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세기 흑사병, 세계를 뒤흔든 재앙의 기록
인류의 역사는 늘 질병과 재앙의 그림자를 동반해 왔습니다. 2020년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요구했지만, 이는 첫 번째도 마지막도 아니었습니다. 14세기, 유럽을 넘어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흑사병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한 교훈을 던져줍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역사학자 토마스 애스브릿지의 신간 『흑사병: 인류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팬데믹의 세계사(The Black Death: A Global History of Humanity's Most Devastating Pandemic)』는 이 질문에 답할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비극을 통해 현재를 비추는 거울 같은 이 작업은 우리로 하여금 역사적 사건들을 깊이 되돌아보게 만듭니다.
흑사병은 1346년에서 1353년 사이, 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 등 대륙을 가로지르는 전 세계적 전염병이었습니다. 당시 약 1억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사망했으며 이는 인구의 절반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자연재해'로 불릴 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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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스브릿지는 흑사병을 단순히 유럽의 사건으로 한정짓지 않고, 중동과 북아프리카, 심지어 가나, 나이지리아, 부르키나파소 등 아프리카 대륙 깊숙이까지 파고들었던 전 지구적 재앙으로 강조합니다. 시칠리아에서 번지기 시작한 이 세균성 질병은 이집트, 마르세유, 시리아를 거쳐 스페인, 스웨덴, 러시아까지 퍼져나갔습니다. 당시 세계 곳곳에 자리 잡은 인간사회는 그 어느 곳도 이 병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만약 오늘날 비슷한 치명률을 가진 병원체가 전 세계적으로 발생한다면 수십억 명이 사망할 수도 있다는 것이 애스브릿지의 경고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흑사병이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코로나19 팬데믹과의 유사성에서 그 첫 번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14세기에 사람들이 보였던 행동양상은 21세기의 우리와 놀랍도록 닮아있습니다. 베네치아의 술집 폐쇄와 와인 판매 금지 조치, 글로스터의 도시 봉쇄 시도, 런던에서의 장갑 판매 급증 등은 코로나19 당시 우리의 봉쇄 조치나 마스크 착용 캠페인을 떠올리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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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당시에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도하며 확산을 막으려 했지만, 실패로 끝났습니다. 이는 강력한 의료 개입과 과학적 연구의 중요성을 되새기게 합니다.
또한 애스브릿지는 개인 보호 장비와 도시 봉쇄 등의 흔적이 현대의 방역 정책과 얼마나 유사한지를 꼼꼼히 짚어내며, 역사적 재앙들의 풍성한 사례를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을 구체적으로 제시합니다. 애스브릿지는 이 책에서 개인들의 '미시 역사(micro-histories)'에 초점을 맞춰 공포와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방식으로 흑사병에 맞섰던 사람들의 삶을 재구성합니다.
이러한 접근법은 단순히 통계와 숫자로만 재앙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경험과 감정을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역사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개인이 겪었던 고통과 선택, 그리고 희망을 들여다보는 것은 과거를 단순한 사건의 나열이 아닌 인간의 이야기로 만들어줍니다.
역사 속 대재앙이 오늘날에 남긴 경고
두 번째 교훈은 대규모 팬데믹이 사회경제 구조에 미치는 장기적 영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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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사병은 1353년 이후에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풍토병으로 남아 19세기까지 계속 발생했습니다. 이 장기적인 영향은 단순히 대규모 생명을 앗아갔을 뿐만 아니라, 노동력 부족으로 인한 농노제의 종식이라는 사회구조적 전환점을 가져왔습니다. 인구가 급감하면서 노동력의 가치가 높아졌고, 사회 구성은 이를 계기로 변화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역시 유사한 영향을 초래했습니다. 재택근무의 확산, 디지털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 노동 시장의 재편 등 팬데믹은 경제 구조 전반에 걸쳐 거대한 변화를 불러왔습니다. 이러한 거시적 전망은 과거와 현재의 흐름이 맞닿아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팬데믹은 경제와 노동 문제뿐만 아니라 인간의 감정과 선입견, 편견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애스브릿지는 흑사병 시기 유대인 집단에 대한 박해와 학살을 예로 들며, 공포와 혐오가 어떻게 역사를 통해 반복되어 왔는지를 주목합니다. 전염병이 지구상에 퍼질 때 증가하는 혐오 정서와 특정 집단에 대한 억압이 어떻게 형성되고 전파되었는지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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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반유대주의 바이러스는 흑사병처럼 사라지지 않고 지금까지도 여전히 사회 곳곳에 남아있다는 그의 지적은 날카롭습니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도 결코 사라지지 않은 문제입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일부 지역에서 발생한 인종차별적 사건들은 이를 분명히 상기시킵니다.
역사가 이런 혐오의 반복을 막기 위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애스브릿지는 역사를 제대로 배우고 이를 거울삼아 행동하지 않으면, 우리는 같은 실수를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합니다.
물론 "과거와 현재는 다르다"는 반론도 존재합니다. 흑사병 당시에는 현대 의학이나 백신, 그리고 글로벌 협력 체계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현대의 과학 기술은 분명히 신속한 백신 개발과 효과적인 치료법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애스브릿지가 보여주듯이, 팬데믹이 단순히 질병 치료에만 그치지 않고 사회 전반의 구조적, 문화적 문제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우리는 여전히 비슷한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결국, 과거를 연구하는 일은 단순히 차이점을 비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연약함을 인정하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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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과거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이 책은 '엄청나고 진정으로 무서운 책'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동시에 '글로벌 위기 속에서 인류의 연민과 회복력을 강조'하는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애스브릿지는 공포와 절망만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는 역사적 재앙 속에서도 드러난 인간의 선함과 회복 능력에 주목하며,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다음 위기를 준비하는 데 필요한 희망의 근거라고 말합니다. 결국 흑사병은 단순히 과거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며, 현재와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중요한 반면교사가 됩니다. 이 치명적 재앙은 우리에게 인간 사회가 가진 장점과 한계를 모두 보여주었고, 이를 통해 어떻게 더 지속 가능한 세계를 만들어나갈 것인지 생각하게 만듭니다.
과거의 혼란 속에서 드러난 인간의 연민과 회복력은 우리에게 '희망'이라는 이름의 작은 빛을 비춥니다. 현대 과학 기술과 역사의 교훈을 결합할 수 있다면, 우리는 또 다른 대재앙을 마주했을 때 더 현명하게 대응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애스브릿지의 책은 바로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한 귀중한 출발점을 제공합니다.
윤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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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theguardia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