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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헌식 칼럼] 『난중일기』에 나타난 판옥선 복원력의 문제점

윤헌식

임진왜란 시기 조선 수군의 주력으로 활약한 선박은 판옥선이다. 최근 TV나 영화 등에서 판옥선이 자주 소개되면서 이에 대한 관심도가 과거에 비해 상당히 높아졌다. 이러한 때문인지 인터넷에서 '판옥선'만 검색해도 이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손쉽게 접할 수 있다.

 

판옥선은 16세기 조선의 남해안 일대에 출몰하던 왜구의 침략을 막기 위해 고안된 전투선이다. 삼포왜란(1510년), 사량왜변(1544년), 을묘왜변(1555년) 등이 발생하면서 기존의 주력 전투선인 맹선(猛船)이 전투력의 한계를 드러내자, 조선 조정은 고려 때의 함선을 참고하여 새로 건조한 전투선이 바로 판옥선이다.

 

​판옥선의 구조를 학술적으로 분석한 초기 연구 자료로는 고 김재근 교수가 저술한 『한국선박사연구』와 『속한국선박사연구』가 독보적이다. '독보적'이란 표현은 이 분야 학계에서 내려진 평가로서, 비전문가가 보더라도 이 책의 수준은 감탄스러울 정도로 뛰어나다.

 

최근 김재근 교수의 저술을 이을 수 있는 판옥선 연구 자료가 나와 눈길을 끈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2021년 『판옥선 학술 복원 보고서』라는 책을 출간하였는데, 이 책은 많은 사료를 검토하여 판옥선의 구조, 치수, 중량 등을 과학적(조선공학적)인 방식으로 복원하였다. 오랫동안 누적된 사료 연구와 과학적인 연구 방식이 결합하여 탄생한 놀라운 학술 서적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국립해양유산연구소로 이름을 바꾸었는데, 이곳 홈페이지에서 누구나 손쉽게 이 책을 다운로드할 수 있으니 관심 있는 분은 참고하시길 바란다. 

『판옥선 학술 복원 보고서』 표지 - 자료출처: 국립해양유산연구소(전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이미 훌륭한 연구 서적들이 출간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박에 대해 문외한인 필자가 겁도 없이 '판옥선 복원력'을 글의 주제로 삼은 이유가 있다. 『판옥선 학술 복원 보고서』가 판옥선 복원력과 관련하여 참조한 사료 중 하나가 문제점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언급하기에 앞서 우선 선박의 복원력(또는 복원성)이 무엇인지를 간략히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선박의 복원력은 '배가 기울어졌을 때 다시 원래대로(똑바로) 돌아가려는 성질'을 말한다. 이는 대단히 중요한 선박의 요건이다. 왜냐하면 복원력이 떨어지는 배는 기울어졌을 경우 원래대로 돌아가지 못하고 전복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판옥선 학술 복원 보고서』가 판옥선 복원력과 관련하여 참조한 사료 가운데 문제점이 있는 사료는 충무공 이순신의 장계 「토적장」이다. 다음은 「토적장」의 해당 기록이다.

 

​「토적장(討賊狀)」(1593년 4월 6일 작성)

 

(1593년 2월 22일) 좌도(전라좌도)의 발포 통선장이자 그 포구(발포)의 군관인 이응개와 우도(전라우도)의 가리포 통선장인 이경집 등이 승리한 기세를 타고 서로 다투어 돌진하여 적선을 깨뜨렸지만, 되돌아 나올 무렵 두 배가 서로 부딪쳐 방패가 흩어지고 떨어져서 사람들이 적의 철환을 피하려고 한쪽으로 몰리자 그만 뒤집어졌는데,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은 서서히 헤엄쳐서 육지로 올라가고 또는 자기 집으로 도망쳐간 자도 있으므로 ...

 

「토적장」은 1593년 2월 10일 ~ 3월 6일 벌어진 웅포해전의 경과를 보고한 장계이다. 위 「토적장」의 기록을 살펴보면, 판옥선에 타고 있던 승무원들이 한쪽으로 몰린 이유로 배가 전복된 것처럼 서술되어 있다. 이 기록만 본다면 판옥선의 복원력이 매우 약한 것으로 생각될 수 있다. 『판옥선 학술 복원 보고서』(38쪽, 40쪽, 52쪽)는 이 기록을 근거로 하여 판옥선의 복원력에 결점이 있을 수 있다는 가정을 상정한 다음 판옥선 연구를 진행하였다.

