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gle.com, pub-9005101102414487, DIRECT, f08c47fec0942fa0

물과 성령으로 여는 새 시대: 주님수세주일, 우리 정체성의 재확인

'죄인의 자리'로 내려오신 왕의 파격적 행보

요단강의 물결, 나의 세례와 맞닿다

공적 생애의 시작: 구경꾼에서 증인으로

AI 이미지 (제공: 미디어 울림)

 

교회력의 시계바늘이 성탄 절기(Christmas Season)의 끝자락과 주현 절기(Epiphany)의 절정을 가리킬 때, 우리는 요단강 가에 서게 된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던 동방박사들의 경배가 지나고, 이제 서른 즈음의 청년 예수가 역사 전면에 등장하는 순간이다. 바로 '주님수세주일'이다. 이 날의 기원은 단순히 예수님이 세례요한에게 물로 씻김을 받았다는 역사적 사실 한 줄을 기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초대 교회는 이 사건을 성탄, 동방박사의 방문, 가나 혼인 잔치의 기적과 함께 하나님이 인간 세상에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신 거대한 '주현(顯現, Epiphany)'의 사건으로 묶어 기념했다.

 

이날의 의미는 실로 심오하다. 복음서 기자들은 이 순간을 삼위일체 하나님이 역사 속에 동시에, 그리고 극적으로 현현하신 최초의 사건으로 묘사한다. 아들(성자)이 물속에 잠기고,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하며, 아버지(성부)의 음성이 하늘을 가르고 들려온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이 우주적인 선포는 나사렛 목수 예수의 공적 사역(Public Ministry)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공식적인 취임식과도 같다. 마구간의 탄생이 은밀한 시작이었다면, 요단강의 세례는 온 세상을 향한 메시아의 대관식인 셈이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이 날을 기점으로 성탄의 화려한 불빛을 뒤로하고, 십자가를 향해 걸어가시는 예수님의 고뇌와 사역을 따라가는 '주현절 후 기간' 혹은 '연중 시기(Ordinary Time)'로 접어들게 된다.

 

그러나 이 장엄한 장면 이면에는 당혹스러운 신학적 질문이 도사리고 있다.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왜 '회개의 세례'를 받아야 했는가?" 당시 세례요한의 외침은 위선적인 종교 지도자들과 타락한 백성들을 향한 서슬 퍼런 경고였다. 죄인들이나 들어가야 할 그 혼탁한 요단강 물에, 거룩하신 분이 발을 담그신 것이다. 요한조차 이를 만류했으나, 예수님은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고 답하신다. 여기서 '모든 의를 이룬다'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온전히 순종한다는 의미다. 그것은 죄 없으신 분이 죄인들의 줄 맨 끝에 서서, 죄인들과 자신을 동일시(Identification)하겠다는 파격적인 연대의 선언이었다. 하늘 보좌를 버리고 낮고 천한 말구유에 오신 성육신의 신비가, 이제 죄인의 오명을 뒤집어쓰는 요단강의 입수를 통해 더 구체적이고 처절하게 현실화된 것이다. 그는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죄인의 자리로 내려오셨다.

 

 

이 2천 년 전의 사건은 오늘날 우리의 신앙에 어떤 의미를 갖는가? 종교개혁 신학의 전통에서 주님의 수세는 곧 '우리 세례의 원형'으로 해석된다. 많은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세례를 개인의 신앙 결단이나 교회 회원이 되는 입교 의식 정도로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주님수세주일은 우리의 세례가 그토록 가벼운 것이 아님을 웅변한다. 우리가 세례반 앞에서 물을 뒤집어쓸 때, 우리는 단순히 한 교회에 등록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들어가셨던 그 요단강 물결 속으로 함께 들어가는 것이다.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세례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사는 연합의 신비다. 주님이 세례 받으실 때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임했듯, 우리의 세례 때에도 우리 영혼의 하늘이 열리고 성령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인치셨음을 재확인하는 날이 바로 오늘이다.

