했다. 불빛도 낮이 아니었다. 천장의 등 몇 개만 켜져 있었고, 나머지는 꺼져 있었다. 그 사이로 긴 그림자들이 바닥에 누워 있었다.
물을 마시고 돌아오려는데, 복도 중간 의자에 누군가 앉아 있었다.
하얀 가운이었다.
영수는 그 자리에서 멈추었다.
남자였다. 의자에 앉아, 앞으로 몸을 약간 숙인 채 두 손을 무릎 위에 얹고 있었다. 고개는 조금 숙여져 있었다. 눈을 감은 것인지 뜬 것인지 보이지 않았다. 잠든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언가를 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냥 앉아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영수는 숨을 죽였다. 말을 걸어야 할지, 그냥 지나쳐야 할지 몰랐다. 낮에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그때는 지나쳤다. 이번에도 지나쳐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낮과 밤이 달랐다. 창밖이 어둡고, 복도가 조용하고, 이 사람이 이 시간에 여기 혼자 앉아 있다는 것이.
영수는 한 걸음 더 다가갈까 했다가 멈추었다. 그리고 다시 생각했다.
이 사람에게 지금 필요한 것이 뭘까. 누군가 말을 거는 것일까. 아니면 그냥 아무도 없는 것일까.
영수는 알 수 없었다. 그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낮에 창문 앞에 서 있던 모습이 떠올랐다. 혼자 있어야 할 것 같았던 그 순간과, 지금 이 순간이 겹쳤다.
영수는 돌아섰다.
조용히, 소리 없이. 발끝으로 걸어 병실로 돌아왔다.
다음 날 아침, 남자는 여느 때처럼 병실을 들렸다.
가운은 깔끔했고, 목소리는 낮고 안정적이었다. 어젯밤 복도에 혼자 앉아 있던 사람과 같은 사람이라는 것이 잘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영수는 알았다. 그 사람이 어젯밤 거기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아마 그런 밤이 어제만이 아니었을 것이라는 것을.
남자는 엄마의 상태를 확인하고 말했다.
"많이 좋아지셨네요."
그 말이 진짜라는 것을 영수는 느낄 수 있었다. 형식적인 인사가 아니었다. 실제로 확인하고, 실제로 안도하는 말이었다. 이 사람은 환자가 나아지는 것을 진짜로 기뻐한다.
그 사실이, 어젯밤을 본 뒤에는 더 크게 다가왔다.
남자가 나가고, 영수는 한동안 문 쪽을 바라보았다.
앞에서 처음 품었던 질문이 다시 떠올랐다.
‘이 사람은 왜 이렇게 사는 걸까.’
그 질문은 여전히 답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질문이 조금 다르게 들렸다. 쉽게 할 수 있으니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힘들지 않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피곤하고, 지치고, 깊은 밤 복도에 혼자 앉아 있어야 할 때도 있으면서 하는 것이라는 것.
그것이 더 무겁게 느껴졌다. 그리고 더 진짜처럼 느껴졌다.
영수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골목의 하늘이 보였다. 오늘은 구름이 없었다. 겨울 하늘이었지만, 맑았다.
이 사람은 오늘도 저 하늘을 볼 시간이 있을까. 밥은 따뜻하게 먹었을까. 어젯밤 의자에서 잠깐 눈을 붙인 것이 전부였을까.
그 질문들은 대답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었다. 처음으로 이 사람을 사람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표시였다.
의사라는 역할이 아니라, 피곤할 수도 있고 배고플 수도 있고 혼자 앉아 있고 싶을 수도 있는 한 사람으로.
그날, 영수는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좋은 일을 하는 것과, 그것을 계속하는 것은 다른 일이라는 것. 한 번 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계속하는 것은 그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다.
무엇인지는 아직 몰랐다. 하지만 그것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어젯밤 복도에서 본 뒷모습이 알려 주었다.
그 뒷모습은 말이 없었다.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냥 거기 있었다.
하지만 영수는, 그 침묵 안에서 무언가를 읽었다.
아직 다 읽지는 못했다. 하지만 읽기 시작했다는 것은 알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