 

​하지만 충무공 이순신의 『난중일기』에는 「토적장」의 판옥선 전복 기록과 다른 내용이 실려 있으므로 과연 「토적장」의 해당 기록이 신빙성이 있는지 의문이 생긴다. 다음은 『난중일기』의 해당 기록이다.

 

『난중일기』, 1593년 2월 22일

 

그러나 발포 2호선과 가리포 2호선이 명령도 안 했는데 돌진해 들어가다가 얕은 곳에 걸려서 적이 배 위로 오르게 되었다. 그 때문에 매우 통분하여 간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얼마 있다가 진도 상선(지휘선)이 적에게 둘러싸여 거의 구할 수 없게 되자 우후가 바로 들어가 구해냈다.

 

[원문] 而鉢浦二船 加里浦二船 不令突入 觸掛淺陝 爲賊所乘. 其爲痛憤痛憤 膽如裂裂. 有頃 珍島上船 爲賊所擁 幾不能救 而虞候直入救出.

 

위 『난중일기』 기록은 「토적장」의 기록과 달리 발포 판옥선과 가리포 판옥선이 전복되었다고 서술하지 않았다. 대신 일본군이 배 위로 올랐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일기에 더 이상의 자세한 언급은 없지만 조선 수군의 배 2척이 적지 않은 피해를 당한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난중일기』에 기록된 조선 수군의 피해는 일본 측 사료인 『와키사카기(脇坂記)』에도 기록되어 있다. 『와키사카기』는 한산도대첩 시기 일본군의 패배를 상세히 서술한 이유로 우리나라에도 널리 알려진 자료이다. 『와키사카기』에 따르면, 왜장 와키사카 야스하루(脇坂安治)와 구키 요시타카(九鬼嘉隆)의 부대는 1593년 2월 21일 웅천항 안쪽으로 들어오는 조선 수군의 배에 밧줄을 걸어 올라타고 각각 한 척씩을 탈취했다고 기록하였다. 『난중일기』의 기록과 단 하루의 날짜 차이만 있고, 지명 웅천이 등장하는 점으로 보아 웅포해전 시기에 벌어진 사건을 서술한 것이 틀림없다.

 

충무공은 조정에 「토적장」을 올릴 때 「통선일소경복후대죄장(統船一艘傾覆後待罪狀)」을 함께 올려, 배가 전복된 죄를 조정에 스스로 고하였다. 이러한 사실을 고려하면, 충무공은 휘하 장수와 병사들의 사기 및 책임 문제 등을 생각하여 판옥선이 전복된 것으로 보고하는 고육책을 선택한 듯하다. 

 

​『판옥선 학술 복원 보고서』(130~134쪽)는 판옥선의 중량, 승선 인원의 무게 중심, 복원력 등을 검토한 다음 판옥선의 복원 성능이 현대 선박에 적용되는 국토해양부 고시 복원성 기준을 만족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즉, 판옥선이 현대 선박의 복원력 기준에도 만족하는 뛰어난 복원력을 가진 선박임이 조선공학적으로 입증된 것이다.

 

위 『난중일기』의 기록과 『판옥선 학술 복원 보고서』의 연구 내용을 통해 「토적장」의 판옥선 전복 기록이 사실과 다르다는 점이 입증된다.

 

[참고자료]

김재근, 『한국선박사연구』, 1984, 서울대학교출판부

김재근, 『속한국선박사연구』, 1994, 서울대학교출판부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판옥선 학술 복원 보고서』, 2022,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조성도 역, 『임진장초』, 2010, 연경문화사

김시덕 역, 『와키사카기』, 『문헌과 해석』 제62호, 2013, 태학사

 

 

[윤헌식]

칼럼니스트

이순신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저서 : 역사 자료로 보는 난중일기

이메일 : thehand8@hanmail.net

 

작성 2025.10.24 10:46 수정 2025.10.24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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