 

주님수세주일은 우리에게 안주하지 말 것을 촉구한다.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신 후 곧바로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나아가 시험을 받으셨고, 이후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며 치열한 공생애를 시작하셨다. 세례는 목적지가 아니라 출발점이었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위기는 어쩌면 '요단강변의 구경꾼'으로 머물려는 태도에서 비롯된 것일지 모른다. 세례가 주는 은혜와 감격에는 젖어 있지만, 세례 받은 자로서 감당해야 할 사명과 세상 속에서의 고난은 외면하려 한다. 주님이 물과 성령으로 기름 부음을 받으신 것은 '세상의 빛'으로 살아가기 위함이었다. 우리의 세례 역시 마찬가지다. 그것은 우리 각자가 가정에서, 일터에서, 사회 속에서 '작은 예수'로 살아가도록 부름받은 '평신도의 임직식'이다. 성령은 교회당 안에만 머물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세상 한복판으로 파송하기 위해 오셨다.

 

결론적으로 주님수세주일은 우리 정체성의 근본을 묻는 날이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의 연봉, 지위, 외모를 가지고 "네가 누구냐"고 묻고 시험한다. 마치 광야에서 사탄이 예수님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라며 조건을 달고 시험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 세상의 소란스러운 평가 속에서 우리는 쉽게 흔들리고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이때 우리가 붙들어야 할 단 하나의 진실이 있다. 요단강에서 예수님께 들려왔던 그 음성,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하늘의 선포가, 세례 받은 우리 각자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졌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어떠함 때문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와의 연합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가 되었다. 이 확고한 신분이 우리의 흔들리지 않는 정체성이다.

 

그러므로 오늘, 주님수세주일을 맞아 당신의 세례를 기억하라. 비록 물은 말랐을지라도, 그때 임하신 성령의 기름 부으심은 여전히 유효하다. 열린 하늘 밑에서 살아가는 존귀한 자답게, 이제 구경꾼의 자리에서 일어나 증인의 삶으로 발걸음을 내딛자. 요단강에서 시작된 그 거룩한 물결이 당신의 삶을 통해 이 메마른 세상으로 흘러가야 한다.

 

 

 

 

 

[ 허동보 목사 ]

ㆍ現 수현교회 담임목사

ㆍ現 수현북스 대표

ㆍ서울성경신학대학원대학교 목회학석사(M.Div)

ㆍ미국 Covenant University 신학석사(Th.m)

 

작성 2026.01.07 21:01 수정 2026.01.07 21:01

RSS피드 기사제공처 : 미디어 울림 / 등록기자: 허동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해당기사의 문의는 기사제공처에게 문의

