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이 유독 시끄러운 날이 있습니다. 내 믿음 하나 지켜내는 일조차 버겁게 다가오곤 하죠. 교회 문을 나서면 대단한 세상 학문과 거친 유행들이 우리 마음을 주눅 들게 만듭니다. 그럴 때면 세상과 벽을 쌓고 숨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바로 그런 고민의 한복판에서 명쾌한 길을 찾아낸 다정한 스승이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복음의 품 안에서 아름답게 녹여내고자 했던 사람, 바로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Clemens of Alexandria, 150?~215?)입니다.
그는 그리스 아테네에서 태어난 것으로 전해집니다. 아테네는 당대 최고의 철학과 문화가 숨 쉬던 고향이었죠. 하지만 정작 그의 영혼이 깊이 뿌리내리고 치열하게 활동했던 무대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였습니다. 지금도 지중해를 품은 이집트 북부의 거대한 항구 도시로 남아 있는 그곳은, 당시 온 세상의 지식과 사상이 모여 소용돌이치던 지성의 용광로였습니다. 세계 최대 규모의 도서관이 있었고 당대 최고의 지성인들이 날마다 토론을 벌이던 곳이었지요.
기독교 역사에서 알렉산드리아는 아주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복음이 단순히 무지한 자들의 투박한 외침이 아니라, 세상의 가장 깊은 지성까지도 무릎 꿇릴 수 있는 거대한 진리임을 증명해 낸 전략적 요충지였기 때문입니다. 클레멘스는 그곳에서 초신자들을 가르치는 교리학교의 책임자가 되었습니다. 방황하는 수많은 청년들의 영혼을 따뜻하게 길러냈습니다.
당시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철학이나 학문을 악마의 유혹처럼 두려워했습니다. 교회의 문을 꽁꽁 걸어 잠그고 세상 학문을 공부하는 이들을 손가락질하기도 했지요. 클레멘스는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구원을 준비하도록 율법을 주셨듯이, 그리스인들에게는 이성을 일깨우기 위해 철학을 선물로 주셨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율법이 히브리인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했듯이, 철학은 그리스인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입니다.
그에게 세상의 좋은 학문과 지식은 복음이라는 온전한 태양 빛을 비추기 전에 밤하늘을 밝혀주던 희미한 별빛이었습니다. 철학은 진리 자체가 될 수는 없지만, 사람들의 손을 잡고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는 좋은 안내자가 될 수 있다고 그는 믿었습니다. 이단들이 주장하던 신비주의적인 가짜 지식에 맞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깊이 알아가고 그분을 닮아가는 삶이야말로 진짜 지식이라고 그는 외쳤습니다.
우리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을 켜고 엄청난 양의 정보와 뉴스 속으로 빠져듭니다. 인공지능이 세상을 뒤흔들고, 학교와 직장에서는 숨 막히는 경쟁이 날마다 이어지죠. 어떤 이들은 세상의 문화가 너무 세속적이라며 기독교인들끼리만 뭉쳐서 살아야 안전하다고 말합니다. 클레멘스가 오늘 우리 곁에 있다면 아마 자상한 미소를 지으며 우리의 어깨를 다독여줄 것 같습니다. 세상의 과학 기술이나 인문학적 고민들을 무조건 밀어내지 말라고 말이죠.
AI를 공부하는 일도, 깊이 있는 문학책을 읽는 것도, 아름다운 음악을 감상하는 것도 모두 하나님이 주신 이성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길입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서 지식이나 직장에서 밤새워 익히는 업무 능력 역시 결코 신앙과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것들을 복음의 시선으로 올바르게 사용할 때, 우리는 비로소 세상을 더 따뜻하고 살만한 곳으로 만드는 지혜를 얻게 됩니다. 의사가 의학 지식으로 생명을 살리고, 개발자가 기술로 세상의 불편함을 해결할 때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 일상에 스며들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살아갈 미래는 지금보다 훨씬 더 밝고 소망 가득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학문과 일상을 복음의 렌즈로 재해석할 때, 우리 청소년들은 세상의 거대한 흐름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는 당당한 지성인으로 자라날 것입니다.
갈등과 혐오가 가득한 이 시대에, 나만 옳다고 주장하기보다 타인의 고민을 경청하고 세상의 지혜까지도 복음으로 넉넉하게 품어내는 마음이야말로 우리가 만들어갈 희망찬 내일의 첫걸음이 아닐까요?
허동보 목사(Rev. Huh Dongbo) | 수현교회(Suhyun Church)
저서 | 『왕초보 히브리어 펜습자』, 『왕초보 헬라어 펜습자』, 『왕초보 히브리어 성경읽기』, 『고난, 절망의 늪에서 피어난 꽃』, 『부와 기독교신앙』, 『그와 함께라면』, 『만남』, 『AI시대, 히브리어로 답하다』 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