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행주대첩을 기리는 고양행주 문화제에 다녀왔습니다.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드론쇼였습니다. 권율 장군의 용맹함부터 유관순 윤봉길 안중근 등의 독립투사들의 족적을 드론으로 표현했는데, 정말 장관이었습니다. 20대 때 여의도에서 처음 본 세계 불꽃축제의 감동이 다시 느껴지더군요.
행사 팸플릿을 보다가, ‘귀환 : 여기, 400여년전 행주’라는 문구에 시선이 멈춥니다. 며칠 전 읽었던 어느 칼럼 한 구절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1582년생 조선인은 10세에 임진왜란(1592)을 시작으로, 정유재란(1597), 정묘호란(1627), 병자호란(1636)을 54세까지 다 겪는다. 만약 그가 ‘재수가 없어서’ 살아남는다면 말이다.‘
40대 중반인 제가 400년 전에 조선에 태어났다면, 얼마나 많은 전쟁을 겪으며 살아야 했을지 상상해 봤습니다. 이날 축제가 기리는 행주대첩은 조선이 거둔 큰 승리였습니다. 하지만 이기기만 했다면 7년이나 전쟁을 할 필요가 없었겠죠.
1592년 용인전투에 대해 알아볼까요. 기록마다 차이는 있지만 조선군 5~8만 군이 왜군 1600명의 기세에 눌려 혼비백산 도망치던 싸움입니다. 같은 해 탄금대 전투는 1만 8천명의 병력이 거의 전멸 당했습니다. 칠천량 해전은 언급하기도 부끄러울 정도의 치욕적인 패배였습니다.
맞서 싸운 병사들뿐 아니라 민초들의 삶의 고통 역시 덜하지 않았을 겁니다. <난중일기>에는 “명나라 군사가 술에 취해 토한 것을 조선 백성이 주워 먹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또한 <징비록>에는 “왜군은 얼레빗, 명군은 참빗.”문구가 등장합니다. 왜군이 민가를 휩쓸고 간 뒤, 명군이 그나마 남은 것까지 죄다 긁어갔다고 해서 생긴 표현입니다. 가슴 미어집니다.
그 시대에 제가 살았다면 어땠을까요? 지금 정부 고위 관료도, 전문직도, 그렇다고 기업 임원도 아니니, 누더기 옷 한 벌 걸치고 죽창 하나 든 채 맨 앞줄에 서 있거나 글도 모르는 사노비로 살지 않았을까요? 불평이나 불만이라는 개념조차 모른 채 오직 목숨을 부지하는 것에 매달렸을 겁니다.
전생에 나라를 구한 것도 아닐진대, 저는 무엇을 잘해서, 무엇에 특별히 뛰어나서 지금 이 시대, 이 땅에 태어난 걸까요.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 대한민국에서, 끼니 걱정 없고, 더위와 추위를 피할 수 있는 옷과 공간이 있으며, 무엇보다 타인의 총칼에 위협받는 일 없이 살아갈 수 있는걸까요.
이토록 당연하게 여겨왔던 하루하루가 400년 전의 삶과 비교해 보면, 사치에 가깝게 여겨지기도 합니다.
우리는 종종 지금의 불편함과 결핍에 마음을 빼앗기곤 합니다. 하지만 삶을 긴 호흡으로 바라보면, 그저 이렇게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할 이유는 충분합니다.
그러니, 오늘에 감사해야겠습니다. 아픈 역사를 마주하며 현재의 소중함을 되새기고, 겸손하게 내일을 쌓아 올릴 수 있길 꿈꿔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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