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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칼럼] 128화 그날의 10만원

보통의가치 칼럼, '일상에서 배우다'

돈의 크기는 시간이 지나면 흐려지지만, 사람의 마음은 또렷해진다

그 때 받은 것은 한 학생을 향해 건네진 믿음과 격려였다

▲ 기사 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사진=Unsplash]

 

스무 살의 문 앞에서

2009년, 스무 살이 되던 해. 대학이라는 새로운 문 앞에 서 있었다. 설렘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일 것이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그 시절의 대학 생활은 흔히 말하는 ‘신입생의 낭만’과는 결이 달랐다. 당시의 일상은 단순했다. 학교, 교회 공부방 봉사, 그리고 집을 오가는 반복. 캠퍼스의 자유를 만끽하기보다 주어진 하루를 성실히 채우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쏟았다. 그중에서도 한 가지는 분명했다. 수업만큼은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앞자리에 앉던 이유

수업이 있는 날이면 늘 맨 앞자리에 앉았다. 학업 성취도가 뛰어난 학생은 아니었다. 오히려 ‘공부를 잘하지 못한다’는 콤플렉스를 마음 한편에 늘 품고 있었다. 그래서 더 놓치지 않으려 애썼고, 더 집중하려 했다. 수업이 끝나면 교수님께 짧은 문자 메시지를 보내곤 했다. 그날 강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내용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다소 서툴렀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예의라고 믿었다. 그 마음이 전해졌던 것일까. 여러 교수님들께서 유난히 따뜻하게 대해 주셨고, 그 인연 중 일부는 십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단 한 학기의 인연

그 많은 인연 속에서도 유독 또렷하게 남아 있는 한 분이 있다. 1학년 때 들었던 교양 글쓰기 수업의 교수님이다. 그 수업에서도 늘 앞자리에 앉았다. 한 마디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매 시간을 채웠다. 수행평가와 시험 역시 그때의 나로서는 최선을 다해 임했다. 한 학기가 끝났지만 인연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전공 교수님도 아니었음에도 그분은 유난히 따뜻하게 대해 주셨고, 나 역시 그 마음을 느끼며 더 깊이 따르게 되었다.

 

군 입대를 앞두고 받은 봉투

시간이 흘러 군 입대를 앞둔 어느 날, 감사 인사를 드리고자 교수님께 연락을 드렸다. 식사라도 함께하고 싶었지만 일정이 맞지 않았다. 대신 교수님께서는 작은 봉투 하나를 건네셨다. 맛있는 것 사 먹고, 군 생활 잘 마치고 오라는 말과 함께였다. 몇 번이나 괜찮다고 손사래를 쳤다.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교수님은 조용히 웃으며 한마디를 남겼다. “마음이니까 받아.” 결국 두 손으로 그 봉투를 받아 들었다. 그 안에 들어 있던 10만 원은, 금액 이상의 무게로 마음에 남았다.

 

잊히지 않는 마음의 빚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했을 무렵, 세상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특히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연락처들이 크게 바뀌어 있었다. 안타깝게도 그 교수님과의 연락도 끊어졌다. 학교 본관을 찾아 수소문했지만 개인정보 보호라는 벽 앞에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었다. 감사 인사를 전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흘렀고, 마음 한편에는 늘 미안함이 남아 있었다.

 

2025년 봄, 다시 이어진 인연

2025년 4월, 학과 후배 대상 강의를 위해 모교를 찾았던 날이었다. 학생회관 식당을 지나던 순간, 한 분의 뒷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심장이 순간 크게 뛰었다. 아내에게 잠시 기다려 달라고 말한 뒤 거의 뛰다시피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조심스럽지만 분명하게 불렀다. “교수님!” 그분이 천천히 뒤를 돌아보셨다. 오랫동안 마음속에만 그리던 얼굴이었다. 반가움, 안도, 그리고 오래 묵혀 둔 감사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우리는 받은 마음을 얼마나 기억하는가

살아가다 보면 수많은 도움과 호의를 받는다. 그러나 그 마음을 끝까지 기억하고, 다시 찾아가 전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날의 10만 원은 생활을 바꾸는 큰돈은 아니었다. 그러나 한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오래 남을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상징이 되었다. 결국 사람의 인생을 움직이는 것은 거창한 사건보다, 이렇게 조용히 건네진 마음일지도 모른다.

 

함께 생각해볼 질문

지금 떠오르는 ‘고마운 얼굴’이 있는가.

지금 이 글을 읽는 순간 떠오르는 사람이 있는가. 아직 전하지 못한 감사가 마음 한편에 남아 있지는 않은가. 그 마음을 “언젠가”로 미뤄 두고 있지는 않은가. 인연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마음의 가치는 시간이 증명한다

그날 이후 매월 1일 보내는 월간 메시지의 수신자 명단에 교수님의 이름이 새롭게 추가되었다. 돌이켜 보면 분명하다. 그때 받은 것은 10만 원이 아니었다. 한 학생을 향해 건네진 믿음과 격려였다. 돈의 크기는 시간이 지나면 흐려지지만, 사람의 마음은 오히려 더 또렷해진다. 그래서 오늘도 조용히 다짐해 본다. 언젠가 누군가에게 나 역시 그런 ‘오래 남는 마음’을 건네는 사람이 되어 보자고. 그날의 봉투를 떠올리며,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오래 살아남는지를 다시 배워 본다.

 

* 해당 글은 네이버 블로그 ‘일상생활소통연구소’에 게시한 문학수필을 보통의가치 뉴스 칼럼식으로 바꿔 작성한 글임을 밝힌다.

 

✍ ‘보통의가치’ 뉴스는 작은 일상을 기록하여 함께 나눌 수 있는 가치를 전하고 있습니다.

작성 2026.03.10 22:07 수정 2026.03.10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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