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구글검색
선거철이 다가옴을 느끼는 행사 중 하나가 북콘서트가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Book’과 ‘Concert’가 합쳐진 ‘Book Concert’는 한국식 표현이지 영어가 아니다. ‘출판기념회’나 ‘작가와의 만남’이 우리말에 더 적절하다.
영어로는 ‘Book Talk’나 ‘Book Event’가 더 적절한 단어이다. 책을 사도록 홍보하는 활동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는 단어이다. 하지만 영어를 사랑하는 사대주의자는 우리말이 존재하는데도, 맞지 않는 영어로 자신의 책을 홍보한다.
마키아벨리는 자신의 공적 지위를 얻기 위해 ‘군주론’이라는 책을 썼다. 피렌체 공국에서 18년간 복무했다. 그러나 1512년 메디치 가문과 그 동맹은 피렌체 공국을 멸망시키고 자신의 권력을 되찾았다. 이때 마키아벨리도 지위를 잃고 시골로 물러났다. 아무도 찾지 않는 시기, 자신을 고용해달라고 쓴 책이 ‘군주론’이다.
‘군주’에 관해 논했다는 제목부터, 이 책은 군주를 위한 책이다. 어떻게 하면 군주들이 오랫동안 문제없이 통치할 수 있는지가 주 내용이다.
메디치 가문에 바치는 헌사에서 자신은 고전학을 깊이 공부했고 이를 바탕으로 책을 썼다는 구절이 나온다. 그래서인지 군주론에는 군주와 관련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여러 역사적 사건이 예로 나온다. 주로 유럽의 역사이기에 동양인인 한국인이 공부하려면 다시 유럽과 그에 관련된 나라의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책이다.
독재를 찬양했다는 오해를 살 만한 구절이 나오기는 하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읽어도 도움이 될 책이다. 그래서 고전이라 불릴 것이다.
마키아벨리가 살던 시절 이탈리아는 아마 혼란스러웠을 것 같다. 이탈리아는 주권을 가진 여러 나라로 갈라져 있었고, 교황령이라 불리는 영지가 있었고, 게다가 프랑스의 영향도 강했다. 그리고 프랑스의 잘못된 판단으로 스페인까지 나폴리에 영향력을 미치게 되었다. 강한 패권을 가진 하나의 나라가 아닌, 여러 패권을 가진 나라들 사이에서 권력 투쟁이 이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마키아벨리는 하나의 군주가 안정된 정권을 가지길 원했던 게 아닌지 생각이 든다. 그런 바램이 독재를 옹호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그가 긍정적으로 평가했던 인물 중 ‘체사레 보르자’라는 인물이 있다. 교황 알렉산데르 6세의 아들로, 평이 상당히 엇갈리는 인물이다. 교황권을 강화하고 자기 집안이 권력을 가지길 원했던 알렉산데르 6세는 야심 만만한 인물로 묘사된다. 권력을 가지는 과정에서 영리한 면도 보이지만, 추문도 따라다니며 여러 이야기를 낳았다. 그래서 유럽과 미국 모두에서 보르지아 가문을 다룬 드라마 연속물이 한 편씩 나올 정도였다.
‘군주론’을 읽을지도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내용은 자세히 다루지 않겠다. 다만 불안정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책인 것은 분명하다. 우리가 한 나라의 군주는 될 일이 없지만, 내 인생에서 주인이 되도록 살 수는 있다. 그런 의미에서 주변의 다양한 유형의 사람을 각각 어떻게 대해야 할지 생각할 수 있는 책이다.
또, 다양한 역사적 사건에 대한 마키아벨리의 통찰력도 흥미롭다. 완전히 동의할 수 없지만, 각 인물과 사건을 통해 군주가 취해야 할 행동을 설명할 것은 많은 부분 납득이 간다. 내 주변에 나를 배신하거나 아부하는 인간이 있다면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안내한다.
이런 깊이 있는 논문 덕분인지 마키아벨리는 다시 고용되었고 일할 수 있었다. 한국은 군주정이 아닌 민주 공화국이다. 그래서 유권자에게 후보자는 호소해야 한다. 그 방법의 하나가 책을 쓰고 유권자가 읽도록 해야 한다. 책 속의 내용을 통해 자기 능력을 인정받을 기회를 얻어야 한다.
그래서 책은 개인적 내용이나, 작가를 고용해서 써서는 안 된다. 자기 전문 분야에서, 이론과 경험을 바탕으로 통찰력 있는 책을 써야 할 것이다. 가능하다면 ‘군주론’처럼 500년이 지나도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나 논문을 써야 할 것이다.
한국인이 많이 쓰는 영어 단어 ‘essay’는 한 가지 주제에 다룬 글이다. 보통 학생들이나 전문가들이 논문까지는 아니지만, 한 주제에 대해 깊이 다룬 글이다. 신변잡기의 글을 에세이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책에 ‘essay’라는 주제를 붙이고 싶으면 그만큼의 연구 결과물이 있어야 한다. 연구 결과물까지는 아니라도 최소한 그 주제에 대해 많은 이가 공감할만한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