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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줄과 날줄로 엮은 영원한 이름, 최금란 작가의 ‘삼베 모성애’

▲그리움 91x73cm Korean paper with mixed 

◇박제된 전통을 깨우는 거친 숨결

우리는 흔히 예술을 ‘세련된 것’ 혹은 ‘매끄러운 것’이라 정의하곤 한다. 도시의 매끄러운 유리벽과 디지털 화면의 고해상도 이미지에 길들여진 현대인들에게, 최금란 작가가 내놓은 ‘삼베’라는 소재는 어쩌면 낯설고 투박한 침입자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거친 질감 앞에 잠시 멈춰 서는 순간, 우리는 그것이 단순한 천 조각이 아니라 우리 DNA 속에 각인된 가장 원초적인 온기임을 깨닫게 된다.


최금란 작가의 작업 세계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삼베’와 ‘모성’이다. 이 두 단어는 작가의 손끝에서 하나의 생명체로 결합한다. 


“삼베의 거친 올을 만지고 있으면, 그것이 단순한 천이 아니라 어머니의 거친 손마디처럼 느껴진다. 그 거칠고 투박한 질감 속에 숨겨진 가장 부드러운 사랑을 길어 올리고 싶었다”


기존의 많은 예술가가 전통적 소재를 박제된 유물처럼 다루었다면, 최금란은 삼베의 거친 올 사이사이에 어머니의 숨결을 불어넣어 그것을 현재 진행형의 예술로 부활시킨다. 그의 작품 <삼베 모성애>는 보는 전시가 아니라, 마음의 손으로 만지는 전시다.


▲얼-모시 46x53cm Canvas with mixed 

◇삼베의 조직을 풀어 위로를 짓다

대부분의 관람객은 그의 작품 앞에서 당연하다는 듯 ‘삼베 천을 잘라 붙였을 것’이라 짐작하곤 한다. 그러나 화면에 가까이 다가서는 순간, 경외감 섞인 반전이 시작된다. 캔버스를 채우고 있는 삼베의 거친 짜임새는 붙인 것이 아니라, 작가가 세필붓에 물감을 찍어 씨줄과 날줄을 한 올 한 올 고도로 치밀하게 그려낸 ‘회화’의 결과물이다.


삼베는 식물인 ‘대마’에서 시작되어 가느다란 실로 쪼개어 이어 붙이는 수행의 과정을 거친다. 최금란 작가는 그 고된 공정을 거치듯, 수만 번의 붓질로 씨줄과 날줄을 엮어 나가며 우리네 어머니들이 살아온 삶의 궤적을 캔버스 위에 고스란히 재현한다.


실제 삼베를 쓰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과 정신력을 요하는 이 ‘그리기’ 행위는, 밤새 호롱불 아래서 바느질하며 자식의 미래를 기도했던 어머니의 숭고한 시간과 완벽하게 겹쳐진다.


“삼베는 정직한 소재다. 세필붓으로 한 올의 씨줄을 긋고, 다시 그 위에 날줄을 교차해 가는 과정에서 삿된 마음은 허용되지 않는다. 나 역시 삼베의 결을 그리며 이 시대에 잊혀가는 ‘기다림의 가치’를 새긴다”


◇‘모성’이라는 보편적 구원

최금란의 작품 속에서 모성은 신파적 슬픔에 머물지 않는다. 그의 화면은 대개 절제되어 있으며, 때로는 추상적이다. 화려한 기교를 부리는 대신, 삼베 본연의 색인 미색과 황토색, 그리고 묵직한 무채색을 주로 사용한다. 이는 어머니의 사랑이 요란한 수식어가 필요 없는, 존재 자체로 충분한 것임을 역설한다.


작품 <삼베 모성애> 연작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화면 곳곳에 구멍이 뚫려 있거나 거칠게 기운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세월의 풍파를 온몸으로 받아낸 어머니의 상처를 상징하는 동시에, 그 상처조차 예술적 승화를 통해 아름다운 무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작가는 묻는다. "당신의 어머니가 견뎌온 그 거친 시간들이 과연 초라하기만 한 것이었는가?"라고.


