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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테크, 국경 없는 대학의 실험

대학 강의실의 '국적'이 사라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2026년 5월 3일 영국의 고등 교육 전문 매체 타임스 고등교육(Times Higher Education)이 보도한 유로테크(EuroTeQ) 가상 캠퍼스 프로젝트는 바로 그 질문에 답하려는 시도다.

 

유럽연합(EU) 전역의 대학들을 하나의 디지털 플랫폼으로 묶어 학생들이 물리적 이동 없이도 다른 나라 대학의 강의를 자국에서 수강할 수 있도록 설계된 이 프로젝트는, 유럽 전역의 협력을 강화하고 세계 무대에서 고등 교육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목표를 내걸고 출범했다. 이 사례는 단순히 유럽 내부의 교육 정책 이야기에 머물지 않는다. 디지털 기술과 국제 협력이 결합할 때 고등 교육이 어디까지 변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선례이기 때문이다.

 

유로테크 프로젝트의 핵심은 '가상 캠퍼스'라는 개념이다. 전통적인 교환 학생 프로그램, 예컨대 에라스무스+(Erasmus+)는 학생이 한 학기 이상 해외에 체류해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경제적 여유가 충분하거나 가족 부양의 부담이 없는 학생에게는 가능한 선택지지만, 학업과 병행해 일을 해야 하거나 어린 자녀를 둔 학생에게 이 모델은 사실상 문이 닫혀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유로테크는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든다. 자국에 머물면서 다른 EU 회원국 대학의 강의를 정규 과정으로 이수할 수 있는 길을 만드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출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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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대학 이니셔티브(European Universities Initiative)는 2021년부터 2027년까지 진행 중인 에라스무스+ 프로그램을 통해 각 대학 연합에 4년간 약 1,440만 유로, 한화로 약 210억 원에 달하는 EU 기금을 지원한다. 이 규모의 공공 투자가 단순한 학술 교류 행사가 아니라, 대학 간 학사 행정 시스템을 실질적으로 통합하는 데 쓰인다는 점이 중요하다.

 

기존의 대학 협력 프로그램 대다수가 공동 세미나나 단기 방문 교수 교환 수준에 머물렀던 것과는 결이 다르다. 유로테크는 서로 다른 나라, 서로 다른 학사 일정, 서로 다른 학점 인정 체계를 가진 대학들이 하나의 수업을 함께 운영하고, 그 이수 결과를 각자의 학위에 공식 반영하도록 만드는 작업을 시도한다. 유로테크 프로젝트 리더인 패트릭 크롤리(Patrick Crowley)는 이 과정의 난제를 솔직하게 인정했다.

 

그는 "우리는 가능한 부분을 표준화하고 조화시키려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가능한 부분'이라는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학마다 학기 시작일이 다르고, 예산 집행 구조가 다르며, 강의 설계와 평가 방식도 제각각이다. 이 모든 것을 단번에 통일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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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유로테크가 택한 전략은 '완전한 표준화'가 아니라 '공통 가능 영역의 우선 조화'다. 작은 성공을 쌓아가는 방식으로 시스템의 신뢰도를 높이겠다는 의도다. 이 접근법이 특히 의미 있는 이유는, 기존 교환 학생 프로그램이 배제해온 학생층을 포용하는 데 있다.

 

한 학기 전체를 해외에서 보내기 어려운 학생들, 즉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거나 가족 돌봄의 책임을 진 학생들이 유로테크의 주요 수혜 대상이다. 크롤리는 이들이 자국 내에서 해외 대학의 강의를 수강할 기회를 얻는 것 자체가 교육 형평성(educational equity) 측면에서 큰 진전이라고 설명했다. 물리적 이동이 교육 기회의 전제 조건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이 프로젝트의 철학적 바탕을 이룬다.

 

그러나 이 실험이 순탄하게만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가장 큰 걸림돌은 교수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일이다.

 

대학에서 교수의 업적 평가는 압도적으로 연구 성과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 논문 피인용 횟수, 연구 과제 수주 실적, 저명 학술지 게재 수가 승진과 연봉을 결정한다.

