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부동산자산관리신문] 김준수 기자 = 필자(도해 주경섭 박사)가 제조한 유황오리양엿이나 보리누리차의 재료로 쓰이는 맥아(麥芽)는 보리를 물에 불려 싹을 틔운 뒤 말린 것으로, 우리가 엿기름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맥아는 벼과에 속한 겉보리의 익은 열매에서 싹이 약 0.5cm 정도 자랐을 때 햇볕에 말리거나 저온 건조한 것이다.
맥아가 귀한 이유는 그 안에 강력한 소화 효소인 아밀라아제(amylase)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겉보리에서 싹이 틀 때 보리는 스스로 성장하기 위해 자신의 녹말 성분을 분해하기 시작하는데, 이때 아밀라아제가 대량으로 만들어진다.
이 효소가 아밀로스라는 녹말을 분해하여 엿당과 포도당으로 바꾸기 때문에 맥아에서 단맛이 나는 것이다. 《동의보감》에는 맥아에 대해 "성질이 따뜻하고 맛이 짜며 독이 없다.
“기운을 보해 위장을 고르게 하고 설사를 멎게 하여 허한 것을 보한다. 오래 먹으면 살이 찌고 튼튼해지며 윤기가 흐르게 된다"고 기록하고 있다. 쌀과 밀가루, 과일의 소화를 돕고 비위(脾胃)를 조화롭게 하며 기운을 아래로 내리는 효능이 있어, 소화불량·위염·식욕부진·구토·설사 등에 두루 쓰인다.
맥아는 염증 개선에 좋으며, 신곡(神麯)과 함께 필자가 본방(本方)을 만들 때 항상 들어가는 재료다. ‘본방’이란 용어는 필자가 직접 만든 것이다. 본방은 환자의 주 증상에 대한 단방(單方) 처방에, 부수적인 여러 증상에 대한 처방을 더하여 종합적으로 구성된 처방을 가리킨다.
신곡은 밀기울·팥·살구씨·개똥쑥즙·도꼬마리즙·버들여뀌즙 등을 반죽하여 발효시킨 누룩으로, 《동의보감》에 "가래와 같은 담음이 가슴으로 치고 올라와 답답하고 장위(腸胃)가 막혀서 음식이 내려가지 못하는 것을 내린다"고 쓰여 있다. 신곡은 우리 몸의 어혈을 풀어주고, 맥아는 담(痰)을 풀어주는데 있어 핵심이 되는 약재다.
이 두 가지가 함께 쓰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어혈과 담은 기혈의 흐름을 막는 두 가지 핵심 병리 요인으로서 서로 연동하여 작용하기 때문에, 신곡과 맥아를 세트로 쓰는 것이 인산의학(仁山醫學)의 처방 원칙이다.
인산 신약에서 보리 자체도 마찬가지로 귀한 약재다. 보리는 우리 몸의 육정수(肉精水)에 쌓인 적(積)을 풀어주는 작용을 한다. 삼정수(三精水) 즉 혈정수(血精水), 육정수(肉精水), 골정수(骨精水) 중 육정수는 ‘살을 만드는 수분‘이라는 뜻으로, 한의학에서 우리 몸을 구성하고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핵심 진액(체액)을 통칭하는 개념이다.
정(精)은 신장에 저장되는 생명의 근본 에너지이자 물질이며, 혈(血)은 온몸을 돌며 영양을 공급하는 피이고, 진액(津液)은 땀·침·눈물·관절액 등 몸 안팎을 적셔주는 정상적인 수분 전체를 가리킨다.
적(積)은 기혈(氣血)이 제대로 순환하지 못하고 한곳에 오래 정체되어 굳어진 덩어리로, 현대 의학적으로는 체내 독소·노폐물·염증 물질·담적(위장에 노폐물이 쌓여 굳는 것) 등에 해당한다.
보리가 이러한 적을 풀어주는 파적지제(破積之劑)로 기능한다는 것은, 몸 안의 중요한 핵심 체액들이 오염되거나 막히지 않도록 그 안에 쌓인 독소와 찌꺼기를 말끔히 씻어내어 피와 수분이 잘 흐르게 만든다는 뜻이다.
이러한 한의학적 해석은 현대 영양과학으로도 뒷받침된다. 보리에는 수용성 식이섬유인 베타글루칸(β-glucan)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다. 베타글루칸은 혈류 속 LDL 콜레스테롤 입자에 달라붙어 그 흡수 속도를 늦추고 배출을 도우며, 혈중 지질 수치를 개선하고 염증을 감소시키는 것으로 연구를 통해 확인되었다.
미국식품의약국(FDA) 역시 베타글루칸을 하루 3g씩 섭취하면 심혈관 질환과 혈당 관리에 도움이 된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한 바 있다. 한국식품영양과학회지에 발표된 연구에서는 새싹 보리 열수 추출물이 혈행 개선 효과를 가진 것으로 확인되었다.
보리가 '육정수의 적을 풀어준다'는 전통 한의학의 표현은, 현대 과학으로 보면 혈행을 맑게 하고 염증과 노폐물을 배출하는 기전과 정확히 겹쳐진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나오기 때문에 보리를 너무 하찮게 여기지만, 차로는 보리차가 으뜸이다. 중국 사람에게 보이차(普洱茶)가 있다면 한국 사람에게는 보리차가 있다. 보리차는 진하게 많이 마실수록 좋으며, 특히 여성에게 더없이 좋은 차다.
그 이유는 생명의 형성 원리에 있다. 어머니 뱃속에서 아이가 잉태될 때 여성은 처음에 육정수(肉精水)로 형성되기 시작하고 남성은 골정수(骨精水)로 형성된다. 골정수는 뼈[骨]와 신장(腎臟)의 정기(精氣)를 바탕으로 하는 남성적 생명의 뿌리를 의미한다.
한의학에서 신장은 생명의 에너지를 저장하는 곳이며 특히 남성의 생식 능력과 골격, 지구력을 주관하는 핵심 장부로 본다. 이처럼 전통 한의학과 동양의 태생학은 여성의 신체적 중심을 '부드러운 수분과 살[肉]의 기운'에서, 남성의 중심을 '단단한 뼈와 골수의 기운'에서 찾는다.
보리는 바로 여성의 몸을 이루는 육정수(肉精水)에 쌓인 적을 풀어주는 파적지제(破積之劑)로서 특히 효과적인 것이다. 《단계심법(丹溪心法)》에도 "여성의 기혈이 왕성하거나 산후에 유방이 부풀어 오르고 발열하며 아픈 것에 맥아를 쓰면 즉각적인 효과가 있다"고 기록하고 있어, 맥아와 보리가 여성의 기혈(氣血) 순환에 특별히 유효하다는 사실은 전통 의서에도 분명히 남아 있다.
보리는 세성정(歲星精)으로 화생(化生)한 식물이다. 세성정은 목성(木星)의 기운을 가리키며, 사람으로 치면 문곡성(文曲星)의 기운을 받고 태어난 강감찬, 연개소문 같은 인물이 이에 해당한다.
오행(五行)에서 목성(木)은 간(肝)·담(膽)을 주관하며 뻗어나가고 펼쳐지는 성질을 가진다. 보리 역시 이러한 기운을 받아 몸 안에 뭉치고 막힌 것을 뻗어나가게 하고 풀어주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흔하디 흔한 들판의 곡식이지만, 그 기운의 뿌리는 그만큼 귀한 것이다.
[칼럼제공]
도해 주경섭 박사


















