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요? 저는 클래식을 잘 몰라요."
이렇게 말하는 분들께 묻고 싶습니다. 영화 《귀여운 여인》에서 리처드 기어가 줄리아 로버츠를 데려간 그 공연, 기억나세요? 바로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입니다. 드라마 오프닝에 나오는 웅장한 행진곡, 어디선가 들어본 그 선율은 《아이다》의 개선 행진곡이구요.
여러분은 이미 베르디를 알고 있답니다. 베르디 이름만 몰랐을 뿐입니다.
주세페 베르디(1813~1901)는 19세기 이탈리아 오페라를 50년 동안 지배한 작곡가입니다. 로시니가 은퇴하고, 벨리니가 세상을 떠나고, 도니체티가 쇠퇴하던 그 공백을 베르디가 단숨에 채웠습니다. 라 스칼라 오페라 극장은 그의 이름으로 빛났고, 카이로에서 런던까지 전 유럽이 그의 음악에 열광했습니다.
그는 파르마 근처의 작은 마을 론콜레에서 여관 주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겨우 아홉 살에 마을 교회 오르가니스트를 맡을 정도로 재능이 뛰어났지만, 인생은 그리 순탄하지만 않았습니다.
1832년, 스무 살의 베르디는 밀라노 음악원에 지원했다가 입학을 거부당했습니다. 이유는 황당하게도 "나이가 너무 많고 피아노 주법이 특이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개인 레슨으로 실력을 키웠습니다.
더 가혹한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1838년부터 1840년까지, 불과 2년 사이에 두 자녀와 아내를 모두 잃었습니다. 첫 오페라 《오베르토》를 성공적으로 무대에 올린 직후였습니다. 그 때 베르디는 음악을 완전히 포기하려 했습니다. 그 절망의 시간을 구한 것은 우연히 손에 들어온 성경 속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대본이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오페라가 《나부코》(1842)입니다.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간 히브리 민족의 이야기입니다. 이 작품은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서 초연되자마자 이탈리아 전역을 뒤흔들었습니다. 관객들은 무대 위 노래를 들으며 오스트리아 지배 아래 고통받던 자신들의 처지를 떠올렸고, 무대 밖에서 함성을 질렀습니다. 그 순간부터 베르디는 단순한 작곡가가 아니라 이탈리아 국민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나부코 이후로 나는 단 한 시간도 평화로운 적이 없었다. 내 삶은 갤리선에서의 16년이었다."
— 주세페 베르디
1. '갤리선의 노예'가 만든 황금기
베르디 스스로 "갤리선 생활"이라고 부른 시기가 있습니다. 1839년부터 1853년까지 그는 무려 14편의 오페라를 쏟아냈습니다. 대략 1년에 한 편 꼴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기적에 가까운 속도입니다. 그 혹독한 창작 기간 끝에 세 편의 걸작이 탄생했습니다. 오페라 역사상 가장 자주 공연되는 작품들, 이른바 황금 삼부작입니다.
《리골레토》(1851)는 궁정 광대의 비극입니다. 빅토르 위고의 원작으로, 검열관들이 "왕을 모욕하는 내용"이라며 수정을 요구했지만 베르디는 끝까지 자신의 뜻을 관철했습니다. 공작이 흥얼거리는 아리아 "여심은 변덕스러워(La donna è mobile)"가 너무 유행할 것을 알았던 베르디는, 오케스트라 리허설에서도 이 곡을 비밀로 하다가 초연 당일에야 테너에게 알려줬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라 트라비아타》(1853)는 파리 사교계의 여인 비올레타의 이야기입니다. 뒤마의 소설이 원작입니다. 초연 당시에는 혹평을 받았지만, 곧 세계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는 오페라로 자리 잡았습니다. 지금도 매년 전 세계에서 300~400회 이상 무대에 오릅니다. 베르디 본인은 초연 실패 다음 날 일기에 이렇게 썼습니다. "실패는 내가 아니라 관객의 몫이다."
2. 이름 자체가 혁명 — VIVA VERDI!
1859년부터 이탈리아 전역에 퍼진 구호 "VIVA VERDI"는 겉으로는 작곡가를 응원하는 말이었지만, 사실은 통일 운동을 지지하는 암호였습니다. VERDI의 다섯 글자는 'Viva Vittorio Emanuele Re D'Italia(이탈리아의 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만세)'의 머리글자였습니다. 오스트리아 검열관들이 눈치채기 전까지, 이 다섯 글자는 혁명의 함성이었습니다.
베르디의 음악은 단순한 오락거리가 아니었습니다. 특히 《나부코》의 합창 "Va, pensiero(가라, 내 생각이여)"는 오스트리아 지배 아래 신음하던 이탈리아인들에게 사실상의 국가와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포로가 된 히브리 민족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부르는 이 합창을 들으며, 이탈리아 관객들은 자신들의 상황을 떠올렸습니다. 베르디는 1861년 이탈리아 통일 후 하원의원으로, 이후 상원의원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음악으로 나라를 얻은 남자였습니다.
