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루살렘에 성전은 어떻게 세워졌습니까? 이집트에서 해방된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성막을 만들었습니다. 가나안 정복 이후 성막은 실로에서 기브온으로 옮겨집니다. 그 과정에서 법궤가 성막에서 이탈했습니다. 마지막 사사이며 선지자인 사무엘이 어린 시절에 그랬습니다. 그렇게 법궤는 성막을 벗어나 이곳저곳으로 옮겨집니다. 다윗은 그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기로 작정합니다. 다윗이 시도한 법궤 이동과정은 두 차례입니다. 첫 번째는 이동을 책임진 웃사가 법궤를 만져 죽었습니다. 다윗은 슬퍼하며 그 자리를 베레스웃사라 이름했습니다(대상 13:11).
그런데도 다윗은 굴하지 않고 법궤를 옮길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그렇게 다윗은 기어이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겼습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법궤를 왜 예루살렘으로 옮겼는지 묻게 됩니다. 까놓고 믿음 좋은 다윗이라면 정상화해야 맞지 않습니까? 성막 지성소에 법궤가 없는 이 상황이 비정상 아닙니까? 그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려놓는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법궤를 성막이 있는 기브온으로 옮기면 됩니다. 오직 이 하나가 비정상을 정상으로 환원하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비정상에 비정상을 보탰습니다.
그렇게 예배 역사상 생뚱맞은 찬송이 처음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찬송함이 엉터리란 말이 아닙니다. 찬송은 오직 하나님께만 불러야 옳습니다. 문제는 찬송이 아니라 지금 찬송하는 자리가 틀렸다는 말입니다. 분명 찬송은 '하나님 앞에서'라는 명제와 늘 함께합니다. 이를 영적으로 이해하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찬송하는 자리, 곧 장소와 맞물릴 때는 심사숙고해야 합니다. 그래서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윗이 처음 시도한 찬송하는 자리는 정상입니까? 다윗은 예루살렘으로 옮긴 법궤를 임시 막사에 두었습니다. 그러니 엄밀히 말해서 법궤가 그 안에 있다고 해도 성막은 아닙니다. 성막은 어디까지나 기브온에 있습니다. 다윗도 그 사실을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기브온에 제사장 사독과 형제들을 보내 예배하게 합니다. 얼마든지 제대로 된 예배가 가능했는데 비정상을 유지했습니다. 그나마 기브온에 정통 제사장을 보내 예배 틀을 바로 세웠습니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법궤를 옮겨놓은 예루살렘 임시막사 앞입니다. 다윗은 법궤를 지킬 병사를 파송하는 대신 찬양대를 세웠습니다. 찬양대가 섰다는 뜻은 그 앞에서 찬송한다는 말입니다. 그 결과 법궤 앞에서 찬송하는 특별한 상황이 만들어집니다. 이 장면을 잘 새겨두십시오. 장차 성전이 세워지면 결코 찬송할 수 없는 자리입니다. 성전이 어떤 구조로 세워졌습니까? 그 공간 구성을 잘 이해하십시오. 성전은 성소와 지성소로 이루어진 건물과 그 부속물을 가리킵니다. 부속물은 바깥마당과 번제단이 있는 제사장 뜰을 포함합니다. 자, 그러면 성가대는 성전 어디에서 찬송했겠습니까? 성전 건물인 성소입니까, 아니면 더 깊숙한 지성소입니까?
미안하지만 성소나 지성소에는 오직 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특히 지성소에는 오직 대제사장이 일 년에 딱 한 번 들어갑니다. 그러니 성가대는 지성소는커녕 성소에도 얼씬거릴 수 없습니다. 왜냐면 당시 성가대는 철저하게 세습되는 신분제였습니다. 그러니 성가대는 어떤 사람들로 구성됩니까? 그들은 레위 지파이며 재능과는 상관없이 세습되었습니다. 레위 지파가 아니라면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찬송할 수 없습니다. 이는 성가대가 재능보다 영성을 우선시했다는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자, 시간을 조금만 미루면 성전시대가 열립니다. 솔로몬 성전이 세워지고 봉헌할 때 성가대 자리는 어디입니까? 설마 그때도 법궤가 있는 지성소라고 우기겠습니까? 왕조차도 들어설 수 없는 성전에 성소와 지성소가 있습니다. 그런데 혹시 성가대는 그 안으로 들어갔습니까? 성전 안으로 들어갔다면 성소입니까. 아니면 지성소입니까? 당연히 성전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성소냐 지성소냐는 무의미한 질문일 뿐입니다.
그러니 법궤 앞에서 찬송했던 경험 있는 대원들이 뭐라 하겠습니까? 그때는 됐는데 지금은 안 된다니 무슨 말이냐며 항의라도 합니까?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느라 한참을 고생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니 이참에 다윗이 성가대를 그 자리에 세운 이유를 묻게 됩니다. 다윗은 왜 법궤를 보관한 임시막사 앞에서 찬송하게 했습니까? 그 결과 다윗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성전 예배는 이원화됩니다. 그 시절 여전히 하나님의 집인 성막은 기브온에 있습니다. 그곳에 대제사장 사독과 형제 제사장들이 상주하며 예배합니다.
그러니 기브온 성막에서 행하는 예배가 정상입니까, 비정상입니까? 그러면 임시막사 앞에서 성가대가 찬송하는 예루살렘은 어떻습니까? 솔직히 우리는 한 번도 그런 질문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무조건 다윗이 옳다고만 생각할 뿐 세밀하게 살피지 않았습니다. 찬송하는 그 자체가 좋아서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왜 다윗이 이렇게까지 했는지 더욱더 궁금해집니다. 성경이 말하는 법궤를 예루살렘에 옮겨놓은 이유를 보십시오.
"어떤 사람이 다윗 왕에게 아뢰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궤로 말미암아 오벧에돔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에 복을 주셨다 한지라. 다윗이 가서 하나님의 궤를 기쁨으로 메고 오벧에돔의 집에서 다윗성으로 올라갈새"(삼하 6:12)
다윗이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긴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하나님이 오벧에돔의 집에 복을 쏟아부어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 소식을 접한 다윗이 기어이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깁니다. 그러니 겉으로 드러난 이유는 하나님이 주시는 복과 연관됩니다. 하지만 평행본문인 역대기를 보십시오(대상 13:14; 15:1-24). 그리고 법궤 이동 과정에 추가된 다른 내용을 예민하게 살피십시오. 그러면 법궤 이동에 숨겨진 또 다른 코드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과연 감추어진 코드는 무엇이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