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들이 묻는다.
"갑자기 왜 작품이 바뀌었나요?"
동료 작가들은 조금 더 솔직하게 묻는다. "뭔 일 있어?"
산불이 한 번, 수해가 한 번.
생명의 위협이라는 말이 뉴스에서나 쓰이는 단어인 줄 알았다. 두 번 겪고 나서야 알았다. 그건 냄새가 나고, 소리가 있고, 몸에 새겨진다. 연기가 목을 조이는 감각, 물이 바닥을 삼키는 속도. 그런 것들은 기억에 저장되는 게 아니라 몸에 각인된다.
손을 쉬게 하고 싶지 않았다.
거창한 이유는 아니었다. 그냥 손이 놀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끄적거렸다. 남은 것으로, 할 수 있는 것을. 수채화로 뭔가를 그리고 또 그린다.
그게 작품이 '바뀐' 이유다. 선택이 아니었다.
남은 것이 그것뿐이었다.
내가 서식하는 이 마을로 이어지는 유일한 다리—자양교—는 무너진 지 오래됐다.
그런데 신경 쓰는 사람이 없다. 아무도.
처음엔 공간이 갇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공간이 갇힌 게 아니라 사람들이 갇혔다.
각자의 스트레스에, 각자의 일상에. 그 안에서 무심코 던지는 말들이 있다.
악의는 없다. 그냥 모르는 거다. 이쪽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이를 악물었다.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설명할 수 있는 말도 없었다.
그래도 그린다. 허락된 것만 가지고. 지금 할 수 있는 표현으로.
막막하다는 말이 이렇게 구체적인 줄 몰랐다.
그것은 냄새가 났다—젖은 나무와 곰팡이와 흙. 소리도 있었다—삐걱거리는 경첩, 어딘가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그리고 무게가 있었다. 가슴 한가운데를 짓누르는, 아무리 숨을 들이켜도 바닥에 닿지 않는 무게.
욕이 나왔다. 소리 내어 뱉지는 않았다. 목구멍 안에서 뜨겁게 끓었다가 가라앉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아주 조용한 무언가가 남았다. 무너지고 나서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나는 아직 여기 있다. 손이 있고, 눈이 있고, 이 개같은 상황을 통째로 기억하는 몸이 있다.
그게 지금 내가 가진 전부다. 그리고 어쩌면, 그게 작업의 시작이기도 했다. 언제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