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몸빛 4 -정진채 지음
바로 그 때, 멸치 두 마리가 진주조개 앞으로 왔습니다. 멸치들은 새파랗게 질려서 숨을 할딱거리고 있었습니다.
진주조개가 물었습니다.
“왜 이리 새파랗게 질려서 떨고 있느냐?”
멸치가 대답하였습니다.
“네에, 할머님, 잠시 숨을 돌리려고 이곳에 왔습니다.”
“………?”
“지금 저희들은 갈매기와 오리 떼의 습격을 받았습니다. 그래, 부모와 친구들이 수 없이 죽었습니다. 죽고, 또 죽고, 또 죽었습니다. 마치 우리들은 죽으려고 세상에 태어난 것 같습니다. 아침 에는 갈매기한테 죽고, 낮에는 오리한테 죽고, 밤에는 힘센 고기들의 습격을 받아 떼죽음을 합니다. 그저 자꾸 죽습니다.”
“그래도 너희들은 살아남지 않았느냐?”
하고 진주조개가 정다운 말로 물었습니다.
“그렇지만 우린 금방 또 죽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대상님은 ‘한데 모여라’는 말 밖에 할 줄 모릅니다. 그래서 한꺼번에 수 백 마리씩이나 죽습니다.”
하고 멸치 하나가 빠른 말로 말했습니다.
“그래도 멸치는 없어지지 않지. 거 봐. 너희들처럼 만약 멸치 떼가 뿔뿔이 흩어졌다면, 지금쯤은 어족의 명부에서 멸치란 이름이 빠졌을 거야.”
“할머니, 그렇다면 한데 뭉쳐야 오래 산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단다.”
“그렇지만 한데 몰려다니면 한꺼번에 많이 잡혀 먹히니까 따로 떨어져 다니는게 더 좋겠어요.”
“떨어져 다니다가 죽으면 죽는 의미도 없단다.”
“죽는 의미가 없다니요?”
“말하자면 값없는 죽음이지. 그렇지? 그것은 자신도 죽이고, 자신의 몸도 죽이는 짓이야. 하지만, 함께 뭉쳐서 서로를 보호하며 하나가 되어 죽으면 몸은 죽지만 자신은 친구들 속에 살아 있는 거야. 그래서 멸치들은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먼 내일도 살아남을 수 있는 거야.”
멸치 두 마리는 진주조개의 말을 듣고 절을 굽신 올렸습니다. 진주조개의 배 쪽에서 은빛의 고운 광채가 반짝 빛났습니다.
그리고 거대한 멸치 떼 속으로 힘차게 지쳐 들어갔습니다.
“저것이 바로 용기며, 힘이다.”
진주조개는 몇 번이나 이렇게 입 속으로 뇌었습니다.
진주조개의 눈가에 이슬이 방울방울 맺혔습니다.
밤이면 또 복어와 뱀장어와 멸치들의 생각이, 밤하늘의 별들 이 산호 숲 속에 내려와 박히듯, 진주조개의 가슴속에 박혀서, 그것은 또 그것대로 아픔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진주조개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정한 이웃들에게서 나누어받은 모든 슬픔과, 괴로움과,
아픔들을 씻으려면, 자신이 죽음으로써 해결될 수 있는 것’이라고.
진주조개는 그 때부터 높은 곳을 찾아서 기어오르기 시작하였 습니다.
바위 꼭대기에서, 산호가지의 도움을 받아가며 산호의 높은 가 지 꼭대기까지 올라갔습니다.
눈앞이 아찔하니 현기증이 났습니다. 자아, 이제 뛰어내리자 하고 진주조개는 눈을 감았습니다.
그 때 마지막 빛줄기 하나가 황급히 뱃속으로 스며들었습니다. 마지막 가지를 잡았던 손을 놓았습니다.
“괴로움이여! 안녕.”
진주조개는 산호가지에서 바위 위로, 바위 위에서 땅바닥으 로 굴러 떨어졌습니다.
번갯불이 번쩍하고, 그리고 콰앙! 그것으로 진주조개는 죽은 줄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목숨은 그렇게 쉽게 끝나는 게 아닌 모양이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모래바닥 위에 자신이 나동그라져 있었습니다. 가슴밑 부분이 따끔따끔 저려왔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은 점점 맑아지는 것이었습니다.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가슴 밑에 입었던 상체기 부분에서, 말할 수 없으리만치 어떤 기쁨 같은 것이 치솟아 오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기쁨은 바로 일곱 빛 진주의 광채가 되어 먼 이웃 까지 화안하게 밝혔습니다.
진주조개의 이웃들이 몰려들었습니다. 다리 잃은 바위게가 찾아왔습니다. 수염 잃은 참새우도 찾아왔습니다. 날개 잃은 날치도 찾아왔습니다.
“여어! 저것은 우리를 구할 때 아주머니가 보여주던 그 몸빛이다.”
하고 모두들 부르짖었습니다.
그러자, 바위게도, 참새우도, 날치도, 아픈 곳이 씻은 듯이 다 나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