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 명절을 앞두고 장을 본다는 건, 단순한 소비를 넘어 일종의 각오에 가깝다. 얼마가 나올지 이미 짐작하면서도 계산대 앞에서 한 번 더 놀라고, “그래도 명절이니까”라는 말로 스스로를 설득한다. 매년 반복되는 풍경이다. 그런데 올해 설을 앞두고 나온 한 조사 결과는 이 익숙한 체념에 작은 질문을 던진다. 명절 물가는 정말 피할 수 없는 걸까.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가 발표한 설 차례상 차림 비용 조사에 따르면, 가락시장 내 가락몰의 평균 구매비용은 20만5510원으로 집계됐다. 대형마트보다 24.2%, 전통시장보다도 12.1% 낮은 수준이다. 숫자만 놓고 보면 단순한 가격 비교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유통 구조와 정책, 그리고 소비 선택의 문제가 겹쳐 있다.
가격은 우연이 아니라 구조에서 나온다
이번 조사는 6~7인 가족 기준으로 설 성수품 34개 품목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전통시장과 대형마트의 평균 구매비용은 전년 대비 모두 상승했다. 명절 수요가 몰리고, 인건비와 물류비 부담이 커진 현실을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결과다. 반대로 가락몰은 전년보다 오히려 가격이 낮아졌다. 이 차이는 어디에서 생겼을까.
가락몰은 산지와 소비지를 잇는 도매 유통의 한가운데에 있다. 중간 단계가 줄어들고, 물량 확보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다. 여기에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시장이라는 특성이 더해진다. 수익 극대화보다 물가 안정이라는 목표가 전면에 놓일 때, 가격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 이는 ‘싸게 팔았다’는 결과보다 왜 그렇게 될 수 있었는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품목별로 보면 더 분명해지는 차이
전통시장은 이미 임산물과 나물류, 일부 수산물과 축산물에서 대형마트보다 경쟁력이 있다. 하지만 이번 조사에서 눈에 띄는 점은, 가락몰이 이들 품목 대부분에서 다시 한 번 더 낮은 가격을 보였다는 사실이다. 소고기와 돼지고기, 닭고기 같은 축산물, 조기와 북어포 같은 수산물은 명절 상차림에서 빠질 수 없는 재료다. 이 핵심 품목에서의 가격 차이는 소비자가 체감하는 부담을 크게 바꾼다.
과일과 채소류는 비교적 안정적인 흐름을 보이고 있다. 사과와 배, 만감류는 작황과 물량 덕분에 큰 변동이 없거나 오히려 낮아질 가능성도 있다. 반면 축산물과 수산물은 고병원성 AI, 환율 상승 같은 외부 요인으로 가격 상승 압력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가락몰의 가격 안정성은 더욱 두드러진다.
‘보여주기’가 아닌 ‘체감’ 정책
공사는 설 연휴를 앞두고 가락몰 환급행사도 함께 진행한다. 일정 금액 이상 구매하면 온누리상품권을 환급해 주는 방식이다. 이 혜택은 통계보다 먼저 체감된다. 소비자는 계산대 앞에서 바로 정책을 느낀다. 명절 물가 대책이 실효성을 가지려면, 이런 직접적인 경험이 중요하다.
가격 정보를 공개하고, 거래 동향을 매일 알리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보가 투명해질수록 소비자는 선택할 수 있고, 선택은 시장의 방향을 바꾼다. 가락시장이 ‘물가 안정의 거점’으로 불리는 이유는 단순히 싸기 때문이 아니라, 구조와 의지가 함께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명절 물가, 다른 길도 있다
이번 조사는 명절 물가가 늘 오를 수밖에 없다는 통념에 균열을 낸다. 물론 모든 소비자가 가락몰을 찾을 수는 없다. 접근성의 한계도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례는 중요한 질문을 남긴다. 유통 구조를 어떻게 설계하고, 공공은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는가.
명절이 다가오면 우리는 늘 비슷한 한숨을 쉰다. 하지만 선택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그 한숨의 무게는 달라진다. 올해 설, 장바구니를 들며 이런 생각을 해볼 수 있다. 명절 물가는 운명이 아니라, 구조와 선택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