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학 동화 - 5편 왜 두려워하니?
바람이 거세게 부는 날이었다.
체육 시간, 아이들이 출발선에 섰다. 태윤이도 제 자리에 섰다. 심장은 벌써 빨리 뛰고 있었다.
태윤이는 달리기를 두려워했다.
정확히 말하면, 달리는 자기 모습을 누군가 보는 것이 두려웠다. 특히 짝꿍 성민이 앞에서. 성민이는 반에서 가장 빠른 아이였다. 태윤이와 성민이는 작년부터 단짝이었는데, 그래서 더 보이고 싶지 않았다. 잘하지 못하는 모습이.
예전에 운동회에서 넘어진 적이 있었다.
무릎이 까지고, 친구들이 놀라며 웃던 그 순간이 아직도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그 뒤로 달리기를 할 때마다 몸이 먼저 기억했다. 손에 땀이 나고, 발이 무거워졌다.
“준비!”
태윤이의 발이 굳었다.
머릿속에 같은 생각이 맴돌았다.
또 넘어지면 어떡하지. 성민이가 보고 있는데.
그래도 혹시 또, 못난 모습으로 보이면 어떡하지.
“출발!”
아이들이 앞으로 튀어나갔다. 태윤이도 달렸다.
반쯤 왔을 때 발이 엉켰다. 순간 무릎이 땅에 닿았다. 태윤이는 이를 악물고 다시 일어섰다. 손바닥에 흙이 박혔지만 끝까지 달렸다. 결승선을 지나고 나서야 무릎의 쓰라림이 확 몰려왔다.
성민이가 곁으로 다가왔다.
“괜찮아?”
태윤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웃어 보이려 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성민이는 더 묻지 않았다. 그냥 옆에 서 있었다.
수업이 끝난 뒤, 태윤이는 운동장 구석 벤치에 혼자 앉아 있었다.
무릎에 묻은 흙을 손으로 털어냈지만 잘 떨어지지 않았다.
“난 왜 이렇게 겁이 많지…”
그때 옆에 누군가 앉았다.
체육 선생님이 아니었다. 학교 앞 분식집 아주머니였다. 퇴근하던 길에 운동장을 가로질러 지나가던 참이었다. 아주머니는 풀린 운동화 끈을 묶다가 태윤이의 무릎을 보고 말했다.
“무릎 다쳤네.”
“괜찮아요.”
아주머니는 가방에서 밴드를 꺼내 아무 말 없이 내밀었다.
태윤이는 받아서 무릎에 붙였다.
“달리기 싫어해?”
“싫은 게 아니라, 무서워요.”
“뭐가?”
태윤이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넘어지는 게 무서운 게 아니었다. 정말 무서운 건 다른 데 있었다.
“친구 앞에서 못하는 모습 보이는 게 무서워요.”
아주머니는 끈을 다 묶고 일어설 듯하다가 다시 앉았다.
“나도 그래.”
“네?”
“나도 아직 그래. 오십이 넘었는데도. 누가 보는 데서 실수하는 거, 아직도 무서워.”
태윤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건 위로처럼 들리지 않았다. 다만 꾸밈없는 사실처럼 들렸다. 그런데 그게 이상하게 더 마음에 닿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바람은 여전히 불고 있었다.
태윤이는 걸으면서 성경 시간에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가다가 큰 폭풍을 만났던 이야기였다. 파도는 높아지고 바람은 거세졌다. 제자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예수님은 물으셨다.
“왜 두려워하느냐?”
태윤이는 예전엔 그 질문이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폭풍이 왔으니 무서운 게 당연하지 않나 하고.
그런데 오늘은 다르게 들렸다.
예수님은 폭풍이 없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었다.
무조건 두려워하지 말라고 다그치신 것도 아니었다.
그저 물으신 것이었다.
‘왜 두려워하느냐?’
마치 태윤이에게 묻는 것 같았다.
네 두려움의 이름이 무엇인지 알고 있느냐고.
태윤이는 오늘에서야 알았다.
자기가 두려워한 것은 넘어짐 자체가 아니었다. 성민이 앞에서 못나 보이는 것이었다. 두려움의 진짜 이유를 알고 나니 조금 달라졌다. 여전히 무서웠지만, 적어도 무엇이 무서운지는 알게 되었다.
다음 체육 시간이었다.
태윤이는 다시 출발선에 섰다.
심장이 또 빠르게 뛰었다. 성민이가 옆에 있었다. 태윤이는 잠깐 성민이를 보았다. 성민이도 태윤이를 보았다.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출발!”
태윤이는 달렸다.
발은 여전히 조금 무거웠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끝까지 달렸다. 이번에는 넘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꼴찌였다.
성민이는 먼저 결승선을 통과한 뒤 몸을 돌렸다.
태윤이가 들어오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놀리지도 않았고, 웃지도 않았다. 그냥 끝까지 보고 있었다.
태윤이는 결승선을 지나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숨이 찼다. 바람이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마음 한쪽에 남아 있었다.
하지만 태윤이는 이제 알고 있었다. 두려움이 있어도 달릴 수 있다는 것을. 두려움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 그것이 용기라는 것을.
태윤이는 마음속으로 그 질문을 다시 떠올렸다.
‘왜 두려워하니?’
이제 그 질문은 태윤이를 멈추게 하는 말이 아니었다.
두려움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게 하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알고 나면, 한 걸음은 뗄 수 있었다.
꼴찌여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