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업 현장에서 매일 쏟아지는 수십억 개의 데이터 포인트가 오히려 기업의 발목을 잡는 역설이 발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오늘날 제조 및 산업 분야의 고질적인 문제는 '데이터의 양'이 아니라, 각 부서와 시스템 사이에 가로막힌 '단절'에 있다고 지적한다. 정보가 공유되지 않는 이른바 '데이터 사일로' 현상은 협업의 병목 현상을 초래하고, 결국 운영 비용 상승과 시장 기회 상실이라는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진다.
디지털 트윈과 AI가 결합한 ‘단일 진실 공급원’, 산업 현장의 의사결정 판도 바꾼다
글로벌 산업용 소프트웨어 리딩 기업 아비바(AVEVA)의 롭 맥그리비(Rob McGreevy) 최고제품책임자(CPO)는 이러한 혼란의 해법으로 '연결된 AI 생태계'를 제시했다. 그는 단순히 데이터를 수집하는 단계를 넘어, 클라우드를 기반으로 정제된 정보를 디지털 트윈(Digital Twin)에 통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디지털 트윈은 가상 세계에 구현된 실물 자산으로, 설계부터 유지보수까지 전 공정을 연결하는 '가상의 진실된 창' 역할을 수행하며 추측에 의존하던 의사결정을 정밀한 데이터 기반으로 전환한다.
헨켈·도미니언 에너지 사례로 본 ‘데이터 경제학’... 비용 절감을 넘어 수익 극대화로
이러한 혁신은 기업 내부의 효율화를 넘어 전체 가치 사슬로 확장될 때 진정한 파급력을 갖는다. 공급업체와 유통망이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공유하면 설계 개선과 자원 최적화가 동시에 이루어진다. 실제로 글로벌 소비재 전문 기업인 헨켈(Henkel)은 기계 데이터를 AI 플랫폼으로 통합한 '디지털 백본'을 통해 경이로운 성과를 거뒀다. 100만 개 이상의 데이터를 분석해 에너지 소비를 34% 줄이고 탄소 배출을 68%나 감축했다. 이는 연간 약 800만 유로(한화 약 115억 원) 이상의 실질적인 재무적 이익으로 직결됐다.
에너지 산업도 예외는 아니다. 도미니언 에너지(Dominion Energy)는 산재한 재생에너지 자산의 실시간 데이터를 통합해 자산 성능과 에너지 부하를 정밀하게 관리하고 있다. 이를 통해 불확실성이 높은 에너지 시장에서 수익성을 개선하고 신규 매출원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딜로이트와 EY 등 주요 컨설팅 기관의 조사 결과 역시 스마트 팩토리와 데이터 생태계를 도입한 기업들이 생산성 및 매출 성장에서 평균 15~20%의 우위를 점하고 있음을 뒷받침한다.
사일로(Silo)에 갇힌 정보는 리스크... 공급망 전체를 잇는 ‘디지털 백본’ 구축이 생존 열쇠
결국 미래 산업의 승부처는 누가 더 많은 정보를 독점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유연하게 정보를 공유하고 행동으로 옮기느냐에 달려 있다. 보안을 전제로 한 데이터의 투명한 공유는 공급망의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핵심 동력이다. 이제 기업은 '데이터는 보호해야 할 자산'이라는 폐쇄적 관점에서 벗어나, '연결될 때 가치가 폭발하는 유기체'로 데이터를 재정의해야 한다. 기술적 도입을 넘어 조직의 철학 자체를 민첩한 네트워크 중심으로 재편하는 기업만이 데이터 과잉 시대의 생존자가 될 것이다.
산업 경쟁력의 핵심은 이제 정보의 소유가 아닌 '실행 속도'에 있다. 폐쇄적인 시스템에 안주하는 기업은 도태될 것이며, 개방과 협력을 바탕으로 데이터 생태계를 구축하는 기업만이 구조적 혁신을 주도하며 시장의 선두 자리를 지킬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