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옴의 '더 라인', 축소된 꿈인가?
2017년, 세계는 사우디아라비아가 발표한 '네옴(NEOM)' 프로젝트에 주목했습니다. '더 라인(The Line)'이라 불리는 170km 길이의 거울처럼 반짝이는 선형 도시, 최대 900만 명이 거주할 공간, 탄소 배출 제로를 목표로 한 친환경 건축물 등 이 프로젝트는 당시 많은 이들에게 기술적 상상을 넘어서는 듯한 미래의 도시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2023년 이후, 많은 이들이 네옴 프로젝트의 방향 전환에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프로젝트의 일부인 '더 라인'은 이제 초기 계획 대비 크게 축소되고, 그 관심은 '미래 도시'라는 개념에서 벗어나 '기술 인프라 허브'로 옮아가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네옴 프로젝트가 직면한 도전은 단순히 물리적 규모의 축소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초기 구상 당시, '더 라인'은 약 170km에 걸쳐 미래 도시를 이루겠다는 대규모 비전을 내세웠습니다.
하지만 최근 진행 상황을 보면 단 2.4km의 기초 공사만 완료된 상태입니다. 인구 목표 역시 초반의 150만 명에서 2030년까지 약 30만 명 미만으로 하향 조정되며 대규모 인구 유치를 위한 기반 시설 구축마저 현실적인 제약을 논의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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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프로젝트의 상업적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에게 더욱 힘을 실어주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초기의 야심찬 계획이 현실적인 장벽에 부딪히면서, 사우디 정부는 프로젝트의 우선순위와 방향성을 재조정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우디 정부는 네옴을 단순히 실패로 규정하기보다는, 이를 재편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과정으로 평가하려고 합니다.
특히 2026년 2월 네옴의 옥사곤(Oxagon) 산업 단지에 50억 달러(한화 약 6조 7,000억 원) 규모의 AI 데이터 센터를 구축하기로 한 결정은 이러한 전략적 전환의 일환으로 파악됩니다. 데이터볼트(DataVolt)와의 파트너십으로 구상 중인 이 AI 데이터 센터는 단순한 '건물'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데이터 센터는 AI 연구 및 개발의 허브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기술 인재 유치와 글로벌 AI 경쟁에서도 사우디아라비아의 입지를 강화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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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단기적인 수익 창출의 필요성과 장기적으로 기술 리더십을 구축하려는 사우디 정부의 전략이 맞물린 결과로 보입니다. AI 데이터 센터는 즉각적인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어, 장기적 투자 회수가 불확실한 미래 도시 건설과는 달리 상업적 타당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사우디의 선택, 데이터 센터와 AI로 향하다
이와 함께, 새로운 청정 에너지 프로젝트도 구체화되고 있습니다. 옥사곤은 2026년부터 대규모 태양광 및 풍력 발전 시설 건설을 시작할 예정이며, 이를 통해 '수천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네옴의 첫 대규모 산업 고용을 실현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네옴의 녹색 에너지 인프라 확장 계획의 일부로, 재생 가능한 에너지 생산 능력을 연간 기가와트 규모로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제조 시설은 네옴의 산업 의제를 기존의 녹색 수소 프로젝트를 넘어 청정 에너지 생산 전반으로 확장하는 전략적 움직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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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네옴은 약 26.6억 달러에 달하는 100억 사우디 리얄 규모의 회전 신용 시설(RCF)을 확보하면서 자금 조달원 다변화에도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기술적 실현 가능성과 동시에 프로젝트의 상업적 가치를 강화하려는 모습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회전 신용 시설은 필요에 따라 자금을 인출하고 상환할 수 있는 유연한 금융 수단으로, 네옴의 다양한 프로젝트에 신속하게 자금을 투입할 수 있는 여력을 제공합니다.
그렇다면 사우디아라비아의 이러한 전환은 단순히 초기 이상(理想)이 현실화되지 못한 결과로 봐야 할까요? 이러한 비판은 한편으로 타당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단편적일 수 있습니다. 거대한 사회-경제적 변화를 목표로 하는 메가 프로젝트는 분명 처음 계획과는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초기의 이상적인 계획이 과도한 낙관론이나 기술적 상상에 근거했다고 하더라도, 이를 기술 허브로 방향을 전환한 것은 오히려 현실적이고 지속 가능한 선택으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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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단기적인 상업적 성공을 담보하기 어려운 미래 도시 비전이 아닌, 당장 투자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기술 인프라 개발로 주목을 돌린 것은 다가오는 탈석유 시대를 준비하려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전략적 사고를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특히 글로벌 AI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사우디아라비아가 막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AI 인프라 허브로 자리매김하려는 시도는 단순한 방향 전환을 넘어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는 전략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미래도시에서 기술 허브로, 네옴의 새로운 길
물론, 이러한 변화를 두고 "이전의 야심찬 비전이 희석되었다"는 반론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역으로 본다면 초기의 이상은 단지 "계획"일 뿐이었다는 점을 간과할 수는 없습니다. 네옴 프로젝트가 축소되었더라도 이는 중단이 아닌 "진화"로 봐야 할 것입니다.
더욱이 AI라는 미래 기술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것은 단순히 자국 내 도시 발전만이 아니라 글로벌 기술 경쟁에서 자리를 확보하겠다는 의도로 이해해야 할 부분입니다. 50억 달러 규모의 AI 데이터 센터 투자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석유 의존 경제에서 벗어나 기술 기반 경제로 전환하려는 비전 2030의 핵심 전략과도 일맥상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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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네옴을 바라보는 질문은 조금 달라져야 할 것입니다. 과연 이 프로젝트는 초기의 뜬구름 잡는 구상에서 벗어나 지속 가능한 성장 모델을 구축할 수 있을까요?
또한, 한국과 같은 기술 선진국은 이러한 전환점에서 어떤 협력 기회를 찾을 수 있을까요? 사우디아라비아의 네옴이 보여주는 전략적 전환은 단순히 한 국가의 미래 도시 비전의 변화를 넘어, 국제 사회에서 기술과 자원의 미래를 논의하는 중요한 실험장이 되고 있습니다. 특히 AI, 청정 에너지, 데이터 센터 인프라 등의 분야에서 글로벌 파트너십을 모색하는 네옴의 움직임은 기술 협력을 원하는 국가들에게 새로운 기회의 창을 열어주고 있습니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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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vertexaisearch.cloud.googl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