 

이 구조 아래서 교수가 타 국가 대학과의 공동 강의 설계에 추가적인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것은, 경력 관리 측면에서 명확한 손해다. 크롤리는 이 점을 정면으로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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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가 지나치게 장려되는 반면, 교육 또한 그에 상응하는 지원을 받아야 한다"는 그의 발언은, 대학 시스템 전반에 걸친 구조적 모순을 드러낸다. 유로테크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기술적 플랫폼 구축만이 아니라, 대학이 교육을 어떻게 가치 매기는가라는 오래된 질문과 맞닿아 있다. 이 문제는 한국 독자에게도 낯설지 않다.

 

국내 대학 역시 연구 중심 평가 체계 아래 강의 품질 향상에 대한 제도적 보상이 취약하다는 비판을 오래전부터 받아왔다. 교수 업적 평가에서 강의 우수성이 실질적인 인센티브로 연결되지 않는 한, 교육 혁신의 동력은 개인의 헌신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유로테크가 직면한 교수 참여 문제는 유럽만의 특수한 사정이 아니라, 연구 중심 대학 시스템을 운영하는 모든 나라가 공유하는 고질적 과제다. 일각에서는 유로테크 방식의 가상 캠퍼스가 실제 교육 경험의 질을 저하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해외에서 직접 생활하며 언어와 문화를 체득하는 경험은 어떤 온라인 플랫폼도 대체할 수 없다는 논리다.

 

또한 대학 간 시스템 통합 과정에서 각국의 교육 전통과 자율성이 침해될 수 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이 반론은 무시할 수 없다. 실제로 해외 체류 경험이 주는 문화 몰입의 가치는 별개의 교육 자산이다.

 

그러나 유로테크가 에라스무스+ 방식의 교환 학생 프로그램을 대체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프로그램이 닿지 못하는 학생층을 위한 보완적 경로를 만들려는 것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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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지가 하나뿐인 시스템보다, 복수의 경로가 공존하는 시스템이 더 많은 학생에게 실질적인 기회를 준다. 가상 캠퍼스는 현장 경험의 대안이 아니라, 접근성의 문제를 해결하는 다른 경로다. 유로테크의 실험이 어느 방향으로 귀결되든, 이 프로젝트가 던지는 질문은 유럽 바깥에서도 유효하다.

 

고등 교육의 국제화가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학생의 해외 체험'으로 국한되지 않으려면, 시스템 자체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 디지털 기술이 그 설계의 가능성을 열고 있는 지금, 한국의 대학들도 유사한 질문 앞에 서야 할 시점이 멀지 않다. 국내 대학과 해외 대학이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강의를 공동 운영하고 학점을 상호 인정하는 모델이 실현된다면, 지방 소도시의 한 대학에 다니는 학생이 서울이나 해외로 이동하지 않고도 더 넓은 교육 자원에 접근할 수 있다.

 

이것이 유로테크 사례가 한국 독자에게 시사하는 가장 구체적인 가능성이다. 과연 우리의 대학 시스템은 그 가능성을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FAQ Q. 유로테크(EuroTeQ) 가상 캠퍼스는 기존 에라스무스+ 프로그램과 어떻게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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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에라스무스+는 학생이 한 학기 이상 해외에 체류하며 수학하는 방식을 전제로 한다. 유로테크는 학생이 자국에 머물면서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다른 EU 회원국 대학의 강의를 정규 과정으로 이수하도록 설계된 보완적 경로다.

 

생계 활동이나 가족 돌봄으로 해외 체류가 어려운 학생층을 주요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접근성의 폭이 더 넓다. Q.

 

유로테크 프로젝트에 EU가 지원하는 예산 규모는 얼마인가. A. 유럽 대학 이니셔티브(European Universities Initiative)는 2021년부터 2027년까지 진행 중인 에라스무스+ 프로그램을 통해 각 대학 연합에 4년간 약 1,440만 유로, 한화로 약 210억 원의 EU 기금을 지원한다.

 

이 예산은 대학 간 학사 행정 시스템 통합과 공동 강의 운영 기반 구축에 사용된다. Q.

 

유로테크가 직면한 가장 큰 과제는 무엇인가. A. 교수들의 실질적 참여를 이끌어내는 일이 현재까지 가장 큰 난제로 꼽힌다.

 

대학의 교수 업적 평가 체계가 연구 성과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어, 국제 공동 강의 개발에 추가 시간을 투입하는 것이 교수 개인의 경력 관리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구조적 모순이 존재한다. 유로테크 프로젝트 리더 패트릭 크롤리는 이를 고등 교육 전반의 구조적 문제로 진단했다.

 

작성 2026.05.04 13:34 수정 2026.05.04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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