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고, 우리 순경님. 학창 시절에 공부를 얼마나 안 하셨으면 남들 다 자는 이 새벽에 이런 궂은일을 다 하실까? 제가 내는 피 같은 세금으로 월급 받으시니까, 불만 갖지 말고 똑바로 좀 처리해 주세요, 네?”
새벽 2시, 지구대를 찾아온 번듯한 차림의 민원인은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띤 채 완벽한 존댓말을 구사했다. 고함도, 쌍욕도 없었다. 하지만 그 나긋나긋한 목소리는 파출소 바닥에 토사물을 뱉는 주취자의 난동보다 훨씬 더 깊고 서늘하게 제복 입은 경찰관의 자존감을 도려냈다.
모욕을 예의로 포장하는 영악함
35년 현장에서 마주한 가장 악질적인 가해자들은 대개 화를 내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이 쌍욕을 하거나 물리력을 행사하면 모욕죄나 공무집행방해로 처벌받는다는 사실을 영악하게 알고 있다. 그래서 '친절'이라는 합법적인 가면을 쓴다.
직장 내에서도 마찬가지다. "계장님, 제가 몰라서 여쭙는 건데, 이 기획안 혹시 발가락으로 쓰셨나요? 참 창의적이시네." 미소를 지으며 뱉는 상사의 이 교묘한 존댓말은, 대놓고 욕을 하는 것보다 훨씬 타격감이 크다. 피해자가 발끈하면 오히려 "농담한 건데 왜 혼자 예민하게 구느냐"며 피해자를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가는 가스라이팅의 전형이다. 쓰레기를 최고급 실크로 포장한다고 해서 그 악취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포장지를 찢고 본질만 타격하라
친절을 가장한 폭력에 대처하는 가장 나쁜 방법은, 상대의 페이스에 말려들어 감정적으로 폭발하는 것이다. 그들은 당신이 이성을 잃고 분노하는 순간을 기다리며 "거봐, 내 말이 맞지?"라며 비열하게 미소 지을 것이다.
이 교묘한 덫을 부수려면 상대의 '포장(말투)'을 무시하고 '본질(내용)'만 건조하게 타격해야 한다. "민원 내용만 말씀하십시오. 모욕적인 언사는 삼가시기 바랍니다." 혹은 "업무 피드백만 해주십시오. 인신공격은 불쾌합니다."라고 단호하게 선을 그어야 한다.
진짜 존중은 미사여구에 있지 않다
진짜 예의와 인권은 입에 발린 미사여구나 번듯한 미소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타인의 존엄을 함부로 평가하거나 침범하지 않는 무거운 책임감에서 출발한다. 친절이라는 가면 뒤에 숨어 합법적으로 칼을 휘두르는 자들에게, 더 웃으며 맞아주는 샌드백이 될 이유는 없다. 가면은 벗겨내고, 선은 차갑게 그어라.
칼럼니스트 소개

전준석 칼럼니스트는 경찰학 박사이자 35년간의 경찰 생활을 총경으로 마무리한 치안 행정 전문가다. 현재 한국인권성장진흥원 대표로서 우리 사회의 인권 감수성을 높이는 데 헌신하고 있다.
인사혁신처,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등 주요 기관에서 전문 강사로 활동하며 성인지감수성, 4대폭력 예방, 자살 예방 및 직장 내 장애인 인식 개선, 인권 예방, 리더십 코칭 등 폭넓은 주제로 사회적 가치를 전파하는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범죄심리학', '다시 태어나도 경찰', '그대 사랑처럼, 그대 향기처럼', '4월 어느 멋진 날에', '그대는 늘 선물입니다' 등이 있다. 경찰관으로 35년간 근무하면서 많은 사람이 인권 침해를 당하는 것을 보고 문제가 있음을 몸소 깨달았다. 우리 국민이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차이를 인정하는 마음을 갖게 되면 차별이라는 것이 없어지고 인권이 성장할 것이다. 그런 생각에서 [삼시세끼 인권, 전준석 칼럼]을 연재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