또한, 그의 작품은 시각을 넘어 촉각적 경험을 선사한다. 감상자는 캔버스 너머로 전해지는 삼베의 입체감을 통해 어머니의 품속 같은 안락함과 동시에,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살아온 한 여성의 강인함을 동시에 느낀다. 이러한 이중적인 감정의 교차는 최금란 작가만이 가진 독보적인 서사 구조다.


▲얼-모시 76x56cm Arches with mixed 

◇현대 미술로서의 변용과 가치

최금란 작가의 작업은 ‘전통의 현대화’라는 오랜, 어쩌면 진부해진 과제에 대해 가장 명쾌하고도 감각적인 해답을 제시한다. 그는 삼베라는 지극히 한국적이고 민속적인 소재를 취하면서도, 이를 풀어내는 조형 언어만큼은 철저히 동시대적이다. 


특히 최근의 시대적 배경은 그의 작품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디지털 기술의 눈부신 발달로 우리를 둘러싼 모든 인터페이스는 매끄럽고, 평평하며, 즉각적으로 소비된다. 스마트폰의 유리 액정처럼 차갑고 매끄러운 촉감에 길들여진 현대인들에게 작가가 고집하는 ‘느린 작업’과 ‘삼베의 거친 질감’은 역설적인 해방감을 선사한다. 작가는 기계가 흉내 낼 수 없는 불규칙한 올의 짜임, 손끝의 압력에 따라 미세하게 달라지는 입체감을 통해 ‘촉각적 실존’을 증명한다.


사람들이 그의 작품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자기도 모르게 ‘만져보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을 느끼는 현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는 단순히 호기심을 넘어, 현대 사회에서 결핍된 인간적 접촉에 대한 본능적인 갈망을 드러낸다. 작가는 삼베라는 매체를 통해 그 텅 빈 갈망을 채워준다. 캔버스 위에 거칠게 일어난 보풀과 성글게 짜인 틈새는 매끄러운 세상에 상처 입은 현대인들의 마음이 잠시 머물다 갈 수 있는 ‘정서적 요철’이 되어준다.


여기서 작가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단순히 만지고 싶은 질감을 넘어, 그 질감이 환기하는 '기억의 감각'을 건드리는 것이다. 


“매끄러운 것은 우리를 감탄하게 하지만, 거친 것은 우리를 머물게 한다. 손끝에 걸리는 삼베의 투박한 저항감이야말로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이며, 누군가의 희생으로 보살펴지고 있다는 안도감을 준다. 내 작업은 그 안도감을 복원하는 과정이다”


결국 최금란의 예술은 가장 고도화된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결핍을 치유하는 '동시대적 처방'으로 기능한다. 그의 삼베는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촉각을 잃어버린 현대인들에게 ‘만질 수 있는 사랑’의 실체를 회복시켜 주는 가장 현대적인 매개체인 것이다.


▲얼-모시 116.8x80.2cm Canvas with mixed 

◇씨줄과 날줄이 만드는 미래의 기억

최금란 작가의 <삼베 모성애>는 과거를 회상하는 기록화가 아니다. 그것은 시대를 초월하여 흐르는 ‘생명력’에 관한 보고서다. 어머니라는 존재가 세상의 모든 씨줄과 날줄을 엮어 자식이라는 집을 짓듯, 작가는 삼베를 통해 흩어진 현대인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세운다.


그의 작품은 시간이 흐를수록 삼베가 자연스럽게 익어가듯, 관람객의 마음속에서 더 깊은 색으로 변해갈 것이다. 삼베의 올이 하나하나 모여 견고한 천이 되듯이, 최금란이 쌓아 올린 이 예술적 층위들은 우리 시대가 잃어버린 ‘숭고한 사랑’의 가치를 증명하는 거대한 기념비로 남을 것이다.


우리는 그의 작품을 통해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어머니의 사랑은 부드러운 비단이 아니라, 거친 바람을 다 막아내면서도 결코 끊어지지 않는 질긴 삼베였다는 것을. 그리고 그 거친 질감이야말로 우리가 돌아가야 할 진정한 고향임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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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6.06.09 13:00 수정 2026.06.09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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