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반도라는 자학의 주술, 언제까지 읊을 것인가
韓(한)은 아주 먼 옛날 지방분권에 사용되었던 말로
국호로써 정통성이 약하다.
반도는 일본인이 peninsular를 번역하며 만든 신조어다.
아래 설명하는 대로 경멸의 뜻이 담긴 ‘반쪽 섬’이다.
더욱이 압두남(압록강과 두만강 이남) 지형만 그린 깃발을
‘한반도기’라며 흔드는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다.
대륙의 영토를 잃고 이 좁은 땅에 갇힌 역사를 상징하는 듯하여 안타깝다.
韓(한)은 정통성이 약하다
韓(한)은 고대 조선과 그 이전 환웅 시대
아시아 전역을 아우르는 넓은 영토를
帝(제)가 혼자 다스릴 수 없어,
셋으로 분할하여 다스릴 때 사용한 말이다.
분할된 땅, 또는 그 지역 지도자를 부를 때 쓰였다.
지역 명칭으로 사용되었으나 통합된 국호로 쓰인 적은 없다.
참고로 발음상으로 ㄱ과 ㅎ은 쉽게 넘나들어, 간 또는 칸으로도 쓰였다.
그 韓(한)을 조선 말 고종이 채택하여 ‘대한제국’을 세웠다.
‘삼한 통합’을 내세웠으나 삼국이 분렬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대한제국이 망한 뒤 임시정부 수립자들은
대한이라는 국호에 호의적이지 않았으나,
‘대한으로 망했으니 대한 흥하자’는 의견에 따라 채택되었다.
광복 후 공산당 괴뢰정권이 ‘조선’을 국호로 선택하자,
남쪽 정치가들은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내세워 ‘대한’을 국호로 삼았다.
늦은 정부수립에 따른 국호 선택의 주도권을
마치 공산당 괴뢰정권에 빼앗긴 듯한 모양새가 되었다.
단기 4283년(1950) 1월 16일 국무회의는
“北韓傀儡政權(괴뢰정권)과의 確然(확연)한 區別(구별)을 짓기 爲(위)하여
‘朝鮮(조선)’을 使用(사용)하지 못한다”는 국무원고시 제7호를 발표하였다.
북한과의 대립을 이해할 수 있으나,
‘패배의식’을 품은 듯한 조치로 해석된다.
오늘날까지 이 나라의 일부 정권은 같은 모습을 반복한다.
이후 조선과 고리는 사라지고
韓(한)과 한을 찬양하는 풀이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리고 아무 데나 한을 붙이고,
한을 붙여야 ‘돈을 번다.’
말에 영혼이 담긴다는 중요성을 생각하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압록강과 두만강이 국경이었던 적은 없다
우리 역사에서 압두남(압록강과 두만강 이남. 소위 한반도)을 영토로 삼았던 시기는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전에는 없었다. 훨씬 넓은 영역이었다.
1746년(영조 22) 청의 鳳凰城將(봉황성장)이 책문을 남쪽으로 옮기려하자 이를 저지한 뒤,
土門江(토문강), 寧古塔(녕고탑) 등의 지도를 그려 올리라는 명에 의하여 제작된
‘西北彼我兩界萬里一覽地圖(서북피아양계만리지도)’를 보시라.
조선의 영역은 압록강과 두만강에서 훨씬 북쪽의 柵城(책성)까지 경계로 되어 있다.
다른 모든 지도도 백두산에서 흑룡강까지 매우 납작하게 그려졌을망정,
만주가 조선의 영역으로 그려져 있다.
유일하게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만 압두남으로 그려져 있다.
이해하기 어렵다.
영토에 대한 끝없는 욕심으로 조선을 압박하던
明(명)조차 大明一統志(대명일통지) 권89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朝鮮國 東西南瀕海 北隣女旦 西北至鴨緑江 東西二千里 南北四千里 自國城至京師 三千五百里 至南京四千里
조선국은 동·서·남쪽은 바다에 닿아있고, 북쪽은 ‘여단(女旦: 여진 또는 여직)’과 이웃하며, 서북쪽은 압록강에 이른다. 동서가 2천 리요, 남북은 4천 리다. 조선의 한양에서 북경까지 3,500리고, 남경까지는 4천 리이다.
