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AI가 그렇게 판단했습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대출을 신청한다. 소득도 있고, 연체 이력도 없다. 기준을 넘겼다고 생각했지만 결과는 거절이다. 이유를 묻자 돌아온 답은 단 하나다. “AI가 그렇게 판단했습니다.” 설명은 없다. 이 문장은 더 이상 근거가 아니라 종결이다. 질문은 멈추고, 판단만 남는다.
우리는 이 변화를 비교적 쉽게 받아들였다. AI는 빠르고, 많은 데이터를 처리하며,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사람보다 공정할 것이라는 기대도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실제로 일부 영역에서는 인간의 편견을 줄였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그 믿음에는 빠진 전제가 하나 있다. AI는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과거의 데이터를 학습하고, 그 안에서 패턴을 찾아낼 뿐이다.
문제는 그 데이터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사회는 이미 불균형과 편향을 안고 있고, 그 흔적은 데이터 속에 그대로 남아 있다. AI는 새로운 기준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질서를 더 정교하게 반복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결과를 ‘객관적’이라고 받아들인다. 이 지점에서 알고리즘은 단순한 도구를 넘어 하나의 권력이 된다.
더 큰 문제는 설명의 부재다. 많은 AI 시스템은 결과만 제시하고, 과정은 드러내지 않는다. 왜 그런 판단이 내려졌는지 알 수 없고,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지도 모호하다. 판단은 존재하지만 이유는 없다. 설명을 요구할 수 없는 순간, 개인은 자신의 권리를 방어할 수 있는 근거를 잃는다. 권리는 남아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작동하지 않는다.
이 변화는 인간을 바라보는 방식까지 바꾸고 있다. 우리는 더 이상 행위로 평가되지 않는다. 대신 ‘위험할 가능성’, ‘실패할 가능성’, ‘가치가 낮을 가능성’으로 분류된다. 인간은 점점 하나의 확률로 환원된다. 그러나 인간은 원래 예측을 벗어나는 존재다. 선택을 통해 달라지고, 경험을 통해 변한다. 그 가능성을 배제한 판단이 과연 공정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여기에 감시가 결합된다. 우리는 누군가 보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순간 스스로를 조정하기 시작한다. 말을 아끼고, 표현을 낮추며, 참여를 주저한다. 자유는 반드시 강제로 빼앗겨야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설명되지 않는 판단은 그렇게 조용히 우리의 행동을 바꾼다.
AI는 멈출 수 없다. 그리고 멈출 필요도 없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있다. 설명 없는 판단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이미 질문할 권리를 내려놓은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빠른 결론이 아니다. 납득할 수 있는 이유다. 기술이 판단을 대신하는 시대일수록, 그 판단은 설명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을 요구하는 일은 번거롭지만, 포기하는 순간 되돌리기 어려워진다.
우리는 더 이상 묻지 않을 것인가. 아니면 끝까지 이유를 요구할 것인가. 그 선택이 앞으로의 사회를 결정한다.
■ 칼럼니스트 소개

김범일 칼럼니스트는 피플소사이어티 인터넷신문 발행인으로, 인권·청렴·폭력예방 등 사회적 가치를 주제로 활동하고 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사회를 지향하며, 이를 위한 사람안전망 구축에 힘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