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나도(Me Too)운동이 시작되었을 때 바라던 바가 많았다. 당시 여성운동이라는 단체를 보고 기대는 높지 않았지만, 잘못된 한국의 문화가 조금은 바꾸길 바라는 마음은 있었다.
외국어 ‘Me too’ ‘페미’라는 단어를 쓸 때부터 의사소통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여성 인권 운동이라는 말도 있는데 ‘페미’라는 단어를 쓰는 것부터 별로이다. ‘feminism’의 줄임말인 것 같은데 그게 원래 의미를 얼마나 담고 있는지, ‘여성 인권 운동’이라는 말을 대체할 만한 단어인지도 모르겠다.
조선 초까지 한국에서 여성은 재산 상속과 재가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물론 신분제 사회라 양반만 인권이 있고, 그 외 계급에는 인권이 없었던 시절이라 인권 이야기하기는 조금 무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원래 유교에서 말하는 것과 거리가 있는 왜곡된 가부장제가 생겨났다. ‘부부유별’은 남자와 여자가 다르고 각자 역할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이 말이 ‘남존여비’처럼 쓰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집안에서 여자들은 양반 집안에 노비들처럼 부리기 시작했다. 아들은 농사 짓고 딸은 집안 일하고 이런 구분이 아니다. 아들은 교육을 시켜 성공하고, 딸은 이런 남자 형제들 뒷바라지하는 존재처럼 부리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이런 잘못된 관습이 현재 남녀 차별 문제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라는 동학의 말은 조선 시대 말에 존재한다. 이런 목소리는 다수에게 전달되지 못했고 소수만이 이해했다. 독립운동가 이회영 선생님처럼 인품이 뛰어난 몇몇 인물은 노비에게도 하대하지 않았다. 모든 사람을 인간적으로 대한 이도 존재했다.
하지만 이렇게 개인의 인품에 기대기에 우리는 일상에서 많은 낯선 사람과 같은 공간에 있는 시간이 길다. 서로를 인간적으로 대하는 인품을 가진 이가 다수면 좋겠지만, 그게 안 된다면 일상이 편안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회가 커질수록 다수가 잘 지낼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그 사회를 대표하는 이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운동’이 발발했을 때 여성 인권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기를 바랐다. 김대중 대통령이 여성 인권에 대해 생각해서 ‘여성부’를 만들고 ‘여성가족부’를 거쳐 ‘성평등가족부’로 이름을 바꾸며 국가 행정기관이 존재한다. 하지만 여성 인권 관련 문제는 여전히 해결할 것이 많고, 여성만 노리는 범죄도 수위가 상당히 높아졌다. 이에 대한 적절한 대안은 언제쯤 나올지 성평등가족부에게 묻고 싶다.
‘나도 운동’이 활발할 때 ‘싫어요’ 교육을 모든 어린이에게 시켰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국 여성 중 다수는 원하지 않는 접촉을 당한 경험이 있다. 단순한 접촉보다 더 심한 추행이나 폭력까지 당한 이들도 있다. 그리고 이런 일을 저지르는 당사자 중 아는 이가 많다. 그리고 한국에서 태어난 여성 중 인내와 순종을 지나치게 강요받은 사람들은 싫다는 내색을 잘하지 못한다. 그래서 상습 피해 대상이 되기도 한다.
몇 년 전 일본 여행 중 일본인 여성과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터키를 비롯한 중동에 가면 한국인이나 일본인 여성 여행객을 희롱하는 무리를 만날 수 있다. 여러 명이 다니더라도 그런 희롱은 존재한다. 서구 여행객에게는 그런 희롱이 잘 없다. 그분과 내가 생각한 이유는 한국인이든 일본인 여성은 싫어도 웃으며 거절한다는 것이다. 서구 여성처럼 단호한 표정으로 싫다고 못한다. 그게 교육 받아온 방식이라 화는 나는데 표정은 화난 표정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오해의 소지를 남길 수 있어서 그런 게 아닌지 생각했다.
어릴 때부터 내 몸은 소중하고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내가 싫으면 만지지 못하게 하는 것을 습관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싫은데 만지면 표현하고 소리를 질러야 나쁜 경험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어릴수록 나쁜 경험은 오랜 상처로 남고, 잘못하면 평생 가지고 가는 상처가 될 수 있다.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힘든 아픔이 될 수도 있다.
미국에서는 몸이 성숙하는 만큼 정신은 그만큼 성장하지 못하는 장애인을 위한 ‘데이트 교육’을 한다. 이성을 사귈 수 있지만, 내가 싫은 행동은 하지 못하도록 반복해서 교육한다. 반복해서 교육한 결과는 ‘싫어요’라는 자기 의사를 분명히 표현하게 한다.
유치원부터 이런 단순한 ‘싫어요’ 교육을 시키는 게 어른이 되어도 나를 보호할 수 있는 기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걸 어릴 때 배우지 못했다면 군대나 회사에서도 이런 교육 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지인들의 말을 들어 보면 군대가 ‘상명하복’이 존재하는 체제라 그런지 원하지 않는 접촉을 하는 인간들이 존재한다고 한다. 어디든 남을 인간적으로 대하지 못하고 욕구 대상으로만 보는 이들은 존재하는 것 같다. 남을 괴롭히는 것이 이성만이 아니라 동성도 존재할 수 있다. 이런 전제에서 정책을 만든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정책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진짜 성숙한 사회는 양성평등이 아니라 성평등이라는 어휘를 사용한다. ‘성평등가족부’로 이름을 바꾸었으니 성숙한 정책을 만들고 시행하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