그뿐만 아니라 청나라 강희제가 프랑스인 당빌에 의뢰하여
1732년 제작된 ‘중국전도(Carte Generale de La Tartarie Chinoise)’를 보아도
압록강과 두만강이 조선과 청의 경계로 그려지지 않았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고리 말 공민왕 5년(1356)에 元(원)에 빼앗겼던
雙城摠管府(쌍성총관부)를 무력으로 수복하였다.
쌍성이라는 지명은 현재도 하얼빈 바로 남쪽에 존재한다.
공민왕 19년(1370) 11월, 12월에 이성계 등이 요양과 심양을 회복하였다.

삼면이 바다라는 개념은 어디서 왔나
누차 언급하였던 바와 같이
‘삼국사’는 삼국의 주영토가 대륙이라는 직접적 표현이 적더라도,
삼면이 바다라는 개념을 찾을 수 없다.
오히려 대륙일 수밖에 없다는 기록으로 채워져 있다.
반면에 삼국유사는 연표 이외에는
고구리와 백제의 기사는 한두 건에 불과하여 신라유사라고 해야겠지만,
영토가 어디인지 전혀 모르게 쓰여있다.
그럼에도 일연스님 스스로 대륙이 아님을 확신하는 기록을 남겼다.
곧 ‘말갈과 발해’ 편에 송나라에서 제작한
‘指掌圖(지장도, 지리지장도)’를 무려 네 번이나 언급하였던바,
그 지장도는 우리 겨레와 관련한 족속은 아예
대륙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음을 전제로 만든 지도였다.
결정적인 쐐기를 박은 문헌은 ‘제왕운기’다.
제왕운기는 자기 나라 역사를 下卷(하권)에 편집한 것도 이상하지만,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遼東別有一乾坤 요동에 하나의 별천지가 있었으니,
斗與中朝區以分 별스럽게 지나와 분별되어 나뉘었네.
洪濤萬頃圍三面 드넓은 큰 물결이 삼면을 둘러싸고
於北有陵連如線 북쪽에는 높은 구릉 줄지어 늘어섰네.
中方千里是朝鮮 그 가운데 천리 사방 조선(朝鮮)이라,
江山形勝名敷天 강산의 형승(形勝)이 천하에 이름이 났네.
耕田鑿井禮義家 밭 갈고, 우물 파며 예의로 가문을 일구니,
華人題作小中華 지나 사람들이 소중화라 글을 지었네.
시작하자마자 세 번째 행에서 삼면이 바다라고 정의하니,
누가 이 땅이 대륙이라고 상상이나 하겠는가?
나아가 小中華(소중화)는 훗날 조선선비들에게
일그러진 자존감의 표어가 되었으니,
제왕운기가 끼친 해악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지경이다.
더욱이 시로 씌어있어 많은 사람들이 외기도 쉬워 세뇌되기 좋았다.
조선을 위하여 특별히 만든 ‘반도’
‘반도’라는 어휘는 언제부터 사용하게 되었나?
조선왕조실록에서 검색하면
고종 41년 2월 23일과 순종 2년 12월 4일 딱 두 번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일본의 영향이라고 누구라도 금방 알 수 있다.
소위 한글학자들이 엄청나게 수고하여 만든 ‘조선어사전’에 없다.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朝鮮語辭典(조선어사전)’에도 없다.
그런데 3대를 거쳐 발행되었다는
일본의 자랑 ‘大漢和辭典(대한화사전)’에는 있다.
지은 자의 이름을 따라 ‘모로하시사전’으로 더 많이 통용되는데,
다음과 같이 정의되어 있다.
【半島】❶海中につき出て島のが形をした陸地. 三方が海に接する陸地. ❷特に朝鮮をいふ.
【반도】❶바다 쪽으로 쑥 내밀어 섬 모양을 한 육지. 삼면이 바다에 접하는 육지. ❷특히 조선을 말한다.
❷번의 정의가 핵심이다.
‘반도’는 ‘조선을 가리키는 말로 특별히 만들어진’ 것이다.
원래 반도라는 어휘가 일본에 오래전부터 존재하였는지 확인하고 싶어,
인공지능에게 질문을 던졌다.
Perplexity, ChatGPT, Claude에도 질문을 던졌으나
Gemini 응답이 가장 만족스러웠다.
