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닦고 있는 엄마의 손을 덜어주려고 컵에 물을 담아 드렸습니다. 오른손으로 양칫물을 받은 엄마가 왼손으로 컵의 바닥을 조심스럽게 쓸더니 두 손 모아 세면대에 올려놓습니다.
“엄마 입 헹궈야 하는데 왜 거기에 놔?”했더니
칫솔 문 입으로 “잘 되라고”합니다.
“누구?”
“다, 모두 다 잘되라고. 매일 한 그릇 떠 놨어”
90에 가까운 엄마가 붙잡고 있는 기억은 정화수입니다.
이른 새벽 마중물을 부어 펌프질을 몇 번하고 받아낸 물을 사기대접에 담아 그을음으로 새까매진 부엌 선반에 놓았던 물입니다. 어린 눈에도 의식을 거행하듯 신중했던 그 동작들을 기억합니다.
어젯밤 내린 비로 마을 어귀에 통행을 제한한다는 표지판이 세워졌는데요. 어린 시절 이렇게 비가 내린 날에는 부엌이 물에 잠겨 4남매가 돌아가며 수시로 물을 퍼냈습니다. 처음은 아궁이 재가 섞여 탁한 물인 데 퍼내다 보면 시냇물처럼 깨끗해져 청개구리도 몇 마리 들어왔지요. 물을 먹어 칙칙해진 시멘트 바닥에 선명한 연두색 개구리의 잠영은 흑백 화면에 컬러 입체 영상인 듯 물에 잠길까 잠 못 이루던 밤을 위로해 주었습니다.
아궁이에 불을 피워 난방 하는 온돌방이다 보니 큰 비가 오면 여지없이 굴뚝으로 퍼부은 물이 고스란히 부엌에 찼습니다.
벽돌로 벽을 만들고 온돌 깔고, 슬레이트로 지붕을 얹고, 겨우 한 사람 드나들 수 있는 아궁이가 있는 부엌 딸린 집을 건축에 문외한인 아버지가 직접 지었습니다. 겨울이면 외풍으로 벽에 서리가 끼었고 여름 해가 슬레이트 지붕을 우습게 투과하던 집에서 여섯 식구가 살았던 시절이 있었네요.
방이 들어설 자리를 땅따먹기 놀이하듯 네모 반듯하게 선을 긋고 네 귀퉁이에 말뚝을 막아 실을 묶어 팽팽하게 돌린 후 그 실을 따라 벽돌을 쌓아가던 아버지의 모습을 기억합니다. 땅밑으로 다지기 작업 없이 지어진 바람벽에서 10년은 더 살았습니다.
바로 앞에 축사도 지어 돼지 다섯 마리를 길렀는데 겨울에 새끼를 낳으면 이 방에서 함께 며칠 밤을 보내기도 했지요. 새끼 돼지가 너무나 귀여워 뜬 눈으로 밤새 지켜보던 기억이 선명한 집입니다. 새끼돼지 대여섯 마리는 꿀꿀거리면서 밤새 돌아다닙니다. 입을 벌리고 자는 동생 얼굴도 거리낌 없이 밟고 지나갑니다. 그럴 때는 돼지 탯줄이 동생 입에 들어 갔나 나오기도. 하염없이 돌아다니다가 순간 지치면 머리맡이나 체온이 있는 곳에 작은 궁둥이를 붙이고 잠이 듭니다.
전문지식 없이도 벽돌 하나하나 쌓아 올려 가족이 누울 자리를 만들어낸 아버지의 우직함, 아침마다 정화수를 떠 올리며 가족의 안녕을 빌던 엄마의 정성에 진심을 다한다는 의미를 다시 새기게 됩니다.
지금 내 나이보다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가 그립습니다.
독자님, 이번 비로 피해는 없으신지요. 모쪼록 평안하시기를요.
K People Focus 최영미 칼럼니스트 (ueber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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