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 내가 이걸 왜 보고 있지?“
하루에도 수십 번 끊임없이 이어지는 콘텐츠에 정신줄 놓고 보고 있다가, '아차' 하는 순간 '내가 또 이러고 있었네' 하며 뒤늦은 알아차림을 한다. 스마트폰을 내려놓으려던 손이 어느새 다시 화면을 향하고, '하나만 더'라는 생각으로 시작한 스크롤이 몇 시간씩 이어진다. 15초에서 1분 남짓한 숏폼 영상들이 알고리즘의 정교한 계산에 따라 끝없이 연결되면서,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새로운 시간 감각 속에 빠져든다.
15초로 축약되는 인간의 뇌
"1분도 길게 느껴져요." "긴 영상은 아예 안 보게 돼요. 자막 추출 프로그램으로 영상 내용을 텍스트화한 다음 AI에 요약시켜요." 이런 말들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틱톡, 인스타그램 릴스, 유튜브 쇼츠로 대표되는 숏폼 콘텐츠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이 짧은 영상들은 단순한 엔터테인먼트를 넘어 인간의 사고 방식 자체를 재편하고 있다. 문제는 길이가 아니라 패턴이다. 무의식적으로 시작된 스크롤이 몇 시간씩 이어지는 동안, 우리의 집중력은 15초 단위로 쪼개지고 있다. 알고리즘이 끊임없이 제공하는 자극적이고 압축적인 정보에 익숙해진 뇌는 점차 깊이 있는 사고를 기피하게 된다.
여기에 AI가 가세했다. 긴 영상이나 글을 요약해주고, 복잡한 문제에 즉답을 제공하는 AI는 사고 과정에서 '고민하는 시간'을 제거한다. 예전엔 책 한 권을 읽어야 얻을 수 있던 정보를 이제는 몇 초 만에 요약본으로 받아볼 수 있다. 편리함의 이면에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문제를 오래 붙잡고 씨름하기보다 빠른 답을 찾으려 하고, 스스로 사고하는 대신 요약된 결과만 받아들이게 된다. 이런 습관이 일상화되면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가 아니라 '소비하는 뇌'로 퇴행할 위험이 있다.
새로운 인지 혁명의 시대
이 변화는 이미 교실에서 드러나고 있다. 아이들이 책장을 두 장도 넘기지 못한 채 다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모습은 낯설지 않다. 긴 글을 읽고 토론하는 과정이 버거워지고, 차분히 앉아 문제를 붙잡는 시간이 줄어들고 있다. 성인도 예외는 아니다. 직장인 교육 현장에서도 ‘핵심만 간단히 알려달라’는 요구가 많아졌다. 지식은 점점 압축되고, 배움은 점점 더 짧아지고 있다. 이 흐름이 지속된다면 교육은 ‘깊이’ 대신 ‘속도’만 남게 될지도 모른다.
과거 TV가 인간의 여가 시간을 바꿨다면, 숏폼과 AI는 인간의 사고 구조를 바꾸고 있다. 이는 단순한 기술 발전이 아니라 인지 혁명에 가깝다. 짧고 빠른 정보 처리에 최적화된 새로운 인간형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변화가 반드시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빠른 정보 처리 능력, 다양한 자극에 대한 적응력, 효율적인 학습 방법 등은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능력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이런 변화를 인식하고 균형을 찾는 것이다.
멈춤과 깊이의 균형
핵심은 선택권을 되찾는 것이다. 숏폼과 AI를 도구로 활용하되, 필요할 때는 의도적으로 멈출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짧은 콘텐츠로 관심을 불러일으키되 반드시 깊은 학습으로 연결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개인 차원에서는 하루 일정 시간을 정해 디지털 기기를 멀리하고, 긴 글 읽기나 깊은 사고를 위한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회적으로는 교육 시스템이 효율성과 깊이를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멈춤 없는 스크롤 대신, 아침 커피 향을 깊게 들이마시는 1분, 지하철 창밖 풍경을 바라보는 잠깐의 틈, 저녁 산책길에서 올려다본 하늘. 이 소소한 순간들이야말로 숏폼보다 더 깊은 울림을 남긴다. AI와 숏폼이 바꾸는 사고의 지도 위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더 자극적인 영상이 아니다. 일상의 평범한 순간에서 배우는 성찰의 힘, 그것이야말로 흔들리는 시대에도 우리를 단단히 붙들어주는 뿌리다. 일상에서 배우자. 진짜 배움은 멀리 있지 않다. 오늘 하루의 작은 멈춤 속에서 우리는 이미 충분히 배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