Gemini:
1. 용어의 기원: 에도 시대 후기
▸'반도'라는 말은 서양 지리학의 'Peninsula'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탄생
▸미쓰쿠리 쇼고(箕作省吾): 1845년에 펴낸 세계 지리서인 《곤여도식(坤輿圖識)》에서 'Peninsula'를 '반도(半島)'라고 번역하여 표기한 기록이 명확히 남아 있다. '섬(島)이 절반(半)만 되어 있는 지형'이라는 의미로 조어된 것이다.
2. 대중적 확산: 메이지 시대
▸에도 시대까지는 특정 지형을 '반도'라고 부르기보다는 '미사키(岬, 곶)'나 '사키(崎)' 등으로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메이지 유신 이후 근대 교육 체계가 잡히면서 교과서와 지도에 이 용어가 공식 채택되었다.
▸국가적 교육: 1870년대 이후 서구식 지리학이 학교 교육의 정식 과목이 되면서, 일본 열도 내의 '이즈반도', '기이반도'와 같은 명칭들이 정착되었다.
3. 한반도와 '반도'라는 호칭
▸가장 논쟁적인 부분은 조선(한반도)을 '반도'라고 부르기 시작한 시점이다.
▸청일전쟁 전후: 일본 내에서 조선을 지칭할 때 '조선 반도' 혹은 줄여서 '반도'라고 부르는 빈도가 급격히 늘어난다.
▸식민지기: 1910년 강제 병합 이후, 일본은 자신들을 '내지(內地)'라 부르고 조선을 '반도(半島)'라고 지칭하며 부속 영토화하는 경향을 보였다.
우리나라에는 곳곳에 ‘◦◦곶’이라는 지명이 존재하여
peninsular에 대응하는 말이 있었다.
일본과 중국에는 정확한 대응어가 없었다.
일본인들이 ‘崎(さき; 사끼)’가 있었다고 주장할 수 있으나,
험한 땅, 바위가 있는 땅 등으로 사용되었으므로
후대에 보편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반쪽 섬’이라는 부자연스러운 말을 만들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결국 한국 땅을 위하여 특별히 만든 말이라는 사실을
모로하시사전이 솔직하게 고백한 것이다.
내 나라는 온전한 섬인데, 너희 나라는 반쪽 섬이다.
섬은 반쪽이라도 여전히 섬이다.
반섬이란 존재할 수 없는 개념이다.
여기에서 일본인의 인식구조와 조어능력의 한계를 본다.
대륙과 떨어져 고립되어 살다보니 활발한 문화교류가 없어 발전 기회를 놓쳤다.
우리 말의 ‘곶’과 ‘갑’을 살려 쓰자
우리말에는 peninsular에 상응하는 어휘가 없었을까?
‘곶’이 있다. 전국에 바다로 뻗은 육지에 어김없이 ‘곶’이 들어간 지명이 존재한다.
다만 곶이란 아주 작은 지역만 뜻하하기 때문에
나라와 같이 큰 땅에 어울리지 않는다면, 조금만 더 생각해보자.
岬(갑)도 곶과 함께 바다로 튀어나간 땅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므로
큰곶, 대곶, 거곶, 큰갑, 대갑, 거갑이 가능하다.
곶이란 음식재료를 꽂아 먹는 가는 막대, 즉 꼬지와 통한다.
그렇다면 땅꼬지, 陸(육)꼬지도 가능하다.
튀어나왔다는 ‘突(돌)’ ‘凸(철)’과 땅, 지, 륙을 조합하면,
돌지, 돌륙, 철지, 철륙이 된다.
뜻이 중복되더라도 곶과 갑도 조합한다면,
돌곶, 돌갑, 철곶, 철갑이 된다.
어감을 고려하면 거갑, 돌륙이 적절해 보인다.
우리나라라면 대한거갑, 대한돌륙.
산동과 요녕과 조합한다면 산동거갑, 산동돌륙, 요녕거갑, 요녕돌륙.
국민적 합의만 된다면 어느 것도 괜찮다.
언제까지 일본인이 그들에게 스승의 나라, 조상의 나라를
억지로 지배하려 만든 비논리적 언어를 사용할 것인가?
그들이 우리를 영원히 좁은 땅에 가두려고 건 주술을 벗어나지 못하고,
침략만 받은 작은 나라라는 감옥에 갇혀 살 것인가?
국민 모두 반도라는 비논리적 주술에서 탈출하는 계기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