댓글 0개 (/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Shorts NEWS 더보기
‘국민배우’ 안성기를 앗아간 식탁 위 비극, 기도 폐쇄 사고가 남긴 뼈아..
분노가 터질 것 같을 때,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분노가#성경이말한다 #야고..
설문을 받고도 “그래서 뭘 고쳐야 하지?”가#AI로1시간절약 #설문분석 ..
‘소리가 예쁜데’ 점수가 안 나오는 이유#콩쿠르비하인드 #입시비하인드 #..
올바른 다이어트 방법 ②#단백질식단#접시구성#식단관리#다이어트방법#건강한..
전도서 1장 6절 묵상#전도서1장6절#바람과마음#흔들림속중심#말씀위에서기..
무궁화신문) 예수그리도. 세계칭찬주인공 및 대한민국칭찬주인공으로 선정하..
부동산 퇴로 없는 잔혹사. 5월9일 다주택자 비명
설원 위의 제2의 김연아? ‘여고생 보더’ 유승은, 세계를 홀린 은빛 비..
불안이 올라올 때,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성경이말한다 #이사야41장10절..
은혜는 ‘감동’인가?#은혜 #은혜오해 #일상신학연구소 #신학쇼츠 #말씀적..
자료 조사를 해 놓고도 결론이 흐릿하면#AI로1시간절약 #자료조사 #비교..
콩쿠르에서 ‘안전한 연주’가 밀리는 이유#콩쿠르비하인드 #입시비하인드 #..
올바른 다이어트1#식사시간#식단관리#다이어트방법#건강한감량#다이어트오해
전도서1장5절 묵상#전도서1장5절#반복되는하루#시간의흐름#돌고도는인생#동..
"양도세 유예 없다" 확정에 서울 아파트 매물 급증... 강남권 급매물 ..
긴 글 읽다가 “그래서 핵심이 뭐야?”#AI로1시간절약 #문서요약 #핵심..
긴장을 없애려 할수록 더 흔들리는 이유#콩쿠르비하인드 #입시비하인드 #무..
서울뷰티허브 2026 참여기업 100곳 모집… K-뷰티 수출 올인원 지원..
같은 곡인데, 왜 누구는 붙고 누구는 떨어질까#콩쿠르비하인드 #입시비하인..
운동 열심히 하는데 왜 살이 안 빠질까#운동다이어트#살이안빠지는이유#다이..
전도서 1장 1절 묵상#전도서1장1절#전도자의말씀#삶에서길어올린신앙#왕의..
상을 기준으로 진로를 정할 때의 위험#콩쿠르비하인드 #입시비하인드 #진로..
지도 흔적이 너무 선명한 연주#콩쿠르비하인드 #입시비하인드 #지도흔적 #..
absolute를 했는데 내가 원하는 위치로 안옵니다. #Shorts
콩쿠르가 끝난 뒤, 바로 점검해야 할 것#콩쿠르비하인드 #입시비하인드 #..
다이어트가 자꾸 실패하는 진짜 이유#다이어트실패이유#건강한감량#다이어트오..
결국 살을 빼는 건 운동이 아니라 구조다#체중감량#생활습관#몸관리#회복중..
유튜브 NEWS 더보기

신의 구제 금융, 은혜언약의 이해 -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으로 읽는 현대 사회(20)

유배된 생명이 겪어야 할 존재론적 망명 생활 -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으로 읽는 현대 사회(19)

평택 진위 쌍용 대단지, 평당 900만원대 마지막 선택의 시간

겹겹이 쌓인 영혼의 결함과 일상의 일탈 -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으로 읽는 현대 사회(18)

낙원을 잃어버린 인류가 마주한 두 개의 그림자 -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으로 읽는 현대 사회(17)

당신의 운명이 태어나기 전에 결정된 이유 -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으로 읽는 현대 사회(16)

2월8일방송 아주특별한 하나님과의 인터뷰(3) 기도에 대하여 질문7가지

단 한 입의 열매가 무너뜨린 인류의 낙원 -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으로 읽는 현대 사회(15)

과녁을 빗나간 화살과 선을 넘어버린 발걸음 -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으로 읽는 현대 사회(14)

AI 시대에 살아남기

[속보]트럼프,약값 잡았다! 위고비 20만원대 충격인하

자유라는 이름의 양날의 검이 빚어낸 거대한 비극 -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으로 읽는 현대 사회(13)

말보다 라인으로 신뢰를 쌓는 벨루나뷰티

인간을 파트너로 격상시킨 신의 파격적 계약 조건 -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으로 읽는 현대 사회(12)

모든 우연을 필연으로 만드는 거대한 신의 경영학 -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으로 읽는 현대 사회(11)

AI도 복제할 수 없는 신성한 설계도 -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으로 읽는 현대 사회(10)

공허한 무의 공간에 채워진 존재의 찬란함 -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으로 읽는 현대 사회(9)

우리가 지금 이들을 만나야 하는 이유 #관세협상

설계도를 현실로 만드는 보이지 않는 손 -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으로 읽는 현대 사회(8)

거대한 설계도 위에 그려지는 우리의 오늘 -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으로 읽는 현대 사회(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