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אָדוֹן (아돈) - 주, 주인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시 110:1)
'주인'이라는 존재는 컨트롤과 깊은 관련이 있다. 사물이나 생명체에게 있어서 주인은 모든 것을 관할하는 존재이다. 돈의 주인은 그 돈을 누군가에게 줘버릴 수 있다. 혹은 그 돈을 잘 투자해서 불릴 수도 있다. 그뿐인가, 아무 이유 없이 그냥 태워버리거나 없애버릴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 주인은 탄생부터 소멸까지 모든 것을 관할하며 컨트롤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오래전 어느 청바지 광고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난 나야, 난 내 삶의 주인이야."라는 카피가 엄청 유행한 적이 있었다. 물론 자신의 삶을 타인에게 휘둘리지 말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라는 아주 긍정적인 의미를 가진 메시지였다.
그러나, '내 삶의 주인이 나'일까? 쉽게 수긍하기엔 우리 스스로 삶을 컨트롤 하는 것이 녹록치가 않다. 우리 존재의 시작점인 탄생부터가 컨트롤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탄생'이라는 한 가지만이 아니다. 죽음은 어떤가? '죽는 건 내가 선택할 수 있지 않아?'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여러 번 자살 시도를 해본 사람은 안다. 죽음 역시 자신의 컨트롤 영역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탄생과 죽음을 제외하고는 우리가 컨트롤 할 수 있을까?
지금에서야 하는 이야기지만, 누군가가 칠흙같은 내 삶을 그나마 좋은 방향으로 끌고 와 주었던 것 같다. 그러한 삶을 '좋은 방향'이라고 표현하기엔 실소가 지어지지만, 분명 '최악'은 피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면, '내 삶'이라고는 해도 삶 속의 모든 것을 내가 관할할 수는 없었다. 내 삶의 모든 것을 내가 관할할 수 없었다는 말은 내 삶의 주인이 내가 아니었다는 고백이다. 나의 탄생을 내가 컨트롤 할 수는 없었다. 내가 원해서 유치원에 다니게 된 것도 아니었다. 교통사고가 나게 하고 장애인이 되게 한 것도 내가 아니었다. 책임 회피를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내 인생이 아니다. 난 단지 바람에 이끌리어 흘러가는 돛단배일 뿐이다.
가끔 '그 모든 것들은 당신이 선택한 것이 아니었냐?'는 질문을 받게 된다. 내가 진정 원했던 것은 유복한 유년 시절로 시작해서 돈 많은 장로로 죽는 것이었다. 아니, 애초에 태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뿐이었다. 난 선택조차 할 수 없었다. 만약 내가 단 한 번이라도 '선택'을 할 수 있었다면, 내 사랑스러운 아내와 세 아이들을 만날 수는 없었으리라.
세월이 지나 이제서야 진실을 조금 더 명확히 알 수 있게 된 듯하다. 내 인생, 내 삶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는 것을...
허동보 목사(Rev. Huh Dongbo) | 수현교회(Suhyun Church)
저서 | 『왕초보 히브리어 펜습자』, 『왕초보 헬라어 펜습자』, 『왕초보 히브리어 성경읽기』, 『고난, 절망의 늪에서 피어난 꽃』, 『부와 기독교신앙』, 『그와 함께라면』, 『만남』, 『AI시대, 히브리어로 답하다』 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