3. 우리가 잘 몰랐던 《아이다》의 숨겨진 이야기
우리가 익히 아는 《아이다》는 이렇습니다. 이집트 장군 라다메스와 에티오피아 공주 아이다의 비극적 사랑, 웅장한 개선 행진곡, 화려한 무대. 그런데 이 오페라의 탄생 과정은 무대 위 드라마 못지않게 흥미롭습니다. 널리 퍼진 '상식'들이 사실은 틀렸고, 작곡가의 괴짜스러운 면모도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가장 유명한 오해: 《아이다》는 수에즈 운하 개통을 기념하기 위해 작곡되었다?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이집트 총독이 운하 개통 기념 작품을 의뢰했지만 베르디는 거절했습니다. 실제 《아이다》의 카이로 초연은 운하 개통(1869년) 2년 뒤인 1871년에야 이루어졌습니다.
진짜 탄생 비화: 《아이다》의 원작은 소설도 희곡도 아닙니다. 프랑스의 이집트학자 오귀스트 마리에트가 직접 구상한 이야기였습니다. 그는 스핑크스와 신전을 발굴한 전설적인 고고학자입니다. 개막용 무대 세트를 직접 파리에서 제작했지만, 1870년 보불전쟁으로 파리가 포위되면서 세트가 묶여 초연이 연기되기도 했습니다.
베르디의 거절 이유: 베르디는 카이로 초연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공식적인 이유는 "귀족 전용 갈라 공연에 반대한다"는 것이었지만, 그가 친구에게 털어놓은 진짜 이유는 달랐습니다. "이집트에 갔다가 미라로 만들어질 것 같아서"라고 했습니다. 그는 몇 달 후 밀라노 라 스칼라 공연만이 '진짜' 초연이라고 여겼습니다.
환불 요구 사건: 1872년 파르마 공연 후, 한 청년이 베르디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두 번 봤는데 형편없으니 티켓값, 기차값, 밥값까지 환불해 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베르디는 티켓값과 기차값은 돌려줬지만 밥값은 거절했습니다. 이유는 "집에서 먹으면 됐잖아요"였습니다..^^
4. '오페라의 왕'과 '가곡의 왕'은 다릅니다
베르디의 위대함은 '노래'가 아닌 '오페라'에 있습니다. 오페라는 드라마와 음악, 오케스트라가 하나로 어우러진 종합 예술입니다. 베르디는 이 형식을 이전에 없던 높이로 끌어올렸습니다. 아리아 하나하나가 아름다울 뿐 아니라, 인물의 내면을 깊이 파고들고 이야기를 이끄는 강력한 도구가 되었습니다. 그의 음악이 너무 유려해서 아리아만 따로 부르는 경우도 많지만, 정확한 칭호는 "이탈리아 오페라의 왕"입니다.
반면 '이탈리아 가곡의 왕'이라 불리는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프란체스코 파올로 토스티(1846~1916)입니다. 그의 작품은 오페라 무대가 아닌 살롱이나 연주회장을 위한 독창곡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세레나타〉, 〈이상〉, 〈안녕〉 같은 곡들은 지금도 성악 교육의 필수 레퍼토리입니다. 피아노와 목소리가 친밀하게 어우러지는 특유의 서정성은, 베르디의 웅장함과는 또 다른 세계를 보여줍니다.
5. 80세에 희극을 쓴 남자
베르디의 마지막 두 오페라는 셰익스피어의 원작입니다. 비극 《오텔로》(1887)와 희극 《팔스타프》(1893). 두 작품 모두 대본 작가 아리고 보이토와 함께 만들었습니다.
특히 《팔스타프》는 그가 80세에 완성한 작품입니다. 잠시 생각해 봅시다. 여든 살에 쓴 오페라가 지금도 세계 주요 무대에 오르고 있습니다. 그것도 유쾌하고 기발한 희극으로 말이죠.
《팔스타프》는 베르디의 유일한 희극 오페라 걸작이기도 합니다. 평생 비극을 써온 사람이 인생의 마지막에 웃음을 선택했다는 것은, 그 자체로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그가 1901년 1월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 밀라노 거리에는 25만에서 30만 명의 인파가 모였습니다. 지휘자 아르투로 토스카니니가 이끄는 가운데, 군중은 자발적으로 "가라, 내 생각이여"를 합창했다고 전해집니다.
베르디의 유언도 인상적입니다. 오페라 저작권 수입 전부를 밀라노의 음악가 양로원 '카사 디 리포조 페르 무지치스티'에 기증하도록 했습니다. 그는 생전에 이 시설을 직접 세웠습니다. 그는 음악으로 시작해 음악으로 끝난 삶을 살았습니다.
오페라 나부코에 나오는 시대를 초월한 깊은 감동의 합창곡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을 감상해보시지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