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공공정책신문=김유리 기자] 정치개혁은 소리만 요란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누구에게 정치의 문을 열었는가, 누구의 참여를 넓혔는가, 권력의 독점을 얼마나 완화했는가로 평가되어야 한다. 최근 국회가 처리한 정치관계 법안은 ‘개혁’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정치의 문턱을 낮추기보다 기존 정치세력의 지역 기반을 제도적으로 보강한 측면이 강하다.
국회는 2026년 4월 18일 제434회 임시회 본회의에서 공직선거법, 정당법, 정치자금법, 제주특별법 등 정치관계 법안을 처리했다. 주요 내용은 광역의원 및 기초의원 정수 조정, 비례대표 시·도의원 비율 상향, 일부 지역 중·대선거구제 도입, 그리고 국회의원지역구마다 당원협의회 또는 지역위원회 사무소 설치를 허용하는 정당법 개정이다. 특히 정당법 개정은 2004년 폐지된 지구당 제도의 사실상 부활이라는 점에서 정치권 안팎의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물론 지역정치의 활동공간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정당은 중앙당만으로 존재하는 조직이 아니다. 국민의 생활 현장은 지역에 있고, 주민의 민원과 요구, 정책 수요와 정치적 의사도 지역에서 형성된다. 지역에 기반한 정당활동은 주민의 정치참여를 확대하고, 중앙정치와 지방현장을 연결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원외 정치인과 정치 신인에게도 합법적인 지역 활동 거점을 허용하자는 주장은 일정한 설득력을 갖는다.
그러나 문제는 ‘지구당 부활’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어떤 원칙과 조건 위에서 부활시키느냐에 있다. 제도가 누구에게 열려 있는가, 자금과 회계는 얼마나 투명한가, 지역주민의 참여가 실제로 보장되는가, 소수정당과 신생정당의 정치적 기회가 침해되지 않는가가 핵심이다. 이 기준에서 보면 이번 개정은 정치개혁이라기보다 기득권 회귀에 가깝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지구당은 과거 한국 정당정치의 대표적인 지역조직이었다. 지역 여론을 수렴하고 당원을 조직하며 선거를 준비하는 기능을 수행했다. 그러나 동시에 고비용 정치와 불투명한 정치자금, 지역 유력자의 사당화, 공천을 둘러싼 부패의 통로라는 비판을 받았다. ‘차떼기 사건’과 같은 불법 정치자금 문제 속에서, 지구당 운영에 임대료·인건비·활동비 등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고 고비용·저효율 정당구조와 정치부패를 낳는다는 지적이 제기되었고, 2004년 지구당 폐지는 이러한 정치개혁 논의의 산물이었다.
따라서 지구당을 다시 허용하려면 최소한 세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첫째, 모든 정당에 공정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둘째, 정치자금의 수입과 지출이 철저히 공개되어야 한다. 셋째, 지역조직이 중앙당 또는 특정 정치인의 사조직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민주적 내부통제가 제도화되어야 한다. 이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지구당 부활은 풀뿌리 민주주의가 아니라 돈과 조직을 가진 정당에게 더 큰 무기를 제공하는 일이 될 수 있다.
특히 이번 정당법 개정에서 가장 우려되는 대목은 지역 사무소 설치 대상을 ‘언론기관 여론조사 평균 지지율 5% 이상 정당’으로 제한한 점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개정안의 골자는 각 여론조사에서 평균 지지율이 5% 이상 나온 정당의 각 지역 당원협의회가 국회의원지역구마다 사무소 1곳을 둘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이 기준대로라면 전국 250여 개 지역구에 합법적으로 간판을 걸 수 있는 정당은 사실상 거대 양당에 거의 한정된다. 형식상 객관적 기준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미 인지도와 조직력, 언론 노출, 재정 기반을 가진 정당에게만 지역정치의 합법적 거점을 허용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여론조사 지지율은 정치적 경쟁의 출발선이 아니라 경쟁의 결과에 가깝다. 이미 국회 의석과 언론 노출, 선거 보조금, 광범위한 지역조직을 보유한 정당은 자연스럽게 높은 인지도를 갖는다. 반면 신생정당과 소수정당은 지역에서 주민을 만나고 정책을 알릴 기회조차 충분히 갖지 못한다. 그런데 그들에게 “먼저 지지율 5%를 넘긴 뒤에야 지역 사무소를 둘 수 있다”고 요구하는 것은, 사다리를 올라간 사람에게만 사다리를 더 주고 아래에 있는 사람에게는 출발선조차 허락하지 않는 것과 다르지 않다.
헌법은 정당의 설립 자유와 복수정당제를 보장하고, 정당이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하는 데 필요한 조직을 가질 수 있음을 전제로 하고 있다. 정당의 자유는 단순히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할 자유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국민과 만나고, 정책을 설명하고, 당원을 조직하고, 지역사회의 문제를 정치적 의제로 전환할 자유까지 포함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지지율 5% 기준은 정당활동의 자유와 정치적 결사의 자유를 여론조사 수치에 의해 제한하는 장치로 작동할 소지가 크다.
물론 난립정당이나 위장조직, 불투명한 자금 운용을 막기 위한 규제는 필요하다. 그러나 그 목적을 달성하는 방법이 여론조사 지지율 제한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더 합리적인 대안은 존재한다. 일정 수 이상의 당원 보유, 정기적 회계보고, 외부감사, 사무소 운영비 상한제, 후원금 수입·지출 실시간 공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정기 점검, 지역 당원총회 의무화 등으로도 충분히 제도적 통제가 가능하다. 문제 있는 정당을 규제해야지, 작다는 이유만으로 정당활동의 기회를 구조적으로 제한해서는 안 된다.
