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동안 수많은 현장을 누볐지만, 가난이 아이들의 자존심까지 앗아가는 현장을 목격할 때면 여전히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진다. 지난 17일 이른 아침, 한국늘사랑회 김상기 회장과 밥상공동체 허기복 대표 일행은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를 떠나 2시간여를 달렸다. 울퉁불퉁하게 패인 흙길을 따라 도착한 곳은 시골 마을 오로미아주에 위치한 '흘레티 등대학교(Hulleti Lighthouse School)'였다.
이곳은 마차와 '톡톡이(삼발 택시)'가 유일한 이동 수단일 정도로 현대 문명과는 동떨어진 곳이다. 주민들은 하루하루를 힘겹게 엮어가는 고단한 삶의 터전 위에 서있었다. 특히 가난한 집안 형편 탓에 정규 학교에 다닐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엘사(Elsa) 이사장이 세운 기독교 기반의 이 학교는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5학년 까지 정부 인가를 받은 엄연한 정규 교육기관이다.

그러나 학교의 현실은 '등대'라는 이름이 무색할 만큼 어둠 속에 있었다. 아이들에게 줄 점심 식사가 끊긴 지 오래고, 16명 교사의 월급마저 중단되면서 당장 내일 문을 닫아도 이상하지 않을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었다. 김상기 회장과 허기복 대표는 학교의 폐쇄를 막기 위해 현장을 찾아 150명의 어린이에게 따뜻한 인젤라(에티오피아 전통 음식)와 음료를 대접했다. 아이들은 오랜만에 배불리 먹으며 일행이 준비한 사탕 과 초콜릿을 나누고 함께 게임을 즐기며 모처럼 활짝 웃었다.
하지만 교실을 하나하나 둘러보던 김상기 회장의 눈시울은 이내 뜨거워졌다. 조금이라도 형편이 나은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번듯한 교복을 입고 다니지만, 이곳 아이들은 낡고 해진 옷조차 제대로 갖춰 입지 못한 채였다. 김상기 회장은 "교복도 없이 삶의 자존심을 박탈당한 듯한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지독하게 가난했던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라 가슴이 미어졌다"고 소회를 밝혔다.

학교의 물리적 환경 또한 처참했다. 우기에는 지붕에서 샌 빗물이 교실 바닥을 적시고, 식수 공급 체계가 없어 아이들은 목이 말라도 물 한 모금 마음껏 마시지 못했다. 손을 씻는 위생 관리는 꿈도 꿀 수 없었다. 화장실과 주방은 형체만 겨우 유지한 채 방치되어 있었다. 이런 극한의 상황에서도 "가장 갖고 싶은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아 이들은 주저 없이 "펜슬(연필)"이라고 답했다. 공부하고 싶다는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과 연필 한 자루에 담긴 간절한 열망은 방문단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김상기 회장, 허기복 대표 일행은 현장에서 시급히 해결해야 할 숙제들을 꼼꼼히 기록했다. 교사들의 밀린 월급과 급식 비용, 지붕 보수, 화장실 및 주방 수리, 학교 담장 정비, 그리고 생명줄과 같은 우물 파기까지. 150명 아이의 꿈을 지탱하는데 필요한 예산은 약 5,000만 원. 누군가에게는 큰 금액일 수 있으나, 한 학교의 존폐와 아이들의 미래가 달린 것을 생각하면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수치다.

일행은 소똥을 이겨 만든 위태로운 아이들의 집을 방문한 뒤, 다시 무거운 발걸음을 아디스아바바 향했다. 김상기 회장은 "다시 올 때는 축구공을 가득 실은 산타클로스가 되어 오겠다"며 "사랑을 갈구하는 이 아이들을 위해 어떤 산타가 되어 실질적인 변화를 선물할 것인지 깊이 고민하는 아름다운 날들을 만들어가겠다"고 다짐했다.
에티오피아의 척박한 땅에서 연필 한 자루를 쥐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아이들. 그들의 등대가 꺼지지 않도록 이제 우리 사회가 따뜻한 손길을 내밀 차례다. 김상기 회장과 허기복 대표의 이번 방문은 단순한 봉사를 넘어, 지구촌 공동체의 책임을 묻는 묵직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