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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칼럼] 127화 아들의 독서하는 모습

보통의가치 칼럼, '일상에서 배우다'

강요가 아니라 연습으로, 의무가 아니라 놀이로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이 아닌 ‘펼쳐도 괜찮은 것’으로

▲ 기사 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사진=Unsplash]

 

연휴의 끝에서 마주한 조용한 밤

지난 설 명절 연휴의 마지막 밤, 집 안에는 아직도 느슨한 여운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가족은 서서히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다음 날 출근을 준비하는 손길과 등원을 앞둔 아이의 움직임이 조용히 하루를 정리하고 있었다. 잠자리에 들기 전 잠시 고민이 스쳤다. 음악으로 하루를 마무리할 것인가, 아니면 책을 펼칠 것인가. 평소라면 음악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그날은 자연스럽게 책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연휴 동안 미디어에 노출된 시간이 평소보다 길었다는 점, 그리고 내년에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아이에게 글과 조금 더 가까워질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겹쳤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날 밤, 우리 가족은 음악 대신 책을 선택했다.

 

또박또박 흐르던 작은 목소리

아내와 아이가 먼저 침대에 올라 책을 펼쳤고, 집안의 마무리를 정리한 뒤 뒤늦게 침실로 들어섰다. 문을 여는 순간, 조용한 방 안에 아이의 또박또박한 목소리가 흐르고 있었다. 작년부터 아이는 한글에 조금씩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 글자 한 글자를 더듬듯 짚어 가며 읽었지만, 올해 들어 그 속도와 자신감이 분명 달라져 있었다. 그날 밤의 모습은 유난히 또렷하게 마음에 들어왔다. 작은 입으로 소리를 내어 읽는 모습, 모르는 글자를 만나 잠시 멈추는 순간, 그리고 다시 용기를 내어 이어 읽는 장면까지. 완벽하지 않아 더 아름다운 과정이었다. 특히 쌍받침이 등장할 때면 아이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몇 번이나 읽기를 멈추고 아내를 바라보며 물었다.

 

“엄마, 이건 뭐야?”

아내가 차분히 발음을 짚어 주면, 아이는 다시 따라 읽었다. 그 서툰 반복 속에서 포기하지 않는 태도가 조용히 자라고 있었다.

 

경험을 넘어 보편으로_독서는 어떻게 시작되는가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다 문득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돌이켜 보면 책과 가까운 아이는 아니었다. 책상 앞에 앉기보다 밖으로 뛰어나가 친구들과 노는 시간이 훨씬 즐거웠다. 독서의 즐거움을 제대로 마주한 것은 성인이 되고, 군 시절을 지나면서였다. 그때 비로소 책이라는 세계가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고, 그 흐름이 지금의 기록 습관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가끔 이런 생각이 스친다. 조금 더 어린 시절에 책과 가까워졌다면 어땠을까. 물론 지금의 과정도 충분히 소중하지만, 독서를 일찍 만났다면 또 다른 결의 시간이 펼쳐졌을지도 모른다. 아이 역시 지금 당장은 책을 특별히 좋아하는 단계는 아니다. 글자를 읽는 일보다 몸으로 뛰어노는 일이 더 즐거운 나이다. 어쩌면 그 모습은 어린 시절의 나와 닮아 있는지도 모른다.

 

강요가 아닌 환경이 습관을 만든다

이 지점에서 한 가지 분명한 생각에 닿았다. 독서는 좋아하라고 밀어붙인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자리 잡는 습관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억지로 앉혀 놓는 시간은 잠시의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책에 대한 정서적 거리감을 만들 가능성도 함께 품고 있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분위기라는 판단이 들었다. 강요가 아니라 연습으로, 의무가 아니라 놀이로.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펼쳐도 괜찮은 것’으로 느끼게 하는 환경. 그것이 지금 이 시기에 더 중요한 역할일지도 모른다.

 

함께 생각해볼 질문

아이에게 독서를 말하기 전에, 부모는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가.

지금 아이에게 책을 권하고 있다면, 스스로 책을 펼치는 모습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는가.
독서를 숙제로 느끼게 하고 있지는 않은가. 혹은 같은 공간에서 함께 읽는 시간을 만들어 본 적이 있는가. 아이의 습관은 말보다 장면을 더 오래 기억한다.

 

가장 좋은 독서 교육은 ‘함께 읽는 풍경’이다

그날 밤, 아이의 또박또박한 목소리를 들으며 나 역시 책장을 넘겼다. 같은 공간에서 각자의 책을 펼치고 있는 그 시간은 말없이도 충분히 따뜻했다. 아이의 독서 습관이 어디까지 이어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날 밤의 장면은 아이의 기억 속에도, 그리고 이 글을 쓰는 마음속에도 오래 남을 것이다. 좋은 말을 건네는 아빠도 필요하지만, 묵묵히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아빠가 되고 싶다. 아이가 한 글자씩 읽어 내려가던 그 밤처럼, 오늘도 이 자리에서 한 페이지를 조용히 넘겨 본다.

 

✍ ‘보통의가치’ 뉴스는 작은 일상을 기록하여 함께 나눌 수 있는 가치를 전하고 있습니다.

작성 2026.03.10 21:55 수정 2026.03.10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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