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이 멈췄다는 소식 한 줄에, 세계의 지갑이 먼저 반응한다. 미·이란 합의가 발표되자 세계 증시는 환호했고, 핵심 교역로의 운항이 곧 회복될 수 있다는 기대에 유가는 배럴당 4달러 넘게 내린다. "배들이여, 시동을 걸어라. 기름이 흐르게 하라"는 트럼프의 한마디가 시장의 빗장을 푼다. 석 달 넘게 페르시아만을 짓누르던 공포가 잠시 걷히는 순간이다. 그러나 이 안도의 뿌리는 의외로 얕다. 아직 서명되지 않은 한 장의 약속, 그 위에 세계 경제의 한숨이 얹혀 있다. 멈춘 총성이 정말로 기름을 흐르게 할 것인가.
왜 좁은 해협 하나에 세계가 떨었나
호르무즈 해협은 지도 위의 가느다란 물길이지만, 세계 경제의 숨통이다. 전쟁 전 이 길로 세계 석유의 약 20%가 지나갔고, 2월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 폭격을 시작하자 해협의 통행은 사실상 멈춰 선다. 동맥이 막히면 온몸이 위태롭듯, 좁은 바닷길의 마비는 곧 세계 유가의 발작으로 번진다.
2026년 2월 28일에 불붙은 전쟁은 그 공포를 현실로 만든다. 유조선은 항구에 발이 묶이고, 가격표의 숫자는 춤을 춘다. 에너지 시장은 한동안 가장 불안한 변수 위에서 흔들린다. 그러니 합의 소식이 전해진 순간, 시장이 가장 먼저 안도의 숨을 내쉰 것은 우연이 아니다.
시장은 어떻게 반응했나
숫자가 모든 것을 말한다. 합의 발표 직후 일요일 저녁 거래에서 미국산 원유 가격은 4.5% 넘게 떨어져 배럴당 80달러로, 3월 첫 주 이후 가장 낮은 수준까지 내려간다. 국제 기준 유인 브렌트유 역시 약 4% 밀려 배럴당 83달러 안팎을 오간다. 유가가 4달러 넘게 빠지고 세계 증시가 치솟은 배경에는, 핵심 교역로의 운항이 곧 되살아날 수 있다는 기대가 자리한다.
깃발을 흔든 쪽은 트럼프다. 그는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합의가 완성됐다"며 호르무즈 해협의 통행료 없는 개방과 미국 해군 봉쇄의 즉각 해제를 승인한다고 적는다. 그는 기름을 가득 실은 배들이 안전한 '남쪽 항로'를 따라 해협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발표의 무게는 파키스탄이 함께 받친다. 셰바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는 트럼프의 발표 직전, 미·이란 평화 합의가 이뤄졌다고 X에 올린다.
합의의 설계도는 밴스 부통령의 입에서 한층 또렷해진다. 그는 CNBC 인터뷰에서 이번 단기 합의가 호르무즈 해협을 "즉시" 다시 열고, 이란이 핵무기를 "결코 개발하거나 획득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담는다고 설명한다. 밴스는 이란이 검증 절차를 거쳐 약속을 지키는 것이 확인되면, 그 시점에 미국이 제재를 해제할 것이라 덧붙인다.
그러나 안도의 표면 아래에는 불씨가 흐른다. 이스라엘은 같은 날 레바논에서 점령한 땅에서 철수하지 않겠다고 밝히고, 이란 외무장관 압바스 아라그치는 그곳에서의 이스라엘 공격이 완전히 멈춰야 하며 그 책임은 미국에 있다고 경고한다. 실제로 이번 합의는 트럼프와 테헤란 양쪽이 비판한 이스라엘의 공습에도 불구하고 가까스로 매듭지어진다. 서명식은 금요일 스위스에서 열릴 예정이다. 시장의 환호와 전선의 긴장이, 같은 시간 한 화면에 공존한다.
안도의 값, 그리고 아직 마르지 않은 잉크
유가는 내렸고 증시는 올랐다. 멈췄던 배들은 다시 뱃머리를 돌린다. 세계 경제가 오랜만에 내쉰 안도의 숨은 분명 실재한다. 그러나 그 안도는 이미 체결된 평화가 아니라, 금요일에야 서명될 약속을 미리 당겨 쓴 것에 가깝다. 시장은 늘 희망을 먼저 사고, 현실은 그 뒤를 천천히 따라온다. 검증과 제재 해제, 레바논의 침묵이라는 조건들이 하나라도 어긋나면, 오늘의 안도는 내일의 발작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 우리는 떨어진 유가의 숫자에 안심해야 하는가, 아니면 아직 마르지 않은 합의문의 잉크를 먼저 지켜봐야 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