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월 4일, 워싱턴의 밤하늘이 불꽃으로 터진다. 미국이 건국 250주년을 자축한다. 몇 걸음 떨어진 대법원 앞에는 며칠 전까지 "미국에서 태어나면 시민이다"라고 적힌 팻말이 나부꼈다. 그리고 지구 반대편 테헤란에서는, 검은 옷의 물결이 관 하나를 향해 흐른다. 한쪽은 태어남을 축하하고, 다른 쪽은 죽음을 추모한다. 폭죽과 만가(輓歌)가 같은 날 하늘을 가른다. 그러나 두 장면은 뜻밖에도 같은 질문을 품는다. 누가 진짜 이곳에 속하는가.
축하부터 들여다본다
250주년을 며칠 앞둔 6월 30일, 미국 대법원은 출생 시민권을 6 대 3으로 재확인했다. 미국 땅에서 태어난 거의 모든 아기는 시민이라는 원칙이다. 대통령의 행정명령으로 헌법을 지울 수는 없다는 선언이었다. 이민 옹호자들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미국이 적어도 이 한 가지 면에서는 열린 사회로 남는다는 신호였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판결문에서 1868년 수정 헌법 14조와 1898년 ‘웡킴아크’ 판결의 계보를 짚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중국인 부모에게 태어난 ‘웡킴아크’는 시민권을 거부당했다. 관리들은 그가 중국 황제에게 충성한다며 시민권을 부정했으나, 그는 굽히지 않고 소송 끝에 그 권리를 되찾았다. 노예도 자유민도 시민이 될 수 없다던 1857년 드레드 스콧 판결의 어둠을, 14조가 그 어둠을 뒤집었다는 사실도 나란히 상기됐다.
판결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한 연구는 이 명령이 유지될 경우 해마다 25만여 명의 아기가 시민권 없이 태어나고, 2045년까지 무국적 인구가 27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총구에서 총알 하나를 빼낸 셈이었다. 그러나 백악관은 이를 배신으로 받아들였다. 대통령은 판결을 나라에 나쁜 일이라 불렀고, 참모 스티븐 밀러는 '국가적 자멸'이라 표현했다. 축제의 조명 뒤에는 그렇게 그늘이 짙다. 알자지라 기고가 무스타파 바유미는 같은 대법원이 다른 문은 닫았다고 지적한다. 전쟁과 재난을 피해 온 이들에게 합법적 체류를 허락하던 임시 보호 지위, 곧 TPS가 무력화됐다.
수십만 아이티인과 수천 시리아인의 삶이 흔들린다. 남부 국경에서는 망명 신청자를 문전에서 돌려보내는 정책이 법의 무게를 얻었다.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반대 의견에서, 박해를 피해 온 모든 이의 문을 쾅 닫아 버렸다고 통렬히 적었다. 시민권은 지켜졌으나, 자유의 약속은 선택된 자에게만 주어진 셈이다.
배제의 언어는 더 노골적이다
팔레스타인계 인권운동가 마흐무드 칼릴은 자신의 발언을 이유로 추방 위기에 몰렸다. 표현의 자유를 지켜야 할 정부가 도리어 그것을 겨눈다. 의회에는 이른바 '샤리아 금지 코커스'가 생겼다. 25개 주에서 온 공화당 의원 약 60명이, 실체 없는 '샤리아 위협'에 맞선다며 뭉쳤다. 이슬람에서 샤리아는 윤리적 삶의 지침이지 법전이 아니다. 바유미는 19세기 반가톨릭 정당 '노낫싱'이 오늘의 반무슬림 운동으로 되살아났다고 본다.
여기에 더해, 이미 시민이 된 이들의 국적을 박탈하려는 시도가 시민권 운동 이후 유례없는 속도로 진행된다. 미국은 250년 내내 '누구를 들일 것인가'를 두고 싸워 왔다. 이 땅의 원주민조차 1924년에야 시민이 됐다. 그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제 추모를 본다. 테헤란의 관 속 인물은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다. 그는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목숨을 잃었고, 그의 장례는 7월 3일부터 이레에 걸쳐 치러진다. 관이 안치되는 7월 4일은, 공교롭게도 미국의 생일과 겹친다. 이란 당국은 이 죽음을 순교로 부르며 수백만을 거리로 불러낸다.
그러나 지난겨울, 같은 거리에는 물가와 억압에 분노해 그의 퇴진을 외치던 다른 군중이 있었다. 거리에는 '미국에 죽음을'과 '트럼프에게 죽음을'이라는 구호가 붉은 팻말에 적혀 나부낀다. 그러나 관 앞의 눈물이 모두 같은 색은 아니다. 추모조차 '누가 진짜 애도하는가'를 두고 갈린다. 어떤 눈물은 슬픔이고, 어떤 눈물은 두려움이며, 또 어떤 눈물은 동원된 의무다. 축하하는 나라도, 추모하는 나라도, 결국 소속을 묻는 같은 드라마 위에 서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