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영국에서 “영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과학자는 누구인가?”라는 설문조사를 한적이 있었다. 영국에는 저명한 과학자들이 정말 많다. 증기기관을 만든 제임스 와트(James Watt), “줄의 법칙”을 만든 제임스 프레스코투 줄(James Prescott Joule), 산소를 처음 발견한 조지프 프리스틀리(Joseph Priestley), 만유인력을 발견한 아이작 뉴턴(Isaac Newton) 등등은 모두 세계적인 과학자들이다. 그런데 그 설문조사에서 이 모든 저명한 과학자들을 물리치고 당당히 1위에 오른 사람은 세계인들에게 그리 알려지지 않은 물리학자이자 화학자였던 마이클 패러데이(Michael Faraday)였다. 실제로 우리 한국인들 중 페러데이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패러데이는 인류역사상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한 단 두 명의 과학자 중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패러데이는 아주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어렸을 떄는 별 볼일 없이 그냥 농사나 짓고 평범하게 살았다. 페러데이는 나이가 들자 인쇄소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페러데이는 인쇄소에서 일하면서 글과 아주 기초적인 화학의 원리를 배웠다. 인쇄를 하기 위해서는 글과 화학의 기초 정도는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패러데이는 인쇄소 주인이 스스로 알아서 주급을 올려줄 정도로 주어진 일을 정말 열심히 잘했다고 한다. 그런 패러데이가 과학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안 인쇄소 주인은 당시 유행하던 왕립연구소의 크리스마스 순회강연회 티켓을 어렵사리 구해서 패러데이에게 선물로 준 적이 있었는데 그 티켓이 패러데이의 운명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그날의 순회강연은 당대 최고의 화학자였던 험프리 데이비(Humphry Davy) 박사가 진행하는 강연이었다. 패러데이는 데이비 박사의 강연에 깊은 감명을 받아 화학 공부에 대한 열망이 강해졌다.
패러데이는 그날 자신이 듣고 배운 강연의 내용을 깔끔하게 정리한 노트와 함께 자기를 조수로 써달라는 편지를 왕립연구소에 보냈다. 그러나 왕립연구소는 아무런 답이 없었다. 패러데이는 낙담하지 않고 이번에는 똑같은 내용을 다시 정리해서 ”제발 잡역부로라도 써 주세요“라는 애원을 담아 데이비 박사에게 직접 보냈다. 이 정도의 열정이 있으면 일을 시켜볼만 하다고 판단한 데이비 박사가 그를 잡역부 조수로 받아주었다.
데이비 박사의 조수가 된 페러데이는 스승인 데이비 박사의 연구를 돕던 어느 날 스승과 같은 연구를 하면 영원히 스승님의 조수밖에 될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께닫고 스승의 전문분야인 화학과는 다른 전자기학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패러데이는 워낙 연구심이 강했기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전자기학 분야에서 한두 가지씩 연구성과를 내기 시작하면서 그의 이름은 조금씩 알려지게 되었다.
그렇게 연구를 계속한 결과 페러데이는 독일의 물리학자 헤르만 루트비히 페르디난트 폰 헬름홀츠(Hermann Ludwig Ferdinand von Helmholtz)가 발견한 “에너지 보존법칙(Law of energy conservation)”을 응용하여 1831년에 어떤 닫힌 회로를 통과하는 자기 선속(Magnetic flux)의 변화량은 곧 회로의 유도 기전력(誘導 起電力)을 발생시킨다는 전자기유도법칙(電磁氣誘法則, Electromagnetic induction law)을 발견하게 되었다. 페러데이는 그 전자기유도법칙(電磁氣誘導法則)의 발견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연이어 여러 굵직한 논문들을 발표하며 영국 최고의 과학자라는 평을 듣게 되었다. 그리하여 스승인 데이비 박사를 능가하는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런 명성에 힘입어 패러데이가 영국의 권위있는 왕립학회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그의 입회를 반대하고 나선 사람은 다름 아닌 그의 스승인 데이비 박사였다. 데이비 박사는 패러데이가 너무 잘 나가자 속도조절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페러데이는 스승에게 한마디도 항변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발견은 스승님의 도움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며 스승님을 두둔했다.
스승이었던 데이비 박사가 패러데이는 아직 왕립학회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고 하며 입회를 반대하고 나서자 왕립학회는 패러데이의 연구실적이 탁월한데 무엇 때문에 반대하느냐며 데이비 박사를 비난하고 나섰다. 데이비 박사는 하는 수 없이 자신의 반대를 철회함으로써 제자 패러데이는 왕립학회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패러데이는 당장 자신이 왕립학회에 들어가면 스승의 얼굴에 먹칠을 하게 된다며 계속 거부하다 데이비 박사가 직접 왕립학회에 들어가라고 허락한 후에야 들어가게 되었다.
이런 스승에 대한 존경심은 정말 고금을 통털어서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여러가지 위대한 발견을 했던 스승 데이비 박사는 죽음에 임했을 떄 “나는 여러 가지 발견을 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발견은 바로 패러데이를 발견한 것이었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이런 패러데이의 일생은 우리들에게 “꿈이 있을수록 먼저 인간이 되라.”고 가르치고 있다. 인륜적, 도덕적으로 정말 되먹지 못한 자가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서는 현실을 보고 있자니 패러데이의 감동적인 인간성이 다시 한번 생각난다.
-손 영일 컬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