이번 정치개혁 법안에는 중·대선거구제 확대와 비례대표 비율 상향도 포함되어 있다. 공직선거법 개정안은 기초의원 중·대선거구제 시범 지역을 기존 11곳에서 27곳으로 확대하고, 광주 일부 4개 선거구에 광역의원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며, 비례대표 시·도의원 정수 비율을 10%에서 14%로 상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형식만 보면 정치적 대표성을 높이는 조치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개혁은 폭과 깊이로 판단해야 한다. 중·대선거구제는 사표를 줄이고 소수정당의 진입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제도다. 그렇다면 정치적 다양성이 더욱 절실한 수도권과 영남, 호남의 독점 지역 전반에 과감하게 적용했어야 한다. 일부 지역에 제한적으로 도입하고 이를 개혁이라 부르는 것은 제도의 취지를 스스로 축소하는 일이다. 비례대표 비율 역시 10%에서 14%로 올리는 데 그쳤다면, 그것이 거대 양당 독점 구조를 실질적으로 완화할 수 있는지 냉정하게 따져야 한다.
지방자치는 이미 심각한 대표성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2022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300곳이 넘는 무투표선거구가 기록되었고, 321개에 달했다는 분석도 있다. 유권자가 투표장에 가기도 전에 당선자가 결정되는 현실은 지방자치의 활력이 얼마나 약화되었는지를 보여준다. 경쟁 없는 선거, 선택 없는 투표, 공천이 곧 당선이 되는 구조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관리된 정치에 가깝다.
지방의회는 주민의 생활 문제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다루는 기관이다. 조례, 예산, 행정사무감사, 지역정책의 우선순위가 모두 지방의회에서 다루어진다. 그런데 지방의회가 거대 정당의 지역조직 관리 수단으로 전락한다면 지방자치는 본래의 의미를 잃게 된다. 지방정치의 핵심은 중앙정당의 하부구조가 아니라 주민대표성이다. 지역주민의 다양한 가치와 요구가 의회 안으로 들어와야 지방자치가 살아난다.
이런 점에서 지구당 부활은 단독으로 논의될 사안이 아니다. 지역정당 허용, 비례대표 확대, 기초의원 2인 선거구 폐지, 결선투표제 도입, 공천제도 민주화, 정치자금 투명성 강화와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지역 사무소만 허용하고 정치자금과 공천 구조, 선거제도의 승자독식 구조를 그대로 두면, 지역정치는 더 공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 조직화된 기득권 경쟁으로 바뀔 수 있다.
정치개혁은 권력자가 스스로의 편의를 확대하는 일이 아니다. 정치개혁은 권력을 나누는 일이다. 더 많은 시민이 참여할 수 있도록 문을 여는 일이다. 기득권 정당이 이미 가진 조직과 자금을 제도적으로 보강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대표되지 못한 시민의 목소리가 제도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보장하는 일이다.
공정한 정치는 강한 자에게 더 넓은 길을 내주는 정치가 아니다. 약한 목소리도 들릴 수 있도록 길을 여는 정치다. 공공선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정치는 특정 집단의 소유물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를 위한 봉사여야 한다. 지역정치의 공간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모든 정당과 시민에게 공정하게 열려야 한다. 투명성과 책임성을 갖춘 열린 제도라면 지구당 부활은 풀뿌리 민주주의의 회복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여론조사 지지율 5%라는 문턱을 세워 이미 힘 있는 정당에게만 지역정치의 제도적 거점을 허용한다면 그것은 개혁이 아니라 기득권의 귀환일 뿐이다.
국회는 이제 답해야 한다. 이번 조치가 과연 국민을 위한 정치개혁인지, 아니면 거대 정당의 지역 기반을 합법화하기 위한 정치적 타협인지 분명히 설명해야 한다.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보다 근본적인 논의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 정당활동의 자유와 정치자금 투명성, 지방선거 대표성, 소수정당의 진입 가능성을 하나의 개혁 패키지로 다루어야 한다.
풀뿌리 민주주의는 간판을 다는 것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사무소가 생긴다고 지역정치가 살아나는 것도 아니다. 진정한 풀뿌리 민주주의는 주민이 선택할 수 있을 때, 다양한 정치세력이 공정하게 경쟁할 때, 정치자금이 투명하게 공개될 때, 그리고 시민의 목소리가 중앙정치의 계산보다 우선될 때 비로소 가능하다.
지구당 부활이 정치개혁이 되려면 문을 넓혀야 한다. 그러나 지금처럼 여론조사 수치로 문턱을 세우고, 이미 힘 있는 정당에게만 지역정치의 제도적 거점을 허용한다면 그것은 개혁이 아니라 과거로의 회귀다. 정치개혁의 이름을 빌린 기득권 강화는 더 이상 국민을 설득할 수 없다. 민주주의의 길은 닫힌 사무소가 아니라 열린 경쟁에서 시작된다.
▷법학박사, 선진사회정책연구원 원장
▷한국정책연구원 원장
▷(사)한국공공정책학회 부회장, 상임이사
▷(전)국민대학교 행정대학원 외래교수
▷(전)서울특별시의회 전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