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인사동 화랑에서 ‘청보리밭’의 작품 앞에 한 참 서 있었다. 왜냐면, 중고등학교 시절 고향 집에서는 보리농사를 지었다. 그때 ‘청보리밭’, 이 ‘황보리밭’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 보리밭 등등을 일구며 평생 어둑새벽이면 논밭으로 나가셔서 해 질 녘, 산그리메와 함께 집으로 오셨던 부모님이 떠올랐다. 아무런 말이 없이, 생각 없이 그림의 한 작품 앞에서 드는 순간의 느낌이지만 고단했던 농부의 부모님을 생각게 하는 강렬한 감각 작용을 일으켰다.
가끔 집을 떠나서 가까운 공원이나 낮은 산, 또는 먼 길 떠나기도 한다. 누구든 자기만의 삶의 방식과 생활 패턴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둘레길을 걷고, 산길을 미음완보(微吟緩步)하면서 일상에서의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하기도 하고, 또는 방 안에 틀어박혀 온종일 게임을 하거나 유튜브 영상에 빠져 정신 줄 놓기도 한다.
또한, 한적한 숲 속의 길을 걸으며 계절에 따른 우주의 섭리와 삼라만상의 이치를 느끼기도 하고, 산 정상에서 바라다보는 자연의 웅장한 풍경 앞에 자신을 반추하기도 하고, 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풀잎과 나뭇잎들을 손끝으로 조심스레 매만질 때 어떤 희열을 느끼기도 한다.
어떤 이는 공연장이나 미술관을 찾기도 할 것이고, 누구는 산속 암자에서 촛불을 켜고, 누군가는 무언가를 염원하며 108배를 올리기도 하고, 교회당 종소리에 마음이 포근해지며 고개 숙여 기도를 올리기도 한다. 이렇듯 어떠한 방식으로든, 자신의 삶에 충실하고 열중하는 모습은 그 어떤 방식을 떠나 모두 구도자의 모습처럼 보인다
위와 같은 사람들에게 ‘왜’라고 묻는 것과 ‘?’라는 의문부호를 떠올리는 것은, 우문(愚問)일 뿐이고 우매(愚昧)한 상상일 뿐이다. 이들에겐 마음을 울리고 두드리는 자극 속 영혼의 감각 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때로는 아무런 생각 없이 무념무상의 생각과 무언의 발걸음을 하는 것이다. “나는 말하지도 생각하지도 않으리/그러나 끝없는 사랑은/가슴속에 떠오르리./나는 가리라, 멀리멀리/떠돌이처럼,”의 랭보 시구처럼.
감각(Sensation)
아르튀르 랭보(1854~1891)
나는 가리라 푸른 여름밤엔
보리 이삭이 정강이를 찌르는 오솔길 위로,
잡초 넝쿨 밟으러.
몽상가여, 나는 나의 발에
서느러운 감촉을 느끼며,
부는 바람에 한껏
머리칼을 날리며.....
나는 말하지도 생각하지도 않으리.
그러나 끝없는 사랑은
가슴속에 떠오르리.
나는 가리라, 멀리멀리
떠돌이처럼,
하늘과 땅 사이를
연인과 함께 가듯 행복하게…
[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제7회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제3회 코스미안상 대상(칼럼)
제4회 한탄강문학상 대상
제7회 보령해변시인학교 금상
제6회 아산문학상 금상
제5회 순암 안정복 문학상
제6회 최충 문학상
시집 『흔적의 꽃』,『지구의 유언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