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통 예술이 직면한 가장 큰 숙제는 ‘보존’과 ‘변화’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다.
원형을 지키는 것은 역사를 잇는 숭고한 일이지만, 시대의 흐름과 단절된 채 박제된다면 대중의 삶 속에서 호흡하는 생명력을 잃고 만다.
특히 우리의 국악기들은 고유의 음률과 철학을 담고 있으나, 현대인들에게 익숙한 서양 음악이나 대중음악을 연주하기에는 음계의 구조적 한계가 늘 존재했다.
국악이 일상 속으로 깊이 파고들지 못하고 ‘특정 마니아층이나 국악 전공자들의 전유물’ 혹은 ‘어렵고 낯선 음악’으로 여겨졌던 이유 중 하나다.
필자는 이러한 한계를 꿰뚫어 보고, 국악기의 대중화를 위해 과감한 혁신을 감행하였다.
2007년 개량 국악기 전문 제작 시설인 산내들이색악기연구소를 오픈하여 전통 5음계에 머물러 있던 대금을 서양의 12음계로 개량한 이른바 ‘양악대금’을 개발했다.
20여 년간 양악대금을 비롯한 3,000여 개의 개량 국악기를 직접 제작하고 세계 22개 나라에 직접 대금을 들고 나가 알리고 보급하였다.
이는 단순한 악기의 구조적 변형이 아니라, 국악 패러다임의 거대한 전환을 의미한다.
12음계 대금의 탄생으로 인해 대금은 더 이상 전통 산조나 정악에만 갇혀 있지 않게 되었다.
가요, 팝송, 샹송, 클래식에 이르기까지 현대인들이 즐겨 듣는 모든 장르의 음악을 우리 고유의 대금 소리로 연주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청아하고 깊은 대금의 음색이 서양의 음계를 입고 대중의 귓가에 친숙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필자가 12음계 대금을 개발한 저변에는 확고한 철학이 깔려 있다.
"누구나 쉽고 즐겁게 대금을 연주하는 시대를 열겠다"는 것이다. 또한 2026년 설립한 한국생활국악협회는 이 철학을 실현하는 거대한 플랫폼이자 구심점의 역할을 해나갈 것이다.
협회는 12음계로 개량된 악기를 통해 국악의 진입 장벽을 획기적으로 낮추고, 일반인들이 일상 속에서 취미로 국악을 배우고 즐길 수 있는 '생활국악'의 새로운 생태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그동안 많은 대중이 국악에 매력을 느끼면서도, 막상 악기를 배우려 할 때 마주하는 낯선 음률과 기법 앞에서 좌절하곤 했다.
하지만 서양 음계에 맞춰 개량된 양악대금은 현대인들에게 익숙한 악보 그대로, 본인이 좋아하는 대중음악을 즉각적으로 연주할수 있게 해준다.
학습의 성취감과 재미가 배가되니, 자연스럽게 대금 동호인이 늘어나고 생활국악이 뿌리를 내리게 되는 것이다.
한국생활국악협회는 단순히 악기를 보급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렇게 모인 동호인들이 함께 교류하고 무대에 설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있다.

12음계를 품은 우리 악기가 동네 문화센터에서, 퇴근 후 직장인들의 동호회 모임에서, 그리고 지역의 크고 작은 행사에서 울려 퍼지게 만든 것이다. 양악대금이 만들어낸 이 혁신적인 변화는, 대중을 수동적인 국악 ‘관람객’에서 적극적인 국악 ‘연주자’로 탈바꿈시켰다.

전통은 과거의 재현에만 머물 때 쇠퇴하지만, 시대의 언어를 입고 대중과 소통할 때 비로소 찬란하게 진화한다.
필자가 개발하고 만든 양악대금의 지공(指孔)은, 어쩌면 전통과 현대, 국악과 대중을 연결하는 소통의 통로가 되길 바란다.
양악대금과 한국생활국악협회가 만들어갈 ‘생활국악’의 새로운 미래를 꿈꾸고 기대해본다.
우리의 맑고 청아한 대금 소리가, 대한민국의 선구적이고 위대한 음악이 전 세계의 모든 음악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남녀노소 모두의 일상 속에서 흥겹게 울려 퍼지기를 응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