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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기획]덕은 지식산업센터 판결이 보여준 사법의 민낯

기업은 무과실, 국민은 전부 책임

법은 있었지만 기준은 없었다

판결은 끝났지만, 질문은 남았다

법은 있었지만 기준은 없었다 — 덕은 지식산업센터 판결이 드러낸 사법의 구조적 한계

서울중앙지방법원 2024가합109154 판결은 한 지식산업센터 분양 분쟁의 결론을 넘어, 대한민국 사법이 분양·부동산 사건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판결문에는 법 조문과 판례 인용이 빼곡하지만, 정작 피해자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는다. 왜 이 결론이어야 했는가, 그리고 왜 다른 유사 사건과는 다른 판단이 내려졌는가에 대한 설명은 끝내 등장하지 않는다.

 

사진: AI이미지

 

 산업집적법, ‘강행 규범’이 아닌 ‘형식 규정’이 되다

이번 판결에서 가장 논쟁적인 대목은 산업집적법 해석이다. 재판부는 지식산업센터의 입주 업종 제한 위반이 있더라도, 이는 행정적 제재의 문제일 뿐 분양계약의 사법적 효력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다시 말해 산업집적법을 단속 규정으로만 본 것이다.

그러나 산업집적법의 본래 취지는 명확하다. 지식산업센터가 주거·투기 상품으로 변질되는 것을 막고, 산업 기능을 보호하기 위한 사전 차단 장치다. 그럼에도 판결은 법의 목적보다 계약의 형식을 우선했다. 이로써 탈법적 분양 구조는 사법적으로 면책되고, 법은 현실을 규율하지 못하는 장식물로 전락했다.

 “증거 부족”이라는 결론, 그러나 과정은 보이지 않았다

원고들은 분양 당시 ▲주거 가능성 암시 ▲업종 요건 완화 설명 ▲고비율 대출 가능 안내 ▲사업자등록 유도 등의 정황을 기망으로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를 대부분 “증거 부족”이라는 이유로 배척했다.

문제는 무엇을 어떻게 판단했는지 판결문에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분양사기 사건은 구조적으로 정보 비대칭에 놓여 있고, 대법원 역시 직접 증거가 아닌 간접사실의 종합 판단을 허용해 왔다. 그럼에도 이번 판결은 개별 피해자에게 사실상 완전한 입증을 요구하며, 기망 법리를 형해화했다. ‘증거 부족’은 결론일 수는 있어도, 설명의 대체물은 될 수 없다.

 확인서 한 장으로 설명의무는 사라졌나

재판부는 계약자 확인서와 평면도 날인을 근거로, 원고들이 충분히 인식하고 계약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확인서를 사실상 전면 면책 수단으로 해석한 것이다.

그러나 분양계약에서 확인서 서명은 설명의무 이행의 추정 자료일 뿐, 설명 책임을 완전히 소멸시키는 방패가 아니다. 이 판결이 그대로 굳어진다면, 분양 현장에서는 “서명만 받아두면 책임은 없다”는 위험한 신호가 확산될 수밖에 없다.

 하자 판단의 형식화, ‘사용승인’이 모든 것을 덮다

원고들이 제기한 공조·면적·기둥·외장재 등 복합적 하자 주장에 대해 재판부는 사용승인 존재와 행정기관 회신을 근거로 대부분을 배척했다. 하지만 사용승인은 최소 기준 충족을 의미할 뿐, 분양계약상 약속된 사용 가능성과 목적 달성 여부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판결은 하자를 생활과 사업의 문제로 보지 않고, 서류상 적합 여부로만 축소했다. 이로써 분양계약의 실질은 지워지고 행정 문서만 남았다.

■ 입주예정일 판단, 기업의 시간표를 기준으로 하다

재판부는 사용승인과 입주지정 통보를 근거로 “입주가 가능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수분양자에게 중요한 것은 형식적 입주 가능성이 아니라, 실제 영업과 임대, 자금 운용이 가능한 상태였는지 여부다.

입주예정일을 행정 절차 중심으로 해석한 이번 판단은, 분양계약의 경제적·생활적 맥락을 삭제한 채 기업의 시간표를 기준으로 삼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 판결이 남긴 구조적 메시지

이 판결이 사회에 남긴 메시지는 분명하다.

산업집적법 위반 → 계약은 유효

분양 설명 논란 → 증거 부족

하자 주장 → 사용승인으로 종결

입주 지연 → 형식적 이행 인정

결과적으로 기업은 거의 무과실, 국민은 모든 위험을 감수한 주체가 된다. 이는 단일 사건의 문제가 아니라, 분양사기를 억제하지 못하는 사법 구조의 고착을 의미한다.

 왜 ‘AI 재판부’ 논의가 여기서 시작되는가

이 판결의 핵심 문제는 결론이 아니라 설명 부재다.

왜 이 사건에서 기망은 인정되지 않았는지,

왜 산업집적법의 목적은 고려되지 않았는지,

왜 유사 판결과의 비교는 이뤄지지 않았는지—

판결문은 답하지 않는다.

그래서 AI 재판부가 거론된다. AI 재판부는 판사를 대체하는 기술이 아니라, 판결 기준과 판례 편차를 데이터로 드러내는 설명 가능한 사법의 인프라다. 재량은 존중하되, 그 재량이 어떤 기준 위에서 행사됐는지는 공개돼야 한다.

■ 판결은 끝났지만, 질문은 남았다

2024가합109154 판결은 한 사건의 종결이 아니다.

지금의 사법이 누구의 언어로 말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신호다.

사법 신뢰 회복은 판결을 존중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분석하고, 비교하고, 설명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 질문을 던지는 일, 그것이 이번 기획의 이유다.

 

 

작성 2025.12.27 08:29 수정 2025.12.27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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