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공공정책신문=김유리 기자] 미국과 이란이 2026년 4월 7일, 파키스탄의 중재 아래 2주간의 조건부 휴전에 합의하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같은 날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완전하고 즉각적이며 안전하게” 개방하는 것을 전제로 대이란 폭격을 2주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전면전으로 치닫던 충돌이 일단 멈춰 선 것은 분명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 합의는 평화의 도착점이 아니라, 더 큰 충돌을 앞두고 잠시 숨을 고르는 정거장에 가깝다. 휴전의 기간이 짧고, 당사자 간 해석도 엇갈리며, 후속 협상의 내용 역시 여전히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원유 해상 물동량의 약 20%가 지나가는 전략적 병목지점이다. 이 수로가 흔들리면 국제 유가만 오르는 것이 아니다. 보험료, 운임, 선박 대기비용, 정유 원가, 석유화학 기초원료 가격이 연쇄적으로 상승한다. 실제로 이번 사태는 국제 에너지 시장과 해운시장에 즉각적인 충격을 주었고, 휴전 발표 이후에도 각국이 여전히 상황을 비상 국면으로 관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은 이번 충격에서 결코 비켜 서 있지 않았다.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한국은 원유의 약 70%를 중동에서 들여오고 있으며, 호르무즈 항로에 대한 의존도도 매우 높다. 특히 정부는 호르무즈 경유 비중이 원유 61%, 납사 54% 수준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미 한국 정부는 카자흐스탄·오만·사우디아라비아 등과의 공급선 협의에 나섰고, 26척의 한국 선적 선박 안전 확보와 대체 원유 도입을 병행하고 있다. 이는 이번 사태가 단순한 해외 뉴스가 아니라 한국 산업의 비용 구조와 공급망, 나아가 민생 물가를 흔드는 직접 변수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안도감이 아니라 냉정한 구조 점검이다. 2주 휴전은 위기가 끝났다는 신호가 아니라, 다음 충격에 대비할 수 있는 매우 짧은 준비 시간이다. 휴전이 연장되지 않거나, 부분 봉쇄와 우발적 충돌이 재개되면 유가와 환율, 해상 운임은 다시 급등할 수 있다. 정부와 시장 모두 “최악은 피했다”는 심리적 안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에너지 안보, 산업 구조, 외교 전략을 한꺼번에 재설계해야 할 시점이다.
단기적으로는 세 가지가 시급하다.
첫째, 한국 선박과 선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확보해야 한다. 외교 채널, 해운 채널, 보험 채널을 총동원해 통항 안정성을 높이고, 우회 항로와 입항 지연에 따른 물류 차질을 최소화해야 한다.
둘째, 에너지 수급 안정 조치를 더욱 정교하게 가동해야 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미 대체 공급선 확보와 비축 물량 점검에 나서고 있는데, 이를 일회성 대응이 아니라 시나리오별 비상계획으로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셋째, 금융·실물시장에 대한 예측 가능한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 유가와 환율의 급변은 실제 수급 못지않게 심리를 통해 경제를 흔들기 때문이다. 정부는 불확실성을 축소하지 말고, 준비된 대응책을 투명하게 설명해야 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중장기 개혁이다. 이번 위기는 한국 경제가 여전히 “중동·호르무즈 의존형 에너지 구조” 위에 서 있음을 다시 드러냈다. 수입선 다변화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 되어야 한다. 미국, 캐나다, 호주,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등 비중동 공급처를 확대하고, 단기 가격이 아니라 지정학적 리스크를 반영한 조달 포트폴리오를 설계해야 한다. 여기에 저장시설, 비축체계, 장기운송계약, 정유·석화 업계의 원료 전환 대응까지 함께 묶어야 비로소 실질적 안보가 된다.
에너지 믹스의 재점검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한국의 원전 확대 계획이 야심 있는 재생에너지 프로그램과 결합되어야 하며, 수소·대규모 배터리 저장장치·전기화 전략까지 함께 검토되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핵심은 어느 한 전원을 이념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위기 대응력과 지속가능성을 함께 갖춘 현실적 조합을 만드는 일이다. 원전, LNG, 재생에너지, 저장기술, 수요관리, 산업 효율 혁신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야만 외부 충격을 흡수할 수 있다. 에너지 안보는 결국 발전원 구성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생존력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산업 구조의 체질 개선도 함께 가야 한다. 에너지 다소비형 제조구조를 그대로 둔 채 공급선만 바꾸는 방식으로는 위기를 근본적으로 줄일 수 없다. 납사와 석유화학 원료에 대한 높은 의존, 에너지 가격 상승이 전 산업으로 전이되는 구조, 수출 제조업의 원가 민감성은 한국 경제의 오래된 약점이다. 탄소중립, 디지털 전환, 공정 혁신을 따로 볼 것이 아니라 “에너지를 덜 쓰면서 더 높은 부가가치를 만드는 산업 전환”으로 묶어야 한다. 이번 호르무즈 사태는 단지 중동의 불안이 아니라, 한국 산업정책 전반에 던져진 구조조정의 경고장이다.
외교 역시 수동적 관망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번 휴전은 파키스탄이 중재에 나서면서 겨우 성사되었다. 이는 중견국 외교가 실제 위기 완화에 기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도 에너지 수입국이자 해운 이해당사국으로서 호르무즈 해협의 항행 자유, 민간 선박 보호, 비군사적 안전보장 체계, 비상연료 협력과 같은 의제를 더 적극적으로 제안할 필요가 있다. 위기 때마다 남이 만든 판을 따라가는 나라가 아니라, 우리의 생존과 직결된 질서 형성에 참여하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경제안보 시대의 외교이며, 진정한 국익 외교이다.
이번 2주 휴전은 분명 반가운 소식이다. 그러나 한국이 받아들여야 할 메시지는 더 분명하다. 호르무즈가 다시 흔들리면 한국 경제도 다시 흔들린다는 사실이다. 이제는 사태가 터질 때마다 비상회의를 반복하는 수준을 넘어, 에너지·산업·외교·안보를 하나의 전략으로 통합하는 국가적 전환이 필요하다. 위기가 잠시 멈춘 바로 이 순간이, 한국이 가장 진지하게 미래를 준비해야 할 시간이다.
▷법학박사, 선진사회정책연구원 원장
▷한국정책연구원 원장
▷(사)한국공공정책학회 부회장, 상임이사
▷(전)국민대학교 행정대학원 외래교수
▷(전)서울특별시의회 전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